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한지 어언 15년이 됐다. 우리나라 기자들은 보통 출입처 혹은 취재분야를 1~2년마다 바꾼다. 출입처를 바꾼다는 건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직장을 바꾸는 것만큼 큰 변화다. 경찰 혹은 검찰이 수사하는 사건을 쫓는 기자와 어느 정당의 내밀한 권력다툼을 취재하는 기자, 어느 기업이 내놓은 신제품의 장단점과 소비자 반응을 분석하는 기자, 정부의 교육 혹은 부동산 정책을 파고드는 기자, 내로라 하는 학자들이 벌이는 학술적 논쟁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풀어주는 기자의 일상과 업무형태는 정말 다르다. 그래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라는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다루는 전문매체를 만든다고 했을 때도 어떻게든 되겠지,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코인데스크코리아>를 창간한지 꼭 6개월이 지났다. 매일 같이 처음 들어보는 기업들이 보도자료를 들고 찾아온다. 저널리즘의 원칙에 대한 고민 따위 생략하고 만든 블록체인 전문매체들이 워낙 많아서인지, 기업들은 다짜고짜 얼마를 내면 보도자료를 기사로 내줄 수 있냐고 묻는다. 돈 받고 보도자료 게재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자료 검토해봐서 기사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돈과 상관없이 게재한다고 안내를 한다.

나름 정중하게 언론의 품위를 지킨 것 같아 보일지 모르겠지만, 저 밑에는 더 근본적이고 부끄러운 문제가 있다. 진짜 문제는 이 블록체인 세상에서 뭐가 기사로 쓸만한 내용이고 뭐는 아닌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거다.(이런 나를 편집장으로 두고 있는 코인데스크코리아 기자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지난해 처음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란 걸 접했을 때 내게 가장 크게 와닿았던 건 절대 권력이 된 중개인을 배제한다는 것이었다. 포털 서비스에 종속된 한국 언론의 비루한 현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이 중간에서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돈을 챙기는 구조를 바꿀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가! 그런데 요즘 받아보는 보도자료들은 거의 예외없이 자신들의 프로젝트가 이런 멋진 일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추구하는 이상과 명분은 기사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 각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저마다 제시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는지 따져봐야 할까? 명문대를 나왔거나 글로벌 대기업 출신들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들은 믿어주고, 그렇지 않으면 의심스러운 눈길로 봐야 하나? 10년이 지나도록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의 인물이 시작한 게 블록체인 기술인데, 학벌이나 스펙으로 역량을 평가한다는 건 우스운 일 아닌가. 이미 사업 역량이 검증된 기존 기업들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라면 믿고 기사를 쓸 만한가? 전혀 새로운 경제모델을 추구하는 블록체인 업계에서 기존 기업들을 우대하는 것이 과연 좋은 방법인지 모르겠다. 아이디어의 독창성은 어떤가? 외국에 이미 비슷한 사업모델이 있다는 이유로 국내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폄하하는 건 정당한가.

기사 가치를 어떻게 판단하는 게 옳은지에 대한 내 고민이 어느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성공할 가능성이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비슷해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선 흠칫 놀랐다. 내게 그런 선구안이 있다면 이미 벤처 투자자로 이름을 날렸지 기자를 하고 있겠나. 화폐, 주식회사라는 기업 형태, 개인들이 서로 거래 혹은 교류하는 방식 등을 모두 바꾸고자 하는 게 블록체인이다. 일개 기자 또는 언론이 섣불리 예측하고 전망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아직 초창기일뿐인 이 산업에 필요한 건 어설픈 심판자 노릇을 하려는 언론이 아니라 편견없이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언론이 아닐까 싶다. 환한 추석 보름달을 보며 마음을 다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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