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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들(doges) 사이로 들키지 않고 고양이를 몰래 숨겨보세요!"

이더리움 기반 스타트업 클레로스(Kleros)가 출시한 새로운 게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지난달 암호화폐 판매로 250만 달러를 마련한 클레로스는 암호화폐 경제의 기본 원리를 적용한 '도지 판정단(Doges on Trial)'을 선보였다. 토큰으로 적절한 보상을 지급해 이용자의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한다는 설정이다. 게임 이용자들은 도지들의 표정을 기발하게 합성한 사진을 비롯해 다양한 도지 이미지를 고르고 솎아내어 보상을 받는다.

난데없이 도지가 무엇인지 궁금할 분들을 위해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도지는 일본 토종견인 시바견 이미지로, 어떻게 보면 새침하고 또 달리 보면 어딘가 겁에 질린 표정을 하고 있다. 이 이미지는 온라인에서 유행이 되면서 밈(meme) 반열에 올랐다. 도지를 우리말로 옮기면 멍멍이 대신 멍뭉이 정도가 된다. 영어로 개를 뜻하는 단어 'dog'에 일부러 'e'를 붙여 맞춤법은 틀리지만 귀여움 어감을 주는 도지(doge)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이다. 사진 속 도지 옆에 붙은 말풍선이나 단어들을 보면 그 이름처럼 하는 말도 어딘가 엉뚱하면서도 웃긴 말들이다. 예를 들어 "so scare(무서웡)", "why this happned(이거 뭐임)" 같은 말들이 있다. 도지 전용 암호화폐 도지코인(dogecoin) 이용자들은 이미 이같이 별나고 재미난 행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도지 판정단"이라는 제목만 보고 가볍게 즐기고 마는 게임 정도로 생각했다가는 클레로스가 그리는 더 큰 그림을 놓칠 수도 있다. 클레로스는 궁극적으로 도지코인을 탈중앙화 분쟁 해결 프로토콜의 핵심 매개체로 쓰고자 한다.

예를 들면 클레로스의 구상 안에는 가짜뉴스를 가려내고, 긱 경제(gig economy, 산업 현장에서 필요에 따라 사람을 구해 임시로 계약을 맺고 일을 맡기는 형태의 임시직 경제)나 전자상거래 플랫폼상에서의 분쟁을 중재하며, 사용자의 사용 후기를 토대로 순위를 매기는 플랫폼 등이 포함돼 있다.

클레로스의 창업자이자 CEO인 페데리코 아스트(Federico Ast)는 코인데스크에 당찬 포부를 밝혔다.

누구나 암호화폐를 스스럼없이 모든 분야에 사용하게 되는 것이 결국 암호화폐 생태계에 무척 중요하다. 우리 서비스가 그런 날을 앞당길 것이다.

이는 사실 블록체인 전반에 있어 필요한 문제의식이다. 최근 블록체인 사업가와 지지자들은 블록체인상에서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토론을 벌여왔다. 이 토론에는 블록체인의 합의 메커니즘을 비롯한 거버넌스 문제 전반에 대한 다양한 고민이 담겨 있다.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많은 이들에게 무척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 합의 메커니즘 자체가 너무나 불투명하고 허점 투성이어서 혼란이 가중됐던 EOS 사례만 보더라도 그렇다.

아스트는 다른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직접 분쟁 해결 방식을 만드느라 고민하는 대신 손쉽게 클레로스의 방식을 도입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현재 톰슨 로이터가 주관하는 인큐베이터에 참여하고 있는 클레로스가 암호화폐 경제의 기본 원리를 정확히 이해한 메커니즘임을 입증하기 위해 선보인 것이 바로 게임 "도지 판정단"이다. 게임의 목표는 간단하다. 수많은 도지 사진들 사이로 고양이 사진을 들키지 않게 합성하거나 슬쩍 집어넣는 것이다.

고양이 사진은 도지 사진이 아닌 이물질이자 거짓 정보다. 블록체인상에서 일어나는 거래로 치면 네트워크 검증 과정에서 기각하고 걸러내야 하는 거래에 해당한다. 아스트가 “가능한한 많은 사람이 이 게임에 도전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뇌물을 쓰든 다른 나쁜 수법을 동원하든 마치 클레로스를 기만하면 챙길 것이 많은 상황인 것처럼 고양이 사진을 슬쩍 끼워 넣으려 해도 쉽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도지 판정단은 지난달 이더리움 메인넷에 정식으로 출시한 뒤에도 아직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아스트는 도지 판정단에 숨은 원리와 가능성을 앞으로 더 많은 이더리움 커뮤니티에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양이는 사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도지의 개념 증명 과정부터 함께 짚어보자.

지난 두 달간 수십 명이 도지 판정단 게임에 참가했다. 수십 명의 대부분은 클레로스의 자체 토큰인 피나키온 토큰(PNK)에 투자한 투자자들이었는데, 이들이 지금까지 판정단에 제출한 사진은 다 합해서 100장이 넘는다.

게임 방법은 이렇다. 사용자는 이더(ETH)로 예치금을 내고 함께 도지나 도지로 위장한 고양이 혹은 다른 사진 혹은 그림을 제출한다. 사진을 제출한 뒤 24시간 동안은 누구든 사진을 올린 이가 낸 만큼의 예치금을 걸면 그 사진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하루 동안 누구도 사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그 사진은 심사를 통과한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그리고 사진을 올린 사람은 예치금을 돌려받는다.

모든 판정이 끝나고 나면 성공적인 사진을 올린 사람들이 총 100만 도지코인을 서로 나눠 갖는다. (판정의 마감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 이런 식으로 도지 사진을 올리면 된다.

