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일 한겨레신문 기자

비탈릭이 그저 농담 삼아 빈말을 던진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지난 만우절에 이더리움의 창시자가 이런 의문의 제안을 던졌을 때 대부분 사람은 이를 농담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제안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암호화폐 이더리움의 경제적 구조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매우 진지한 토론을 촉발한 것도 사실이다.

비탈릭 부테린이 이더리움에 쓰이는 암호화폐인 이더(ether)의 발행량을 제한하자는 아이디어를 던진 이후 지난 몇 주 동안 사람들은 이 문제를 두고 뜨거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실 암호화폐 시장의 성장과 함께 새로 발행되는 이더의 양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더의 발행량을 제한하자는 주장은 늘 논쟁의 대상이었다.

부테린은 그러한 논쟁을 알고 있었고, 이 때문에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위해 이더의 발행량을 1억 2천만 개로 제한하자고 말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는 2014년 이더리움 개발을 위해 발행한 이더 양의 두 배인 1억 2천만 개가 장기적으로 충분한 숫자라고 생각한다.

지난주 개발자 회의에서 부테린은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고 다른 코어 개발자들은 처음에는 웃어넘겼지만, 분위기는 점점 더 진지해졌다.

기술적인 면에서 발행량 제한에 특별한 어려움은 없으며, 이더리움 커뮤니티가 이를 지지하기만 한다면 다음 시스템 업데이트 때 간단한 코드 변경만으로 이를 도입할 수 있다.

이더리움에 투자한 이들은 이 아이디어를 반기고 있다. 비트코인은 발행량을 2,100만 개로 제한한 반면, 이더리움은 지금까지 발행량 제한에 대한 특별한 원칙을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더리움 투자를 꺼리던 투자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행량을 제한하자는 제안에 반대하는 이들도 많다.

어떤 이들은 이더리움 플랫폼의 보안에 있어 이더의 역할을 이야기하며, 또 어떤 이들은 발행량을 제한하면 투기 세력들이 이더리움에 몰려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개발자 중에는 이런 투자자들 때문에 미래의 이더리움 시스템 개선 작업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그 외에 이 제안의 타이밍이 좋지 않다거나, 발행량 제한이 가져올 효과가 아직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나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제안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우리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더리움의 차기 합의 메커니즘인 지분증명(POS) 알고리듬 개발을 이끄는 블라드 잠피르가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말이다. “그 숫자가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또 다른 비판자는 이렇게 썼다.

이 제안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다른 개발자 닉 존슨은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비탈릭의 그 제안은) 마치 이더리움이 처음부터 컴퓨팅 플랫폼이 아니라 어떤 화폐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인 양 오도했고, 사람들은 이류 경제학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반대측 주장

반대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암호 연료”여야 할 이더에 경제적 유인을 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더의 기본적인 존재 이유는 이더리움 플랫폼 위에서 컴퓨팅이 이루어지기 위한 자원으로 소모되는 것이다.” 독립 이더리움 개발자인 데릴 모리스가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이다.

모리스는 이더에 투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이더리움 프로토콜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이더의 원래 목적보다 더 우선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지난 13일 있었던 개발자 회의에서 존슨은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발행량 제한은 이론적으로 이더의 가치를 올릴 것이며, 이는 채굴자들이 이더를 더 주는 거래를 선호하게 만들고, 결국 이더를 덜 소모하는 거래는 불이익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거래 수수료 상승은 이더를 더 쥐고 있게 만들 뿐 생태계 활성화에는 악영향을 미친다.” 존슨의 말이다. 존슨은 이런 조치가 “거래가 줄어들면 거래 수수료가 올라가고 이는 다시 거래를 줄이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 말했다.

사실 발행량 제한에 대한 반대는 부테린의 최근 제안 이전부터 이미 있었다. 예를 들어 잠피르는 이더 발행량을 제한하자는 주장에 반대한 바 있다. 지난 2월 코인데스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 주장이 “바이크쉐딩(bikeshedding, 불필요한 기술적 논쟁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일)"이라 말한 바 있다.

그가 한 말이다.

이더를 들고 버티고 있는 이들은 이 발행량 문제에 엄청난 신경을 쓰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발행량 문제는 암호화폐의 성공과는 아무런, 정말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는 발행량 제한 아이디어는 결국 채굴 보상을 줄이겠다는 말과 다름없으며, 채굴자들은 이 제안에 근본적으로 반대할 것이라 말했다.

“암호화폐 보유자들과 채굴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대되는 입장에 있으며 따라서 그들에게 생태계 전체를 고려해달라고 요구할 수 없음은 물론 이를 위해 필요한 어떤 종류의 도움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잠피르는 말했다.

잠피르는 블로그를 통해 이러한 조치가 가져올 결과에 대해 우리는 아직 무지하며, 희귀성을 이용해 투자가치를 올리겠다는 것은 “기껏해야 어리석고 사람들을 짜증 나게 만드는 조치”라고 썼다.

한편 다른 이들은 발행량 제한이 이더리움 네트워크 진입 비용을 높일 것이며 이는 진입 비용을 낮게 유지해 누구나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 네트워크의 탈중앙화를 유지함으로써 장기적인 가치를 유지하겠다는 아이디어와 충돌한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한 레딧 사용자는 이렇게 썼다. “재산을 늘리고 싶은 이에게는 좋은 생각이겠지만, 탈중앙화된 경제를 원하는 이에게는 쓰레기 같은 생각이다.”

찬성측 주장

그러나 부테린은 위의 어떤 주장도 참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난주 개발자 회의에서 부테린은 거래 수수료는 이더의 가격에 비례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더리움 플랫폼에 대한 수요를 반영한다고 강조했다. 이더의 가격 상승과 무관하게 거래의 수가 일정하면 플랫폼 수수료 또한 오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암호화폐 진입 비용을 낮추는 것은 이더리움만의 문제가 아니며, 새로운 암호화폐가 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

“암호화폐의 불공평성을 낮추는 것은 어느 한 코인의 발행량을 무한대로 유지함으로써가 아니라 새로운 코인의 등장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부테린이 트위터를 통해 한 말이다.

이더의 발행량 증가 수준은 아직 낮지만 부테린은 이런 낮은 인플레이션조차 시장의 관점에서는 “커다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부테린은 이더의 발행량을 제한하지 않을 경우 이더리움 플랫폼을 통해 발행된 ERC-20 토큰 중 하나의 시장 가치가 이더의 가치보다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테린은 토큰은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도록 프로그램될 수 있으며, “ERC-20 토큰이 이더보다 가치 저장에 더 유용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채굴자에 대한 보상의 경우 부테린은 새로 발행되는 이더 대신 거래 수수료를 직접 채굴자에게 주도록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모든 이더가 스마트 계약에 묶여있기 때문에 채굴자에게 그 수수료를 나누어주는 것이 쉽게 구현 가능하다는 뜻이다.

“계약에 남아있는 잔액에 비례하는 보상을 주는 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 부테린의 말이다.

이더 발행량을 제한할 경우 시간이 갈수록 보상이 줄어드는 문제는 결국 채굴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셈이지만, 부테린은 발행량을 제한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인플레이션 역시 비슷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이 있는 암호화폐는 가치가 하락할 수 있고, 이는 자본의 힘으로 네트워크를 보호하는 기능이 약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부테린의 말이다.

물론 부테린 역시 발행량 제한의 효과를 측정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개인적으로는 거래 수수료만으로도 블록체인을 보호하기에 충분한 수입원이 된다는 증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래와 같이 덧붙였다.

“장기적으로 볼 때 발행량을 제한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만든 이 시스템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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