페이스북·트위터와 경쟁하기 위해 스팀잇 창업…
스팀잇 가입자 80만 명 넘고
전체 암호화폐 중 시가총액 26번째 차지


스팀잇의 창업자 네드 스콧(왼쪽)과 댄 라리머. 유튜브 갈무리
스팀잇의 창업자 네드 스콧(왼쪽)과 댄 라리머. 유튜브 갈무리



미래학자이자 벤처투자가인 정지훈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지난 1월 자신이 보유한 비트코인 자산을 전액 처분했다. 블록체인 분야에 처음 관심을 가진 2015년부터 장기 보유했던 비트코인을 팔고서 그가 산 것은 또 다른 암호화폐인 ‘스팀’(Steem)이었다. 스팀은 블록체인을 소셜미디어에 적용한 서비스인 ‘스팀잇’에서 글을 쓰고 추천한 사람들에게 보상으로 주는 암호화폐다.


 

블록체인을 경험할 수 있는 서비스


지난 1월 자신이 보유한 비트코인 자산을 전액 처분한 뒤 스팀으로 갈아탄 정지훈 경희사이버대 교수. 장지남 다큐멘터리 감독 제공
지난 1월 자신이 보유한 비트코인 자산을 전액 처분한 뒤 스팀으로 갈아탄 정지훈 경희사이버대 교수. 장지남 다큐멘터리 감독 제공

 

정 교수는 올해 1월 스팀잇에 가입해 ‘블록체인 혁명의 사상적 원류’ 등의 글 3편, 스팀잇이 만든 동영상 플랫폼 ‘디튜브’에 ‘블록체인 강의 시리즈-암호학과 블록체인’ 등의 강의 영상을 올린 뒤 투자를 결정했다. 스팀잇에서 글을 쓰거나 남의 글을 추천해줘도 받을 수 있는 암호화폐를 왜 구매했을까. 그는 이 결정에 대해 2월27일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블록체인이 비즈니스를 혁신하는 사례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나온 여러 블록체인 플랫폼 가운데 지속가능한 보상 체계가 나름 잘 설계돼 있었다. 전세계에서 사용자가 늘고 실제 작동하는 블록체인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스팀을 구매했다.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일반 사용자가 블록체인을 경험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암호화폐 투기 광풍이 몰아쳤던 2017년이 저문 뒤,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도 역시 줄어든 분위기다. 가치가 불안정하고 결제 속도나 편리성이 뒤떨어져 화폐로서 결격 사유가 분명한 암호화폐와 그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에 대한 회의도 고개를 들고 있다. 실생활에서 이 기술의 효능감을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신기술은 기존 사회문제를 개선하면서도 수익을 내는 사업모델을 제시해야 의미가 있다. 아직까지 블록체인과 관련해 이런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사례가 많지 않다. 기술 성숙도가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가능성을 보여주는 서비스가 스팀잇이다. 2016년 4월 서비스를 시작한 스팀잇은 가입자가 지난해 5월 16만 명에서 12월 50만 명을 넘어섰고, 올해 3월엔 80만 명을 돌파했다. 암호화폐 통계 사이트 ‘코인마켓캡’을 보면, 스팀 코인의 시가총액은 2018년 3월9일 기준 6억7023만달러(약 7200억원)로 전체 암호화폐 중 26번째로 규모가 크다. 물론 시가총액이 500조원이 넘고 회원 수가 20억 명 이상인 페이스북이나 10억 명 넘는 트위터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그렇지만 스팀잇의 창업자들은 처음부터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경쟁하기 위해, 좀더 엄밀히 표현하면 거대 소셜미디어가 야기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비스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스팀잇의 창업자는 네드 스콧과 댄 라리머다. 네드 스콧은 미국 베이츠대학에서 경제학과 심리학을 전공했고, 졸업하자마자 2012년부터 미국 식품수입회사인 겔러트 글로벌 그룹에서 3년간 사업운영과 재무분석 업무를 맡았다. 그는 2013년 언론 기사로 처음 비트코인을 접했고, 블록체인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스콧은 2016년 5월 <코인리포트>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을 알고 난 뒤 8개월 만에 댄 라리머를 알게 됐고, 그가 비트셰어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보고서 완전히 매료됐다. 2016년 1월에 댄을 처음 만났고, 바로 비즈니스 계획을 짜서 회사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인터넷이 만든 문제 해결하려 창업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네드 스콧에 비해 댄 라리머는 이미 업계에서 알려진 개발자였다. 라리머는 2003년 미국 버지니아 폴리텍대학에서 컴퓨터공학 학사 학위를 받은 뒤 줄곧 개발자로 지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 소프트웨어를 공개한 2009년부터 일찌감치 블록체인 기술에 눈떴고, 그해에 암호화폐 거래소와 블록체인 소프트웨어 등을 개발하는 업체 ‘비트셰어’를 설립했다. 비트코인의 개발자 사토시와도 교류한 개발자다. 라리머는 스콧을 만난 지 3개월 만인 2016년 4월 스팀잇의 초기 버전을 개발했다. 댄은 2017년 3월 스팀잇을 떠나 3세대 블록체인 프로젝트라 하는 이오에스(EOS)의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고 있다.