 

사진 속에 도지가 한 마리도 없거나 다른 사진을 복제한 경우라면 누구든 사진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사진 속에 고양이가 들어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의 신청이 정식으로 접수되면 클레로스 이용자 3명으로 이뤄진 판정단이 사진을 심사한다. 이 판정단은 피나키온 토큰으로 예치금을 낸 사람들이다.

판정단의 심사 결과는 사진을 승인하거나 거절하거나 둘 중 하나다. 만약 판정이 2:1로 나뉘면 소수 의견에 투표한 사람의 피나키온 토큰 일부를 몰수해 다수 의견을 낸 두 명에게 나누어준다.

판정단의 심사 결과 사진이 최종 승인을 받으면, 이의를 제기했던 사람이 낸 예치금은 판정단이 일부 수고비로 가져가고 원래 사진을 제출했던 사람이 가져간다. 반대로 사진이 거절되면 처음 사진을 제출한 사람의 예치금을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가져가게 된다. 물론 판정단은 이때도 수고비를 받는다.

* 판정단이 심사 중인 도지 사진

 

사진을 처음 제출한 사람이 판정단의 심사 결과에 불복하면 다시 항소할 수도 있다. 그러면 앞서 판정 과정이 반복되는데, 이번에는 판정단의 수가 7명으로 늘어난다. 두 번째 판정 결과에도 승복하지 못해 또다시 항소하면 판정단의 수가 15명으로 늘어난다.

각 항소 단계에서 판정단의 수를 늘리는 것은 판정단을 뇌물로 매수하려 할 때 그 비용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아스트는 설명했다.

“계속해서 시스템을 공격하고 기만하려면 많은 돈을 들여야 할 것이다.”

트리스탄 로버츠라는 이용자가 고양이 사진을 올리고는 판정단에 뇌물을 줘서 사진을 등록하려고 시도했다. 로버츠는 뇌물로 0.3이더(ETH)까지 쓸 생각이 있었지만, 결국 이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판정단을 계속해서 매수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판정이 계속될수록 내가 보상으로 받을 수 있는 이더가 뇌물에 필요한 이더보다 훨씬 적어졌기 때문이다. 이 게임은 대체로 상당히 탄탄하게 구성돼 있었고, 나는 게임을 깰 수 없었다.”

로버츠가 코인데스크에 한 말이다.

doges bribery

 

지금까지 고양이가 있는데도 심사를 통과한 사진이 한 장 나왔다. 도지 판정단 게임 규칙에 따르면 시스템을 이기면 2이더와 크립토키티 한 마리를 보상으로 받게 된다. 다음 사진에 고양이가 있는지, 즉 누군가 시스템을 깼는지 마지막으로 판단하는 것은 클레로스 플랫폼을 개발한 법인 꼬뻬라티브 클레로스(Coopérative Kleros)의 몫이다.

* 이 사진은 어떻게 판정단의 심사를 통과한 걸까? 최종 판결은 클레로스 개발팀이 내린다.


다양한 협력의 발판


만약 클레로스가 “도지 판정단”으로 자신들의 비전을 증명해낸다면, 이 플랫폼은 블록체인 시스템의 다양한 분야에서 중재자 역할을 맡을 자격을 증명해내는 셈이라고 아스트는 말했다.
우리의 목표는 모든 암호화폐 프로젝트가 플랫폼과 서비스, 상품에만 주력하게 하는 것이다. 분쟁이 생겼을 때 필요한 중재는 클레로스에 맡기면 된다.

전자상거래와 게임처럼 각기 다른 분야에서의 많은 암호화폐 프로젝트가 저마다 분쟁을 공정하고 매끄럽게 해결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며 아스트가 한 말이다.

클레로스를 향한 관심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지난 3월, 클로레스는 잉크 프로토콜 (Ink Protocol)을 플랫폼에 통합한다고 발표했다. 잉크 프로토콜은 이더리움에 만든 암호화폐 결제 및 평판 시스템이다. 잉크의 자체 토큰 XNK는 등록된 이용자만 1천만 명에 이르는 전자상거래 사이트 리스티아(Listia)의 신용 결제 체계를 대체했다. 리스티아는 상품을 판매 회사가 아니라 이용자들끼리 교환하거나 거래하는 플랫폼으로 사이트 내 자체 신용 점수가 결제 수단으로 이용됐다.

클레로스는 또 지난 3월 데테르(Dether)와 협업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데테르는 지역을 한정해 사용자들이 현금으로 암호화폐를 사고팔 수 있게 한다.

클레로스의 시스템을 활용한 몇몇 분야에는 비슷한 일을 하는 경쟁 프로젝트도 있다. 예를 들어 가짜뉴스를 걸러내는 데 중점을 둔 이더리움 뉴스 플랫폼 시빌(Civil)도 클레로스와 비슷한 암호화폐 경제 원리를 적용했다.

탈중앙화 예측시장 어거(Augur)도 마찬가지다. 클레로스의 암호화폐경제 연구원인 윌리엄 조지는 "게임이론을 이용해 블록체인 이용자들이 네트워크상에서 서로를 속이지 못하도록 인센티브를 설계한다"는 측면에서 클레로스와 목표가 같은 셈이라고 밝혔다.

아스트는 클레로스 플랫폼이 쓰임새가 무궁무진할 것이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했다.

“클레로스를 활용해 할 수 있는 일은 우리도 다 알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사람들은 클레로스 플랫폼을 이용하며 다양한 활용법을 직접 찾아낼 것이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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