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서울이더리움밋업을 처음 조직한 정우현(atomrigs)씨가 지난 3~5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이더리움 개발 컨퍼런스 에드콘(EDCON) 참관기를 보내왔다. 미국 텍사스에 거주하는 사업가인 정씨는 지금도 일년에 한 두 차례 한국에 와 서울이더리움밋업에 직접 참석하곤 한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했지만, 30대 후반의 나이에 프로그래밍 공부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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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비행기로 입국하기 위해서는 무비자 협정국이라도 전자여행허가(eTA)를 받아야 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공항에서 체크인을 하면서였다. 거기다가 같이 탑승을 해야 할 아내의 이름까지 잘못 예약되어 있다는 것을 안 것도 그 때서였다. 조금 여유를 두고 나오지 않았다면 비행기를 타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5월 3일 부터 5일까지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커뮤니티 이더리움 개발 컨퍼런스인 에드콘(EDCON)에 참석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 첫날부터 긴장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렇지 않아도 5월4일에는 한국 이더리움 커뮤니티 현황에 대해 발표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떠나는 아침부터 신경이 더 날카로워졌다


이번 행사가 글로벌 이더리움 커뮤니티와 개발 현황을 집약적으로 잘 요약해서 볼 수 있고 한국 이더리움 커뮤니티를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해서 좀 무리를 해서 일정을 잡았다.


우여곡절 끝에 5월2일 토론토에 무사히 도착했다. 약간 쌀쌀한 날씨였지만, 상당히 쾌적하게 느껴졌다. 행사장은  다운타운에 있는 라이어슨 대학 건물에서 진행되었는데, 주변에는 온통 고층 아파트, 상가, 사무실 등이 서로 얽혀 있어서 대학이라는 느낌보다는 강남 한복판이나 좀 작은 뉴욕거리의 느낌이다. 거리에는 매우 다양한 인종들이 보이고, 들리는 언어도 각양각색이다. 특히 중국인들이 많이 보인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팀도 중국인들이 중심이다.


이더리움에 관심을 가지게 된지 이미 4년 가까이 되지만, 여전히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화두는 “왜 탈중화인가” 하는 것이다. 블록체인의 기술적인 성숙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향상될 것이고 스케일링 문제도 결국은 해결될 것이겠지만, 탈중앙화의 성격과 방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명료하다기 보다는 모호한 면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기술이 완전히 가치중립적이지는 않더라도, 기술자체가 그것이 가진 잠재적 활용성 모두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결국 어떤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이 기술이 활용되어야 하는가 사회철학적인 관점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정신은 급격히 퇴색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다. 이더리움 커뮤니티의 정체성을  특징지우는 가장 근본적인 바탕은 아마도 이러한 사회적 가치를 같이 구체화 시키자는 동의가 아닐까 싶다.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호하고, 기존의 사회철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서로 상반된 가치관이 혼재되어 있는 것도 부정하기 어렵지만, 갈수록 심화되는 부와 권력의 독점적 소유와 통제에 대한 대안적 시스템의 기반으로서의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이 커뮤니티의 가장 근본적인 바탕이라고 보고 싶다.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자는 출발의 동기를 잃지 말자는 신념을 이번 컨퍼런스에도 다시 확인해보고 싶어진다.


5월 3일 에드콘 컨퍼런스 첫날이다.


첫날행사는 깜짝 춤으로 시작되었다. 비탈릭을 비롯한 재단 개발자들과 몇몇 관련 팀들 멤버들이 참여해서 거의 10분 동안 배저(badger)춤(이라기 보다는 율동)을 보여주었다.

