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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성을 중시하는 암호화폐 제트캐시(zcash)가 오버윈터(Overwinter)라 이름 붙은 중대한 업그레이드를 앞둔 가운데, 오버윈터를 순조롭게 진행하려는 개발자들의 바람이 뜻밖의 난관을 만났다.

블록체인 코드를 업데이트하는 하드포크 예정일을 불과 몇 일 앞두고, 제트캐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핵심 개발자가 그동안의 작업에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면 제트캐시에서 갈라서겠다고 위협하고 나선 것이다. 윈도우용 제트캐시 지갑 소프트웨어의 유일한 관리자 D. 제인 머서(D. Jane Mercer)는 지난 19일 제트캐시 포럼에 올린 글을 통해 그가 관리 작업에 필요한 자금을 후원받지 못하면 개발을 즉각 중단하고 제트캐시의 경쟁 블록체인을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머서는 포럼에 올린 글에서 지난해에는 개발자 수수료와 고객들로부터 받은 후원금으로 생계를 이어갔으나, 후원금이 바닥을 드러냈고 상당 기간 동안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한 채 일했다고 털어놓았다.

알트코인과 관련해 반목이 이어지다 보면 하드포크가 일어나는 법이다. 원래 그렇다. 비트코인캐시가 탄생한 과정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머서의 선언은 제트캐시 커뮤니티 안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당장 오버윈터 업그레이드가 25일로 예정돼있다. 게다가 오버윈터 업그레이드는 사실 그 자체로 대단히 복잡한 업그레이드는 아니다. 오는 10월로 예정된 제트캐시의 새플링(Sapling) 하드포크 업그레이드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특징을 제한적으로 더하는 것에 불과하다. (새플링은 제트캐시의 확장성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익명성도 높여줄 것이라고 개발팀은 보고 있다)

그런데 머서가 현재 제트캐시 지갑 가운데 가장 많이 쓰이는 윈도우용 지갑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손을 떼면 수많은 이용자가 새플링 업그레이드 후에도 쓸 수 있는 지갑이 없어 제트캐시에 접근조차 못 하게 될 것이다.

탈중앙화된 암호화폐 개발 과정에서 끝내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반대 세력과 갈라서는 하드포크 자체는 자연스럽고 건전한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서로 의견이 달라 갈라선 뒤 경쟁하게 되면 논쟁은 커뮤니티 전체로 번지고 이용자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그저 당사자에게 제대로 보상을 지급하면 되는 간단한 문제일 수도 있다."

제트캐시 개발자 아리엘 가비존의 말처럼 우선 머서에게 보상을 지급하자는 목소리에 제트캐시 커뮤니티가 호응했다. 갈라서겠다는 머서를 일단 달래보기로 한 것이다. 익명의 제트캐시 주소에서 80제트캐시(ZEC)가 후원금으로 모였다. 현재 가격을 기준으로 약 1,500만 원가량의 돈이다.

머서는 코인데스크에 "사람들이 몇 달간 먹고살 수 있는 비용을 서둘러 모아줬다. 잘된 일이다."라고 말했다.

공존할 수 없는 대상?


하지만 돌이켜보면 오버윈터 하드포크에 포함된 몇 가지 특징 때문에 네트워크를 볼모로 보상을 요구하고 나서자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진 측면도 있다.

대부분 개발자는 원하면 새로운 블록체인을 만들 수 있다. 암호화폐 기반 경제에는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새로운 블록체인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참여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재정적인 자유를 부여한다. 제트캐시 운영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은 언제든지 새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갈라설 수 있다.

포크를 지지하는 이들은 기존 통화 체제에서는 이런 포크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누구든 원한다고 하드포크를 통해 오늘부터 미국 달러와 경쟁하는 통화를 만들거나 대안 금융 체제를 바로 띄우는 건 한마디로 불가능한 일이다.

오버윈터도 앞으로의 업그레이드와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하드포크에 대비해 이른바 "재연 방지(replay protection)" 기능을 포함해 포크가 일어날 때 기존 네트워크가 제대로 된 쪽에 남을 수 있도록 해뒀다.

그러나 여전히 소프트웨어에는 "자동 노쇠화(auto-senescence)"라는 코드가 있다. 이 코드는 지난 버전 소프트웨어를 16주 이상 쓸 수 없게 하는데, 16주가 지나면 구버전은 폐기하고 자동으로 새 버전으로 업데이트된다.

