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없으면 다 허용하는 게 원칙" 블록체인 연구하는 판사의 소신
[인터뷰] 홍은표 대법원 재판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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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
김병철 2018년 8월28일 02:20
홍은표 대법원 재판연구관. 김병철 기자.
홍은표 대법원 재판연구관. 김병철 기자.

 

블록체인 세상이 오면 중간자가 사라지고 결국 정부의 역할도 사라질까? 만약 그렇다면 정부는 중앙집권적인 자신의 권력을 분배하는 데 순순히 동의할까?

블록체인의 철학인 분권화는 이런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블록체인이 불러올 이런 형태의 사회적 '파워 게임'을 연구하는 판사가 있다. 바로 홍은표 대법원 재판연구관이다.

홍 연구관은 지난 24일 블록체인법학회 창립총회에서 자신의 연구 주제인 '블록체인과 시민사회'를 발표했다. 코인데스크코리아는 이날 홍 재판연구관을 만나 그의 연구에 대해 물었다.

홍 연구관은 "블록체인은 필연적으로 국가, 대기업 등 정치적, 경제적 기득권자의 반발과 견제를 가져올 것"이라며 "블록체인이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증진하는 구체적인 역할을 논증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블록체인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시나요?

"지금은 제가 홍은표라는 걸 증명하는 국가의 증서를 가지고 다녀야 하죠. 그런데 블록체인으로 신분 증명을 하면, '국가나 은행이 굳이 그 역할을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나올 거예요. 블록체인이 사회에 줄 가장 큰 영향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권한을 뺏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요. 국가도 마찬가지죠. 주민등록증 대신 블록체인으로 신분 증명을 한다면 국가는 세금 걷기가 힘들어져요. 국가 기능을 유지하기 당연히 힘들어지겠죠.

 

(블록체인에 대해) 법무부 등에서 여러 반응이 나온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고 생각해요. 법학회 소속 연구 주제니까 약간 정치, 제도적, 사회적 의미에서 파워 게임의 입장에서 바라본 거예요."


 

-블록체인의 철학인 분권화를 어떻게 보세요?

"사실 중앙화, 분권화 논쟁은 몇 천 년 된 주제거든요.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분권이냐 집중이냐를 가지고 다퉜어요. 시민들 개인의 힘이 커지면 분산화를 하는 거고, 국가의 힘이 커지면 중앙화를 하는 거고요.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집중화된 시스템이잖아요. 예를 들면 미국을 건들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저는 이 조그만 기술이 (이런 중앙화된 시스템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 거대한 돌을 밀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분권화 쪽으로 갈 수 있도록 보호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국가를 구성한 것도 다 시민이잖아요. 이 기술이 합리적인 방향으로 꽃을 피우면 시민 전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봐요."


 

-분산화가 시민에게 좋은 것인가요?

"분권화를 법률면에서 쉽게 말하면 '개인의 자유와 권리 존중'이거든요. 나쁜 게 아니에요.(웃음) 분권화라고 중앙 정부가 없어져야 하는 게 아니거든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라는 게 헌법의 기본 원칙이에요. 그리고 지방자치제를 하라고 되어 있어요. 또 헌법 자체는 입법, 사법, 행정으로 분권화를 해둔 거예요. 왜 그런지 다 아시잖아요. 모이면 권력이 힘을 쓰니까 못하게 나눠놓은 거예요. 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거든요."


 

-분권화로 개선할 수 있는 건 어떤 게 있을까요?

"주민등록제도는 합리적인 이유로 탄생했어요. 시민도 관리하고, 간첩도 못 들어오게 하고, 세금도 내고 얼마나 편리해요. 근데 사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주민등록제도를 가진 나라는 많지 않아요.

 

미국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목적에 따른 번호가 있는 거예요. 세금 납부 번호가 있고, 주에서 발급하는 운전면허증이 따로 있고요. 우리나라는 주민등록증 하나로 다 되잖아요.