사진 정우현

청중석에 있는 많은 사람들까지 일어나 함께 춤을 추니,  행사장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를 감당하지 못하는 에어콘이 거의 무력화돼버리고 말았다. 프로페셔널한 기업가적 이미지 보다는 대학교 동아리같은 순수성을 유지하겠다는 의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비탈릭 부테린을 비롯한 이더리움 재단의 주요 개발자들이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은 전문가들이 아니라는 점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사람들의 뇌에는 뉴런들이 반응하는 패턴, 즉 길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반복적인 자극에 의해 훈련되면 그 이후로는 이 패턴에 따라서 같은 방식으로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인데, 탈중앙화의 화두를 대하자면 기존의 패턴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잘 훈련된 것보다는 새로운 뉴런연결의 패턴을 떠올릴 수 있는 창의성이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패턴에 찌들어 있는 사람에게도 새로운 패턴을 보는 것은 매우 자극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떠올리지를 못해서 그렇지 반복적인 패턴은 뇌세포에게도 지루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새로운 자극의 사회적 함의를 재구성해 볼만큼 마음이 열려 있는지, 아니면 자극적이기는 하지만 기존 패턴의 안정성에 안주할 것인지가 아닐까?


첫날 행사는 라이슨대학 관계자, 행사주최팀, 이더리움 파운데이션, 이더리움 커뮤니티 펀드 등에 대한 소개로 이어졌다.

사진 정우현

이 행사를 후원하는 많은 이더리움 생태계 업체들이 보이는데, 서울 이더리움 밋업을 포함한 몇몇 밋업들도 보인다.

사진 정우현

이번 행사의 전체 발표자들이다. 저기에 얼굴을 올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로서는 매우 고마운 일이다.  연결에 애를 쓴 이더리움 서울 밋업의 공동조직자 이준희님께 술이라도 한잔 사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저 스크린을 보았다.

사진 정우현

이더리움 파운데이션의 새 디렉터로 참여한 아야(Aya)는 이더리움의 존재가치를 이더리움이 해결하고자하는 문제들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은행계좌가 없던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금융수단을 주었는지, 베네수엘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는지와 같은 문제 말이다.

사진 정우현

이더리움 커뮤니티 펀드(ECF)는 이더리움 재단과 별개로 몇몇 주요 프로젝 팀들의 기부로 구성된 펀드인데, 이더리움 생태계 발전에 필요한 비영리적인 인프라적 성격의 프로젝에 투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특히 레이어 2의 스케일링 솔루션, 교육, 개발자 툴등에 대한 투자에 역점을 둘 것이라고 한다.

사진 정우현

레이슨대의 매샤탄(Mashatan)교수는 캐나다 부동산 거래에 블록체인이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매우 상세한 소개를 한다. 한국에서도 등기소나 이와 유사한 문서 증명의 기능이 필요한 영역이 블록체인이 가진 장점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분야 중의 하나인데, 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칼(Karl)은 암호경제학(Cryptoeconomics)의 기본적인 컨셉을 소개한다. 이더리움 재단에서 이 친구만큼 열정적이고 쉽게 개념을 정리해서 소개하는 사람은 없을 듯 하다.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엄청난 에너지를 같이 쏟아낸다. 캐스퍼, 플라즈마 등의 기본 개념을 재미있게 파악해보고 싶은 사람은 이 친구의 유튜브 동영상을 꼭 확인해 봐야 할 것이다.


암호경제학에 대해서는 나도 일전에 한번 개념정의를 해 둔 것이 있다. 암호경제학은 암호학과 게임이론 등의 경제학 이론을 사용해 탈중앙화된 디지털 경제가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분석하는 연구분야이다.


칼은 암호경제학이 적용된 하나의 예제로 탈중앙화된 페이팔(paypal)이라는 서비스를 만든다고 할 때, 어떻게 암호학과 경제적 인센티브와 패널티 등이 사용될 수 있는지를 조목 조목 보여주려고 한다. 이 프리젠테이션에 대한 내용은 https://cryptoeconomics.study/overview.html 에 잘 정리되어 있다. 앞으로 내용들을 구체화하면서 책이나 동영상 강의자료 등으로 배포하려는 계획인 것 같다.


