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비용의 대용량 데이터 컴퓨팅을 완성시킨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과 같은 인터넷 기업들은 단번에 인터넷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 자리를 차지했다. 이들은 인터넷 안에서 가장 많은 사용자 데이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위치에서 그 데이터들이 말해주는 것들을 거대한 데이터 센터에 집중시켰다. 인류의 역사에서 어떤 존재도 이 정도로 데이터를 집중시켜 지배한 사례는 없었다. 그들은 데이터가 쌓일수록 더 현명해졌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데이터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건 자신들밖에 없었다.

개인들은 이들의 서비스 안에서 자유를 누렸다. 특히 개인들은 현실 세계에서 자신들을 속박하고 있는 ‘국가주의적 경계’들을 그들의 서비스 안에서 쉽게 넘나들 수 있었다. 트위터를 무기로 결국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재스민 혁명을 생각해보라. 사용자들은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사적 영역 안에서는 세계 시민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기꺼이 자신의 데이터를 그들에게 열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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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탄생에서 활약한 전문가들이 미국방성 산하의 연구기관과 대학의 연구소들에 소속된 ‘제도권 내 자유주의자’들이었던 것에 반해, 퍼블릭 블록체인의 탄생을 이끌고 있는 전문가들은 ‘아나키스트’에 더욱 가까운 자유주의자(Libertarian)들이었다. 비트코인의 창시자는 그 스스로 ‘익명’의 인물이었고, 그런 이유에서 비트코인 커뮤니티는 인터넷을 탄생시킨 전문가 커뮤니티와는 유사성은 있지만 매우 달랐다. 최초의 비트코인 수령자로 알려진 할 핀니(Hal Finney)나 비트코인에 앞서 비트코인에 사용된 주요 기술들을 개발한 웨이 다이(Wei Dai), 닉 재보(Nick Szabo)는 전통적 의미에서 ‘조직에 소속된’ 전문가들이라기 보다는 해커들에 가까왔다.(물론 상당수는 대학이나 정부, 기업 연구소에 소속되어 있기는 했다.)

비트코인 논문이 발표된 메일링리스트였던 ‘Cypherpunks’는 단순히 암호학자들의 커뮤니티가 아니라 크립토 아나키스트들의 커뮤니티였다. PGP(Pretty Good Privacy)로 미국 정부의 암호제품 전략물자 지정을 비웃은 필 짐머만(Phil Zimmermann)과 Hashcash의 발명자 아담 백(Adam Back), 익명 인터넷 Tor 개발자 제이콥 아펠바움(Jacob Appelbaum), 비트토런트의 창시자 브람 코헨(Bram Cohen)을 비롯해 프로젝트명만 대도 알 수 있는 수많은 크립토 아나키즘적 프로젝트의 당사자들이 Cypherpunks의 멤버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비트코인과 퍼블릭 블록체인이 어떤 토양에서 태어난 기술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암호화 기술의 선구자, 반핵운동가 필 짐머만

크립토아나키스트 전문가들은 분명 인터넷을 발명한 ‘제도권 내’ 전문가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기술을 혁신하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사회를 혁신하기를’ 원했다. 그런 이유에서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은 초기 퍼블릭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의 첫 리뷰어들은 크립토아나키스트들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전통은 공개 블록체인 생태계 안에 상당히 남아 있다.

그들은 ‘암호’의 보편성이 이 세상을 ‘자유롭게’ 만들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려는 세상을 단순한 몇 가지의 원칙으로 ‘환원’시키거나 최소한 ‘공통분모’로 도입하는 비전을 꿈꾸었다. 그들이 원한 것은 ‘자유로운 세상을 위한 강한 토대주의’였다. 그들은 다른 자유주의적 아나키스트들과 마찬가지로 국가 보다는 시장을 신뢰했기 때문에, 그들의 미래 비전 안에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자유주의 경제학이 녹아들어 있었다. 이들은 ‘암호’와 ‘시장’으로 국가나 규제, 법과 같은 다른 사회 시스템들을 대체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들에게 ‘자유’의 가장 큰 적은 ‘자본’이나 ‘시장’ 혹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국가였기 때문이다.

크립토아나키스트들은 인터넷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가 된 해커들과 그리 멀리 떨어진 사람들은 아니었다. 많은 해커들이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를 받으며 기업가가 되었고, 이들은 여전히 8월말 ‘버닝맨 축제’에서 조우한다. 초기의 Cypherpunk는 정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한 암호 프로그램이나 P2P 네트워크 소프트웨어에 몰입했다.

그러나 인터넷 산업이 성장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두 개의 전선’에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알게 되었다. 하나는 여전히 ‘국가’였고, 다른 하나는 ‘초국가 기업의 온라인 컴퓨팅’이었다. 하지만 비트토렌트나 딥웹 Tor 정도로는 그들에게 ‘한 방 먹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닉 재보는 2017년에 이더리움의 의사결정 구조가 비탈릭 부테린에게 집중화되어 있음을 비판하기도 했다.

미국의 정치지형에서 Libertarian들은 베트남 전을 전후로 분화하여, 그 중 일부가 ‘네오콘’이라는 신자유주의자가 되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개별 국가 단위의 정의가 아니라 ‘글로벌한 법치’와 ‘시장’을 실현하기 위해 세계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참고할만한 문헌으로는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기원과 변화’(강명세, 국가전략 2009년 제15권 2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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