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겨레 자료사진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구에서 비트코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제도권 금융을 이용할 길이 사실상 막혀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비트코인은 생명줄이 되고 있다.

가자 지구에서 활동하는 재무 분석가 아흐메드 이스마일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암호화폐를 거래할 수 있는 비공식 '거래소'가 적어도 20곳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스마일 본인도 고객 30여 명이 비트코인으로 주식 등 해외 자산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줬다. 가자 지구에서는 마땅히 돈을 굴릴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마찬가지로 가자 지구에서 암호화폐 딜러로 일하는 모하메드는 코인데스크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4년 동안 매달 최대 50가구가 가구당 평균 500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구입하여 해외 송금 또는 온라인 쇼핑을 할 수 있게 도왔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비트코인은 더 저렴하고 더 안전하고 더 빠른 경제 수단이다. 팔레스타인 자치구의 은행은 무용지물인데, 비트코인 지갑이 은행을 대신하고 있다.”

물론 팔레스타인 외에도 정치적, 경제적으로 고립된 동시에 암호화폐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하는 지역이 있지만, 팔레스타인 시장은 암호화폐 도입의 요인과 한계 측면에서 상당히 독특하다.

예를 들어, 팔레스타인에서는 베네수엘라나 이란, 터키에서처럼 초인플레이션 현상에 대처하기 위해 공급이 제한적인 디지털 화폐를 사재기할 필요가 없다. 팔레스타인만의 고유 화폐가 없고 안정적인 외화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검열하기 어려운 퍼블릭 블록체인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팔레스타인 자치구에서 비트코인이 특히 매력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다. P2P 방식의 비트코인 거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일단 거래 대금을 치른 결제가 완료되고 나면 제3자가 중간에 개입해 거래를 취소할 수 없다. 이스라엘의 계속된 봉쇄로 세계 경제나 국제 금융 시스템에 대한 접근 자체가 막혀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해결책인 것이다. 그동안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서구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국민에게 돈을 보냈다는 이유만으로 은행 계좌가 폐쇄되는 일도 있었다.

“팔레스타인 기업가들에게는 해외에서 결제 대금을 받을 수 있는 페이팔과 같은 플랫폼이 없다. 그래서 개인 노드를 가진 블록체인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있는 비영리단체 팔레스타인 테크노 파크의 래이스 카시스 대표의 설명이다.

그러나 전력 공급이 수시로 중단되고 주요 은행조차 외부 세계와 거래할 때 종종 어려움을 겪는 팔레스타인이다 보니 전자 화폐의 역할에도 한계가 있다.

 

팔레스타인의 현실


비트코인을 보내고 받는 일은 자유롭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비트코인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공식적인 경로가 존재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국민은 이스라엘 화폐인 셰켈이나 미국 달러, 요르단 디나르를 온라인 암호화폐 거래소로 옮길 방법이 없다. 현지 은행 거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 돈이라도 현금을 마련하려면 딜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암호화폐 거래가 완전히 자유롭지만은 않다.

팔레스타인 기술자 한 명은 자기가 일한 대가를 해외에 있는 고용주로부터 비트코인으로 받았는데, 가자 지구의 딜러를 통해 이를 현금으로 바꿨을 때 당시 비트코인 가격이 치솟은 탓에 제대로 된 환율을 적용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책 <비트코인 표준(The Bitcoin Standard)>의 저자인 레바논 아메리칸대학교 경제학과의 사이프딘 암모스 교수도 암호화폐가 자신이 태어난 팔레스타인의 경제적 어려움을 풀어줄 열쇠가 되리라는 주장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거래하고자 하는 쌍방이 모두 비트코인 잔고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이상, 자국 통화에서 비트코인으로, 또 비트코인에서 자국 통화로 환전하는 별도의 단계가 추가로 필요한데, 비트코인이 지속적 해결책이 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암모스 교수는 이어 팔레스타인 통화 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국가 차원의 암호화폐 도입 계획이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으로 내다봤다.

(통화 당국은) 비트코인을 기존의 화폐 시스템에 추가할 수 있는 결제 솔루션으로 생각합니다. 핵심을 완전히 놓치고 있는 거죠. 비트코인이 고유의 결제 솔루션을 보유한 독자적인 통화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팔레스타인 사회는 높은 실업률과 빈곤율 때문에 생필품 수급이 여의치 않으므로 지역 경제는 신뢰할 수 있는 가까운 공동체 안에서 현금 등 물적 자산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국민 21%는 하루 약 6,100원이 채 안 되는 생활비로 살아가는 극빈층이다.

따라서 변동성이 크고 현금으로 바꾸기 쉽지 않은 비트코인 같은 자산은 국경 간 거래에는 쓸모가 있을지 몰라도 팔레스타인 같은 곳에서 일상 거래에는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

 

암호화폐 민족주의


반면, 카시스 대표 같은 기술업계 낙관론자들은 대개 암모스 교수나 이스마일과는 달리 팔레스타인 통화 당국의 계획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을 비판하기보다 암호화폐를 성공적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한다.

카시스 대표의 테크노 파크는 9월 첫 주, 학생부터 기업가, 공무원까지 총 29명이 참가한 가운데 첫 번째 블록체인 교육 캠프를 개최했다. 닷새간 계속된 캠프가 끝날 무렵, 일부 개발자들은 새로운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착수했으며, 통화 당국 관리들은 센터의 교육용 프로그램 작성에 참여했다.

카시스 대표는 “분산원장의 모든 특징은 팔레스타인 자치구에 P2P 거래가 도입되어야 하는 이유와 맥이 통한다”라며 “P2P 거래를 통해 팔레스타인 기업가들은 국제적 사업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블록체인과 핀테크는 네트워크 분산화를 강화시킴으로 우리 경제의 역학 관계를 변화시키고 상당수의 금융 제약을 해결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카시스 대표는 올해 말 선보일 테크노 파크 크립토 해커톤과 같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개발자들의 뜻과 의지를 모아 좀 더 규격화된 결제 솔루션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독자적 전문 기술을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테크노 파크가 요르단강 서안 지역의 4개 대학에서 개최한 비트코인 세미나는 비트코인 외에도 정부 지원 시범사업, 리플(Ripple) 등의 업체가 제공하는 기업 암호화 서비스, 코인 발행 등 여러 주제를 다루어 왔다. 카시스 대표는 암호화폐라는 새로운 현상을 팔레스타인 경제에 소개하고 자리를 잡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핵심은 사람들의 인식을 제고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내는 데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암호화에 대해 은행 IT 기술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암모스 교수도 비트코인이 당장 큰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사회 변화를 촉발할 거대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암모스 교수는 중동의 여러 나라를 포함해 전쟁과 같은 파괴적인 활동에 돈을 대는 정부들의 공통점은 중앙은행을 국가가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한다. 그 대신 비트코인 같은 탈중앙화 가치를 지닌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성장하고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면 그만큼 정부가 화폐를 마구 찍어내고 통화정책을 함부로 운용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암모스 교수는 말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암호화폐의 등장과 성장은) 전 세계적으로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특히 중동 지역은 큰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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