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김태권

 

<지난 줄거리>

전세계 인구의 삼 분의 일이 디지털 영주권을 가진 온라인 블록체인 플랫폼의 본거지 거대한 떠다니는 함선 도시 유크로니아호가 미국에 입국 신청을 한다. 백악관에서는 그들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고민한다. 왜냐하면 지난 이 년 동안 급격하게 커온 유크로니아 플랫폼은 이제 전세계 금융, 유통, 엔터테인먼트, 부동산까지 모든 영역을 아우르며 디지털영주권자들에게 그 이익을 골고루 분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실의 기득권층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가상현실 게임 월드는 과연 통합되어 운영될 수 있을까?

유크로니아 플랫폼을 창시한 원로회 주요 멤버인 마훌이 살해된다. 과연 누가, 왜 그런 일을 벌였을까. 퍼스트는 고뇌에 빠진다.

 

“살해용의자는 자살했고, 용병 출신이 아니라 잠깐......”  

퍼스트에게 전화로 연락하던 정보원 베루소의 목소리가 흐렸졌다.

공원 벤치에 앉아서 베루소와 연락을 하던 퍼스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반경 수십 미터 이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체조를 하고 있는 것이 멀리 보였다.  

“괜찮아요?”

퍼스트가 물었다. 비명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베루소는 노트북에 붙인 스티커를 건드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노트북이 폭발했다. 평소에 미리 붙여둔 폭파 장치였다.  

“누가 추적해 들어왔어요. 하마터면 정체를 들킬 뻔 했네요. 이렇게 빠른 놈들은 처음이에요.”

베루소는 헤드폰에 대고 속삭이며 손목에 박힌 노트북 파편을 빼냈다. 상대가 너무 빨라서 서두르다보니 생긴 일이었다.

“아직 누구인지는 모르는 거죠?”

퍼스트가 물었다.

“그것보다 세이무어가 영국 상공회의소 만찬에서 테스와 접촉하려고 한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리버스 ICO에 관한 토의인 것 같아요.”

“가보세요.”

“바로 열 시간 뒤라서 안됩니다.”

“전세기를 예약해놓겠습니다. 초청장도 함께요.”

퍼스트의 문자는 그걸로 끝이었다.
베루소는 책상위의 노트북 파편들을 치우고 벽장을 열었다. 노트북들이 백여 개 정도 늘어서있었다. 그중 은색으로 빛나는 노트북 두 개와 패드 한 개를 꺼내서 여행 가방에 넣었다.  

 

***

 

멀리 기체조를 하는 사람들 중 몸이 좋아 보이는 두 서양인이 퍼스트를 힐끗 쳐다보았다. 퍼스트는 조용히 일어나서 선글라스를 끼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오랜만이네, 퍼스트. 다시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지만, 반갑네.”

소통 장치를 통해 들려온 목소리였지만 왠지 누군지 알것 같았다. 그녀를 퍼스트라고 처음 호칭해준 사람이었다.

“알파님?”

퍼스트는 설마 했다. 이십 여년 전 유크로니아 철학을 창조한 전설적인 아이콘이었다. 그는 지난 오년 간 유크로니아 일에 거의 간섭을 하지 않았기에 그가 일선에서 물러선 줄 알았다.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알파님. “

퍼스트는 그 자리에 꼼짝않고 섰다. 마치 그가 눈앞에라도 있는 듯..

“살해의 원인은 옐로우존이겠지만 사실 화이트존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커.”

“무슨 뜻인지 설명해주세요.”
  
퍼스트는 쫓기고 있는 몸이었기에 다시 몸을 움직여서 인도를 지나서 12차선 도로 위를 자전거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서양인들은 따라오지 않았지만 길가에 주차해있던 검은 세단이 따라오고 있었다. 2차선으로 자전거를 향했다.

“우선 알다시피 유크로니아 플랫폼은 음양오행의 원칙에 따라서 만든거지. 원로회는 뭔가 깔끔하게 떨어지는 그런 원칙을 바랬어. 인도와 중국, 이집트, 유럽의 원형들을 모두 살폈어. 그 중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원칙을 가져온 거야. 통계와 확률적으로도 정치, 노동, 예술, 철학, 통합 장치들이 딱 맞아떨어졌지.”

알파가 말을 이어 나갔다.