내용이 좀 길어질 것 같지만 칼의 발표 전체 내용을 한번 요약해보고자 한다.



칼이 예제로 보여주려는 어플리케이션, 탈중앙화된 페이먼트 시스템이다. 페이팔이라는 중앙화된 페이먼트 시스템을 어떻게 비트코인의 프로토콜을 사용해 탈중앙화할 수 있는가 보여주고, 이것을 바탕으로 트랜잭션 속도을 올리고 비용을 낮추기 위해서 어떻게 이더리움에 플라즈마를 탑재해서 사용할 수 있는지 보여주려고 한다. 정확히 페이팔의 모든 기능을 탈중앙화 방식으로 구현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글로벌한 페이먼트 시스템 구현이라는 목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페이팔이라는 브랜드를 예로 들었을 뿐이다. 페이팔이 개인간 송금일 경우 상당히 저렴하지만, 비지니스 영역으로 오면 수수료가 매우 비싼 편이다. 페이팔로 무역거래를 해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수수료가 3%가 넘어간다.




페이팔처럼 중앙화된 운영주체가 있는 경우 이 주체가 모든 참여자들로부터 송금 트랜잭션 요청을 받아서 이를 수행하게 된다. 어떤 트랜잭션은 받아들이고, 어떤 트랜잭션은 거부할 수도 있다. 이 중앙화된 운영주체가 전권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이 중앙화된 운영주체를 제거하고 나면 어떤 구조가 될까?



참여자 모두 장부를 공유하고 각자의 트랜잭션들을 서로에게 전파하는 구조가 된다.



하지만 서로 가진 장부가 달라질 경우 누구 장부를 기준으로 해야 되는지, 한 사람이 100 코인을 가지고 있는데 한번은 A라는 사람에게 100코인을 송금하고 곧바로 B라는 사람에게 다시 100코인을 송금할 경우 어떤 트랜잭션에게 우선권을 줘야 되는지, 심지어는 이중지불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등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탈중앙화된 합의(Decentralized Conensus)가 필요하다. 어떤 트랜잭션이 우선인지를 합의해야 된다. 이러한 합의를 쉽게 하기 위해 트랜잭션들을 블록단위로 묶어서 네트워크에 올리는 채굴자(Miner) 그룹을 만든다. 채굴자들 중에 누가 블록을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작업증명(PoW)의 방식에서는 해시계산이라는 작업증명을 해야만 한다. 하나의 블록이 다른 채굴자들에 의해 인정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블록이 생성되면서 블록들은 체인으로 연결되게 되고, 이 블럭들의 순서에 의해 각 트랜잭션의 시간적 순위 또한 결정된다. 다만 여기서 합의된 블록이 최종적인 승인이 되었는지에 대한 절대적 기준(finality)은 없다. 일부 채굴자들은 자신이 받은 블록정보들에 기초해서 볼 때 이것이 가장 많은 해시계산을 해온 체인이라고 믿고 작업했지만, 사실은 네트워크의 다른 편에서는 이것보다 더 많은 계산을 한(즉 난이도가 더 높은) 다른 블록들이 존재할 수 있다. 이런 일이 생길 경우, 지금까지 승인되었다고 생각한 블록들은 무효화되고 새로운 블록을 받아들여야 되는데, 이것을 블록체인 재구성 (Blockchain reorganization, 줄여서 reorg)이라고 부르는데, 상당히 골치아픈 문제이다.



대개의 경우는 재구성이 일어나도 바로 정리되고 큰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일 네트워크를 체계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누군가 채굴자들을 매수해서 의도적인 재구성을 일으킨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네트워크 해시파워의 51% 이상을 장악하면 이러한 재구성을 언제든지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걸 막기 위해서는 공격비용을 크게 만드는 것이 유효한 방법이 된다. 즉 51% 공격에 필요한 비용이 50억원 아니라 5천억원이라면 공격가능성은 크게 줄어든다고 할 수 있다.