창업자들의 사업 구상과 스팀잇의 작동 방식은 2017년 8월 공개된 32쪽 분량의 백서(Whitepaper)에 비교적 자세하게 담겨 있다. 백서의 제목은 <스팀- 보상을 받는, 블록체인 기반의, 공공 콘텐츠 플랫폼>(Steem- An incentivized, blockchain-based, public content platform)이다. 사실 이 제목부터가 인터넷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공공 콘텐츠뿐 아니라 사적 콘텐츠마저 보상받기 어렵다. 디지털에 네트워크가 결합된 인터넷은 콘텐츠의 자산 속성 자체를 바꿔버렸다. 원본과 복제본이 똑같아 내가 사용해도 남이 사용할 수 있으며, 콘텐츠에 접근하기도 손쉬워졌다. 유료 콘텐츠라 하더라도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면 무료로 제공되는 같은 콘텐츠를 찾는 경우도 허다하다. 마치 1990년대 냅스터와 소리바다가 음반시장을 파괴한 것처럼, 콘텐츠에 대한 소비자의 지불용의는 낮아지거나 거의 0으로 수렴했다. 콘텐츠는 분명 가치가 있는데, 창작자에게 보상할 방법이 거의 사라진 것이다. 창작자는 콘텐츠에 대한 보상이 아닌 유명세를 얻어 다른 방식으로 보상 받는 것이 일반화됐다. 이것이 인터넷이 야기한 중대한 문제였다.


인터넷이 만든 또 다른 문제는, 구글·페이스북 등 플랫폼 운영자의 이익 독점과 이들에게 주어진 과도한 권한이다. 이들은 분명 수많은 참여자가 만든 디지털 콘텐츠를 기반으로 사업을 벌이는데, 이익은 창업자와 주주들이 대부분 가져간다. 페이스북이 콘텐츠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도 사용자들은 정확히 알 수 없다. 오히려 사용자가 올리는 콘텐츠는 맞춤형 광고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수단이 된다.


즉 페이스북이란 플랫폼에 각종 콘텐츠를 제공한 사람들은 어떤 이익도 가져가지 못하고, 자기가 만든 정보에서도 소외된다. 그래서 스팀잇 백서에서 여러 차례 강조되는 표현이 ‘공정'(fair)과 '보상’(reward)이다. 인터넷에서 불가능했던 ‘보상받는 공공 콘텐츠 플랫폼’을 가능케 한 것은 블록체인 기술이었다.


 

암호화폐 보상, 사기인가 신기술인가


스팀잇은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콘텐츠의 가치를 보상한다. 발행한 암호화폐를 창작자와 추천자에게 지급하는 방식이다. 암호화폐 발행은 전기료 외에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비트코인처럼 컴퓨터의 연산력을 요구하는 발행 방식이 아니라서 전기료도 적은 편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의문이 제기된다. 큰 비용 없이 발행할 수 있는 이 암호화폐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보통 기업이 찍어내는 주식이 가치 있는 이유는 주식이 그 기업의 소유권 증서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자산이 있고 수익을 낸다. 스팀잇은 로고가 들어간 티셔츠나 텀블러 등의 상품을 팔지만, 큰 규모가 아니고 그 외의 의미 있는 수익 활동도 거의 없다. 그냥 찍어내는 화폐인데도, 시장에서 가치있다고 평가하는 이상한 상황이다.


그런데 스팀잇의 백서를 보면, 미국 달러에 대해서도 비슷한 평가가 나온다. 미국의 통화 공급량이 2008년 8월부터 2009년 1월까지 8710억달러에서 1조7370억달러로 두 배 이상 늘었지만, 같은 기간 물가지수를 보면 달러의 상대적 가치는 10% 이하로 내려가는 데 그쳤다. 달러는 미국 정부가 가치를 보증하는 반면, 스팀은 블록체인 기술과 스팀잇의 콘텐츠가 만들어낸 온라인 공동체(커뮤니티)가 가치를 떠받친다. 스팀잇이 페이스북처럼 광고 등으로 수익을 추구하지 않는 한, 암호화폐 스팀의 가치는 스팀잇이라는 공동체가 가치 있다고 믿는 사용자의 믿음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스팀잇은 광고 등의 수익화에 나서게 될까. 이 부분에 대해 창업자 네드 스콧은 2016년 5월 인터뷰에서 “스팀잇은 중개자나 광고 없이 콘텐츠의 수익화를 가능케 한다. 이 요인이 소셜미디어 공간에서 창작자와 공동체가 이전보다 가치 있는 상호작용을 하도록 촉진하고, 좋은 사람들을 플랫폼에 끌어들여 온라인 커뮤니티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국 콘텐츠와 공동체의 가치를 통해 스팀의 가치를 보증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재 단계에서 향후 스팀잇이 어떤 식으로 스팀의 가치를 보증할지는 예견하기 어렵다.