“음양오행에 따르면 나무는 불을 도와주고, 불은 땅을, 땅은 금속을 금속은 물을 만들지. 물은 다시 나무를 도와주고. 나무는 땅을 극하고 땅은 물을, 물은 불을, 불은 금을 극하고 금은 다시 나무를 극하지. 서로 상생하면서 견제, 감시하는 완벽하게 수평적인 구조지.“

“급박한 상황입니다. 저는 철학에 문외한인 것을 염두에 두시고 포인트만 짚어주십시오.”

퍼스트는 붉은 신호등 앞에 잠시 멈춰서 말했다. 검은 세단도 이십미터 뒤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던가?  아예 처음부터 다시 짚어 보지. 블랙존은 물과 철학을 의미해. 그러면 블랙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만한 구조는 두 군데서 올 수 밖에 없어. 통합을 의미하는 옐로우존과 정치를 의미하는 화이트존이야. 즉 유크로니아를 통합하려는 시도 때문에 세력이나 정치 세력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확률적으로 높지.
처음에 유크로니아 플랫폼에 더 파이브를 들였을 때 누가 화이트 존과 옐로우 존을 맡게 되었지?”

“백호와 기린입니다.”

“기린은 지금 AI에이전트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을테고 백호는 어디있나? “

알파가 물었다.

“추적자를 붙였습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그의 목숨도 부지하기 힘들 거야.”

알파가 말했다. 그 순간 검은 세단이 순식간에 신호를 무시하고 퍼스트를 향해 달려왔다. 자전거와 정면충돌할 기세였다. 퍼스트는 순식간에 공중돌기를 해서 위기를 모면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위로 날아올라가 사라졌다. 이 곳이 오프라인이 아니라 유크로니아 게임월드 안의 가상 도시 였다는 것을 감안해도 이런 노골적인 PVP를 대낮에 시도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는 프로입니다.”

퍼스트는 60층 건물 꼭대기에서 말했다. 베루소는 미국정보국에서 일한 인재로 세이무어의 수하에서 수년간 일을 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유크로니아 주재 백악관과 자금성, 크레물린 궁, 각 나라의 증권거래소 등 현실세계에 있는 상당 수의 정치와 경제와 관련한 거래소와 세계 의회 등이 한 도시에 모여 있었다. 비록 현실 세계의 실제 상황은 아니었지만, 이 존에서는 수 많은 정치 정보들과 협잡과 청탁, 그리고 거래, 살해협박이 이어졌고, 상당 수는 실제 경제와 정치 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녀가 있는 곳은 화이트존이었다.
 


<영국 상공회의소>

“테스, 오랜만이네.”

영국 상공회의소가 개최한 정치인 간담 만찬에서 세이무어는 테스와 악수를 했다.

“화이트존에서 새로 런칭한 리버스 ICO 기업 몇 개가 정말 커다란 성공을 가져올 기세더군요. 그러다가 나스닥 상장 기업 전부가 화이트존에 둥지를 틀면 어쩌시려구요?”

테스가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베를루스국과 레드존의 주작이 비공개 투자자로 개입하면 화이트존의 대세는 우리로 기울겠죠. 어차피 그렇게 되면 우리가 실권을 쥔 것이나 마찬가지지 큰 문제는 없습니다.”

세이무어가 웃었다.

“베를루스국의 국민들은 공평한 분배를 지향합니다. 미국 부자들의 사적인 플랫폼을 만드는데 기여하지는 않을 거에요.”

테스가 말했다.

“공평한 분배는 참 좋은 얘기죠. 하지만 그것도 경제가 잘 돌아갈 때의 얘기고. 베를루스 국의 상황이 안 좋은 것도 들었습니다.”

“그렇죠. 아직 토큰 경제의 초입이라 혼란하지만 곧 궤도에 올라가면 유크로니아 플랫폼에서 적극적으로 생산활동을 하는 베를루스국의 국민들이 가장 큰 이득을 볼겁니다.”

“글쎄요. 유크로니아 플랫폼이 과연 언제쯤이나 궤도에 오를까요? 십년. 이십년? 그때까지 레드존에서 티킷(TIKIT) 플랫폼과 워터밤(Water Bomb) 공연장의 수익금을 몰래 빼돌리면서 근근히 재정 적자를 해소할겁니까? “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한때 세계에서 명성이 높았던 베를루스국의 여왕의 위치가 끝도 없이 추락하는게 안타까워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세이무어가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테스는 분홍 새틴 드레스를 사각거리며 세이무어 옆을 지나쳤다.

“마훌이 죽었습니다.”

“들었어요.”