네트워크 업그레이드가 진행될 때 따르는 위험을 줄이고자 머서는 또 다른 특징을 포함시켰다. 그가 개발한 최신 버전 지갑 소프트웨어에는 기존과 마찬가지로 자동 노쇠화 코드가 있어 (구버전) 소프트웨어는 언젠가 기한이 만료돼 대체된다. 그런데 구버전이 닫히고 새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된 뒤에도 구버전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면 강제로 새 버전으로 옮겨지는 대신 블록체인이 갈라져 예전 버전도 남게 된다.

머서는 "블록체인이 갈라지는 것과 그 블록체인에 참여한 이용자를 자동으로 모두 옮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썼다.

제트캐시 개발자들의 생각은 머서와 달랐다. 오버윈터 이후 구버전 소프트웨어는 소멸하는 대신 안전 모드로 전환돼 가동이 중지될 뿐이고, 그렇게 해야 블록체인이 갈라질 위험 없이 새로운 버전으로 업데이트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머서가 제시한 방법은 블록체인을 갈라놓으니, 무척 난처한 상황에 놓인다.

머서도 그가 커뮤니티 전체를 진퇴양난의 형국으로 몰아넣어 결단을 내리도록 재촉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곧 오버윈터가 진행되고, 오버윈터 지갑이 생성되겠지만 그 지갑은 새플링 업그레이드 전에 기한이 만료된다. 그러면 새플링까지 어떻게 갈 것인가."

그때만 해도 머서는 한 발짝도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 후원금을 받고 난 뒤에는 석 달 안에 새플링 업그레이드에 맞춰 사용할 수 있는 지갑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오버윈터가 윈도우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았다는 둥 터무니없는 소문이 무성하다. 하지만 정작 새플링이 어떤 식으로 업그레이드될지도 아직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이제 나는 커뮤니티에서 어느 정도 지원금을 받아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착수했다."

시의적절한 교훈


머서에게 여기저기서 후원금이 답지한 가운데, 그는 제트캐시 재단과도 통화를 나눴다. 그는 자기와 통화한 제트캐시 이사가 "머서 당신이 블록체인을 갈라놓는다고 위협하는 바람에 제트캐시가 벼랑 끝에 몰렸다"는 식으로 농담을 섞어가며 이야기했다고 코인데스크에 전했다.
나는 이제 완전히 진정했고, 모든 것이 잘 풀렸다. 나는 원래 알트코인에 관해 으레 일어나는 반목과 불화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내 인생에서 일부러 분란을 일으켜 주목받는 일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끈 듯하지만, 머서와 제트캐시 재단이 나눈 대화가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독립적인 개별 개발자들이 얼마나 중요하며 프로토콜 전반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이들이 제대로 보상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명백하게 드러났고, 이는 모든 암호화폐 커뮤니티가 교훈으로 새겨야 할 일이다.

제트캐시 재단은 제트캐시가 채굴될 때마다 그 일부를 "창립자 몫"으로 떼어가는 돈으로 운영된다. 재단은 이 가운데 일부를 교부금으로 지급하기도 한다.

머서와 같은 독립적인 개발자들은 보상의 상당 부분을 암호화폐 시장에 의존하는데, 워낙 가격 변동이 크다 보니 사정이 어려워질 때가 많다. 제트캐시는 특히 올해 들어 가격 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1월에 $876이었던 가격이 현재 $170에 불과하다.

머서는 자신도 (제트캐시의) 날개 없는 추락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털어놨다.

"제트캐시 가격이 급락한 어느 날에는 아침에 눈을 떴더니 이미 투자한 돈의 25%를 잃은 뒤였다."

제트캐시 재단이 교부금을 계속해서 제트캐시로 지급하면 그만큼 교부금 제도 자체도 제트캐시 가격에 따라 휘청일 것이다. 제트캐시 재단의 최고이사 조시 신시내티도 제트캐시 포럼에 쓴 글에서 재단이 다른 방식으로 교부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머서는 무엇보다 이번에 일어난 일을 통해 각 암호화폐가 개발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첫째도 개발자, 둘째도 개발자, 셋째도 개발자가 가장 중요하다! 암호화폐 지갑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운영하는 제삼자 업체나 거래소와도 커뮤니티가 필요하면 직접 소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창구를 만들어놓아야 한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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