대신 스팀잇은 암호화폐 스팀을 신중하게 발행한다. 백서를 보면, 스팀은 2016년 12월부터 매년 전체 통화량의 9.5%만 새로 발행하기로 정했다. 신규 발행량의 비율은 이후 21년간 매년 0.5% 정도씩 낮아진다. 신규 발행량이 전체의 0.95%에 이를 때까지 이 감소세는 지속된다.


 

스팀달러 발행량 줄고 가치가 오르는 구조


암호화폐는 증인(witness)들의 감독 아래 발행된다. 증인은 비트코인에서 채굴자(miner)의 역할과 비슷하다. 비트코인 채굴자들은 신규 거래내역을 블록으로 저장해서 네트워크에 전파하는 구실을 하고, 스팀잇의 증인들은 암호화폐 거래내역뿐 아니라 글과 사진 등 각종 콘텐츠를 블록에 담아 공유한다. 증인은 스팀 참여자들의 자유 투표로 스무 명이 선출된다. 한국인 증인은 미국에서 유학 중인 조재우(스팀잇 아이디 @clayop)씨가 유일하다.


스팀잇이 발행하는 암호화폐는 스팀과 스팀파워(Steem Power), 스팀달러(Steem Dollar)로 세 종류다. 외부 거래소에서 주로 거래되는 대표 통화는 스팀이다. 그런데 스팀잇에 글을 쓰거나 좋은 콘텐츠를 추천한다고 바로 스팀을 주지는 않는다. 스팀잇은 스팀 내부에서 활용되는 또 다른 암호화폐인 스팀달러와 스팀파워를 준다.


스팀파워는 사용자에게 공동체 안의 영향력을 부여한다. 스팀파워를 많이 가진 사용자가 추천(vote)하면 콘텐츠에 대한 보상도 커진다. 스팀파워가 많은 사용자가 자신의 추천 권한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스팀 내 좋은 콘텐츠가 사장되고 공동체가 약화될 수 있다. 따라서 스팀파워를 많이 가진 사용자(스팀잇 내부에선 이들을 ‘고래’라고 한다)의 역할이 중요하다. 스팀잇은 사용자가 신중하게 추천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추천할수록 보상하는 힘(voting power)이 줄어들고, 이 힘은 하루에 20%씩만 충전된다.


스팀달러는 가치 안정화 기능이 있는 암호화폐다. 스팀달러는 신청하면 3.5일 뒤에 스팀으로 전환된다. 스팀과 스팀달러의 교환 비율은 발행량 등을 기준으로 증인들에 의해 결정된다. 이외에 1스팀달러는 가치 변동과 관계없이 최소 미화 1달러를 보장하는 안전장치가 있다. 스팀달러의 발행량이 많아져 가치가 떨어지면 1달러로 교환 요청을 할 수 있고, 자연스레 스팀달러의 발행량은 줄어들어 가치가 오르는 구조다.


글을 쓰거나 추천하면 경제적 보상을 받는 장점이 있음에도, 스팀잇 서비스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지 않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일단 기존 소셜미디어에 비해 사용하기가 편리하지 않다. 가입 신청을 하고 승인을 받기까지 이틀에서 일주일 가까이 걸리고, 긴 문자열로 주어지는 비밀번호를 잃어버리면 계정을 되찾을 방법이 없다. 콘텐츠의 주제별 목록인 ‘태그’는 영어로만 입력이 가능한 것도 불편한 점이다. 


 

수정하거나 지울 수 없는 치명적 단점


블록체인의 특성상 수정하거나 지울 수 없다는 특징은 때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장부의 거래내역은 수정하거나 지울 수 없는 것이 장점이지만, 글·사진·동영상은 내용에 따라 수정하거나 지울 수 있어야 한다. 스팀잇에선 이 작업이 불가능하다. 작성 뒤 일주일 안에만 수정할 수 있고, 삭제는 아예 불가능하다. 잊힐 권리에 반하고,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허위 사실이 유포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연인과 찍은 사진이나 메시지를 공유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 헤어져도 스팀잇에 올린 콘텐츠는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스팀잇에선 비추천(깃발 꽂기) 기능이 있어 영향력이 큰 사용자가 여러 번 비추천한 콘텐츠는 가려진다. 비추천은 표절과 스팸성 콘텐츠를 막는 구실도 한다. 이런 보완 기능이 있어도 스팀잇 안에서 자정작용이 이뤄지지 않은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는 딱히 막을 방법이 없다.


보상 기간이 7일로 한정된 것도 콘텐츠 창작자로선 아쉬운 점이다. 콘텐츠를 올리면 저작자는 7일 뒤 스팀달러와 스팀파워로 보상을 받고, 이후엔 추천을 받아도 보상이 없다. 아무리 콘텐츠가 좋아도 초기에 관심을 받지 못하면 거의 보상을 받지 못하는 셈이다. 이는 신규 사용자가 적응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모든 콘텐츠가 경제적 보상으로 가치 평가를 받는 것도 때론 거북할 수 있다. 공동체 안에서 주고받는 정보는 때로 누군가의 불행일 수 있고, 갈등을 야기하는 내용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이런 성격의 글을 올릴 때는 ‘보상 없음’을 조건으로 설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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