 

피싱 사기 같은 게 사실 중앙집권화에서 나온 문제점이에요. 그걸 없애려면 데이터베이스를 분권화해서 가져야죠."


 

-또 다른 예가 있을까요?

"사실 제가 제일 원하는 건 코인을 막 발행해서 돈 벌고 그런 프로젝트가 아니고요. 블록체인을 통해 시민 자유와 권리를 증진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젝트가 나왔는데, 만약 그게 법 제도 때문에 지장을 받는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기초작업을 하려는 거예요.

 

예를 들면 분산 네이밍 서버를 미국 한 군데서 관리하잖아요. 이걸 굳이 한 군데 말고 인터넷 전체로 프로토콜을 바꾸는 거죠. 미국에선 블록체인을 활용해서 이런 걸 구현하려는 프로젝트가 있어요.

 

개인의 남는 컴퓨터 자원을 공유하는 스토리지(Storj)같은 것도 있잖아요. 이 두개가 결합하면 웹 서버를 한 군데서 통제하는 것도 개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도) 젊은 사람들이 블록체인을 공부하면서 그런 가능성을 볼 것 같거든요."


 

-블록체인의 좋은 점이 있지만 범죄에 활용될 우려 같은 것도 나오잖아요.

"사실 모든 기술은 범죄와 연결될 수 있어요. 인터넷을 활용한 범죄가 얼마나 많아요? 차로 죽는 사람이 총으로 죽는 사람보다 많고요. 그렇다고 자동차를 금지할 수는 없잖아요. 마찬가지예요. 저는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봐요.

 

기술이 태동하는 시기에 너무 범죄만 강조하다보면 마치 이게 나쁜 기술인 것처럼, 청소년 유해물인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래서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려는 거예요.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거죠. 둘 다 비례해서 봐야 하는데 지금은 너무 안 좋은 점만 비춰지고 있어요."


 

-앞으로 연구를 어떻게 진행하실 생각이세요?

"논문이니까 사례도 수집하고, 진짜 블록체인 기술이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증진한다는 걸 논증해야죠.

 

국가가 말도 안 되는 규제를 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한다는 원칙이 발현되고 있지 않는 것 같은 상황도요.

 

헌법에는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예외적으로 해야 한다고 되어 있어요. 그 원칙이라도 잘 지켜달라는 거예요. 법이 없으면 다 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근데 지금 법이 없는데 안 그렇죠."


 

-독점권을 행사하던 조직의 견제가 있을 텐데, 블록체인이 제삼자를 대체하는 게 가능할까요?

"글쎄요. 그래서 시민들이 블록체인 기술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봐요. 시민들이 나서서 자기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면 기술이 좀 더 성공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봐요. 100% 성공한다고 보진 않아요.

 

인터넷 기술을 보면 처음에는 '인터넷 사이버 독립 선언문'까지 나왔어요. 내 사이버 공간에 국가가 들어오지 말라는 독립선언문까지 나올 정도로 시민사회가 열광했어요.

 

하지만 (인터넷이) 널리 퍼지다보니 제도적으로 관여할 수밖에 없거든요. 통제를 시도할 수밖에 없어요. 그걸 뚫고 좋은 방향으로 가길 원하는 거죠. 큰 돌의 방향을 살짝 바꿔서 좋은 방향으로 만들고 싶은 거예요.

 

그렇다고 제가 무정부주의자나, 사이퍼펑크 또는 크립토펑크 그런 입장은 아니에요. 저는 법원에 있고요.(웃음)"


 

홍은표 대법원 재판연구관은 법원 연수로 2015년부터 2년 여간 미국에서 이벤 모글렌(Eben Moglen) 컬럼비아 대학 교수와 '인터넷과 사회' 등에 대해 공부했다.

그가 운영하는 위키피디아 웹사이트에 가면 블록체인에 대한 그의 칼럼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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