비트코인이 속도도 느리고 확장성에 있어서도 경쟁력이 없어져 가고 있지만, 암호화폐 1위 자리를 지키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51% 공격에 대한 비용이 가장 크다는 점이다. 그만큼 다수의 컨펌이 이루어진 트랜잭션이 reorg에 의해 탈락될 가능성이 없어진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글로벌 페이먼트 시스템으로 쓰기에는 속도도 여전히 문제이지만, 매번 트랜잭션 비용도 너무 크다.


자 이를 해결위해 칼은 비트코인 대신에 이더리움체인에 구현된 플라즈마를 이용한다. 속도는 올리고 트랜잭션 비용은 줄이고, 그러면서도 시큐리티는 이더리움 메인체인에 의해 보장되는 그런 구조를 만들어 보려는 것이다.




이더리움과 플라즈마 체인은 독립적인 별도의 체인이다. 이더리움 메인 체인 공격비용은 매우 비싸고 그래서 시큐리티상 더 안전한 체인이지만 느리다. 반면 플라즈마 체인은 빠르고 트랜잭션 비용도 싸지만 네트워크 공격비용이 훨씬 작기 때문에, 보안상 문제가 있다. 이 둘을 연결하기 위해 플라즈마 체인에서 일어나는 모든 트랜잭션을 묶어서 집약된 해시값을 이더리움 메인체인으로 포스팅해준다. 그리고 플라즈마체인에서 움직이는 코인은 이더리움 메인체인위에 담보로 묶여있다. 플라즈마 체인위에서 일어나는 트랜잭션을 묶어주기 위해 기본적으로 머클트리(Merkle Tree)를 이용한다. 개별 트랜잭션들의 해시값을 두개씩 묶어서 다시 해시값을 계산해서 올라가면 최종적인 루트해시값 하나만 나온다. 이 루트해시값을 이용하면 플라즈마 체인에 있던 트랜잭션들의 존재여부를 매우 적은 양의 데이타만으로도 확인가능하게 할 수 있다.


위의 그림에서 바닥에 있는 플라즈마 체인상의 여러개의 트랜잭션들이 하나의 루트해시로 묶여져서 이더리움 메인체인 블록에 기록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플라즈마 체인을 공격하기 위해 공격자가 5억원을 들여서 플라즈마 채굴자들을 매수해서 토큰을 훔치는 트랜잭션이 들어간 나쁜 블록을 생성했다고 가정할 때, 사용자들은 이 트랜잭션이 룰을 어겼다는 증거(Fault Proof)를 만들 수 있고, 이를 이더리움 메인체인에 클레임을 걸면, 공격자와 매수된 채굴자가 담보로 걸어둔 이더리움 메인체인의 코인은 소각되고, 반대로 정상적인 사용자들은 자신들의 코인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된다. 즉 플라즈마 체인에 대한 공격을 이더리움 메인체인이 막아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구조이다.


최근 한국에서 소위 3세대 코인이라고 불리우는 많은 체인들이 블록생산자나 밸리데이터의 수를 대폭 줄여서 성능향상을 꾀하고 있지만, 이것은 퍼블릭 체인으로서의 탈중앙성을 훼손하면서 얻는 트레이드오프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플라즈마 체인은 이더리움 퍼블릭 체인의 탈중앙성과 이에 기반한 시큐리티를 베이스로 하되, 트랜잭션 속도와 성능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훨씬 더 이상적인 해결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즈마체인은 Layer 1에서 주로 진행되고 있는 PoS, 샤딩과 더불어 Layer 2 에서 스테이트 채널과 함께 이더리움 스케일링 솔루션의 핵심 프로젝으로 부상하고 있다. 칼의 강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위의 개념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할 수 있다.


칼의 빠른 강연속도와 뿜어내는 열기는 이미 행사장 안을 가득 메웠고, 행사 주최측은 에어콘대신 대형 환풍기를 뒷문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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