테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지만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그가 유크로니아에 베를루스국이 안착하도록 많이 도운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없어진 현재 누가 베를루스국을 뒤에서 도와줄까요? 고작 열여덟살인 천진난만한 가수를 믿고 계신 건가요?.”

세이무어는 샴페인을 한 잔 테스에게 건넸다.

“ 이번 리버스 ICO에는 세계 최고의 노르웨이의 조선사와 에너지 기업들, SNS플랫폼들이 뭉칩니다. 여왕님이 조선사 대표와 북유럽 에너지 기업들과 친분이 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거대한 자본이 끼어든다면 수 많은 세계의 정치인들도 이제 유크로니아에 들어올겁니다. 국경도 없는 온라인 세상을 우리 몇몇이 사이좋게 나눠가질 수 있는 거죠.”

“유크로니아는 민의를 기본으로 하는 것을 잊으셨나요? 모든 이들이 평등하게 유크로니아의 자원을 나눠가질 수 있는 권리가 있죠.”

테스는 샴페인 잔을 굴리며 색색의 거품을 감상했다.

“한번도 잊은 적은 없죠. 믿지 않을 뿐이죠. 미국의 독립선언서같은 소리니까요. 불평등은 자연의 진리입니다. 선언서 이후 수백 년이 지난 현재 미국을 보시면 알거에요. 제가 예견해드리죠. 온라인이라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겁니다.

세이무어는 샴페인 잔으로 건배를 요청했다.

“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유크로니아호가 준비 중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가수는 당신의 손녀와 같이 그 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희망과 자유의 슬로건을 내건 우드스탁 선상파티를 하고 당신은 우리와 파티를 하면 됩니다. 앞으로 영원히.”

세이무어가 말했다. 테스는 샴페인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에게 끄덕 인사하고 지나쳤다. 몇 발자국 가더니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뒤돌아서 위엄있는 목소리로 크게 말했다.

“건강이 좋아지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래도 조심하세요. 인심이 흉흉합니다. 마훌처럼 훌륭한 사람도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시대니까요. 그럼 말씀하신 사안은 서면으로 부탁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의문의 죽음과 여왕님을 연결시키는 것을 알고 계시는지요? 빨리 힘을 기르셔야 합니다. ”

세이무어가 말했다. 테스는 아무 대답 없이 세이무어에게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보이고 연회장을 벗어났다.
그녀가 떠난 뒤에도 연회장안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돌아갔다. 하지만 두 사람의 회합으로 인해 온라인 유크로니아의 형세는 영원히 바뀔지도 몰랐다.

 

 

<다음주에 계속>

<지난화 보기>

9화_블랙존에서 열린 총회 

8화_아버지가 남긴 것

7화_ 예술가들의 천국

6화_세라, 유크로니아 16번째 달의 이름

5화_VR과 AR이 조합된 게임월드, 시험운영은 끝났다

4화_민이 낸 수수께끼를 풀어라

3화_살아남은 자들의 아침

2화_더 퍼스트의 속삭임

1화_유크로니아국의 입국 신청



윤여경


‘세 개의 시간’ 한낙원 과학 소설상 (2016)
‘러브 모노레일’ 황금가지 공모전 우수상 (2014)
한국SF협회 부회장 및 아시아SF협회 창립자

중국 최대 SF출판사 '과환세계', 'FAA', '스토리컴' 및 인도SF협회, 일본 SF작가협회, 남아시아 유명 작가 등을 섭외하여 아시아SF협회를 설립했다. (2018년 5월 19일 베이징 APSFCon) 아시아 SF연구 교류, 세계SF컨벤션에 한국SF작가들을 대동하여 홍보하는 등 국제교류에도 힘쓰고 있으며, 해외출간, 과학소설 VR 웹툰화 및 영화화 추진, 인공지능 작곡 과학소설 OST 등 OSMU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선임강의교수
빅뱅엔젤스 매니징파트너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파트너
코인데스크 코리아 칼럼니스트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석사는 사회과학 계열의 보건정책관리학, 박사는 공학계열의 의공학 등 서로 다른 학문을 넘나드는 국내의 대표적 융합전도사. <거의 모든 IT의 역사>,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내 아이가 만날 미래> 등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와 미래에 대한 많은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또한 SF영화의 장면들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국책과제도 수행하였고, 이와 관련한 주제의 외국서적인 <스타워즈에서 미래 사용자를 예측하라>를 번역하였으며, 대학에서도 이와 관련한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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