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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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ICO(암호화폐공개) 투기열풍을 틈타 불법 다단계 조직에 기대어 투자금을 모집하는 코인 사기들이 횡행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이런 코인 사기로 인해 수많은 피해자가 양산됐다.

그런데 유망한 ICO 프로젝트를 발굴해 육성하고 투자한다는 블록체인 액셀러레이터의 대표가 여러 건의 코인 사기 다단계에 가담했다면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스스로 “아시아 최대 블록체인 액셀러레이터”라고 홍보하는 B사. 한국은 물론 싱가포르 등 외국에서도 여러 ICO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밋업을 열고 투자자를 연결시켜 주는 등 요즘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업체 중 한 곳이다. 2017년 4월 설립된 이 회사는 다수의 ICO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최근 빠르게 성장 중인 신생 암호화폐 거래소들도 고객으로 두고 있다.

B사를 창업한 H대표는 “2017년에 말도 안 되는 수익을 경험하면서 블록체인 쪽으로 (사업을) 다 전환했다”며 자신이 블록체인 업계에 뛰어든 계기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H대표가 말한 “말도 안 되는 수익”이라는 게 과연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얻은 것일까?

2017년부터 불법 다단계 방식으로 암호화폐를 판매 중인 강아무개씨는 <코인데스크코리아>에 “H대표가 나의 상위 사업자(스폰서)”라며 “내가 산 코인 금액의 10% 가량이 H대표에게 갔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H대표가 내게 이더트레이드, 비트커넥트, 헥스트라코인을 추천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H대표로부터 추천받은 암호화폐를 또 다른 이들에게 판매했고, 강씨 아래에 신규 회원(투자자)가 늘어날수록 H대표는 ‘후원 보너스’를 챙겼다는 것이다.

이더트레이드는 새 회원을 모집하면 추가 소득을 얻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이미지=이더트레이드 화면 캡처
이더트레이드는 새 회원을 모집하면 추가 소득을 얻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이미지=이더트레이드 화면 캡처

 

이더트레이드, 비트커넥트, 헥스트라코인은 사업 주체가 갑자기 사업을 중단하고 사라져버린 대표적인 사기 코인이다. 이더트레이드는 원금을 보장하고 매월 최대 25%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투자자를 모집했다. 이른바 ‘렌딩코인(Lending Coin)’으로 불리는 비트커넥트와 헥스트라코인은 월 40%대의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홍보했다. 렌딩코인은 투자자가 암호화폐를 산 후 발행 회사에 빌려주면 그 대여 기간에 따라 이자를 주는 코인이다.

세 암호화폐는 모두 다단계 방식으로 판매됐다. 신규 회원이 투자할 때 ‘추천자 코드’를 입력하면, 투자금의 일정 비율이 ‘후원 보너스’로 상위 사업자에게 지급되는 식이다. 헥스트라코인은 총 7단계까지 0.2~8%의 후원 보너스가 지급된다고 홍보했다. 하위 사업자가 새 회원을 모집한만큼 상위 사업자는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버는 구조다. 정부에 등록되지 않은 3단계 이상 다단계 사업은 모두 불법이다.

헥스트라코인은 총 7단계까지 0.2~8%의 후원 보너스가 지급된다고 홍보했다. 이미지=헥스트라코인 설명자료
헥스트라코인은 총 7단계까지 0.2~8%의 후원 보너스가 지급된다고 홍보했다. 이미지=헥스트라코인 설명자료

 

이더트레이드, 비트커넥트, 헥스트라코인은 2017~2018년 웹사이트가 문을 닫는 등 사업이 중단됐고, 일부 운영자는 사라져버렸다. 투자금을 잃은 국내 피해자들은 다단계 상위 사업자 등을 고소했다. 검찰과 경찰은 사기, 유사수신행위, 다단계(방문판매법 위반) 등 혐의로 수사를 진행 중이다.

H대표가 관여한 사기 코인은 이밖에도 더 있다. 지난 4월 미 금융당국이 증권사기 혐의로 기소한 센트라(Centra)다. H대표는 센트라의 아시아 대표이자 어드바이저로 활동했고, B사는 지난 1월 국내에서 센트라 밋업을 주최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권투선수 플로이드 메이웨더를 앞세워 마케팅을 펼친 센트라는 비자, 마스터카드와 제휴를 맺었다는 허위 광고를 하기도 했다. 창업자들이 구속기소된 후 센트라는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됐다.

2018년 센트라(CTR)의 가격 그래프. 이미지=코인마켓캡 캡처
2018년 센트라(CTR)의 가격 그래프. 이미지=코인마켓캡 캡처

 

1년 사이에 4건의 코인 사기에 연루된 것에 대해 H대표는 뭐라고 해명할까. <코인데스크코리아>는 지난 23일 H대표를 만났다.

H대표는 4건의 사기 코인들에 투자한 사실은 인정했다.

“이더트레이드 한국 최상위 사업자가 강씨를 소개해줬다. 서로 돕는 차원에서 강씨 아래에 내 계좌를 만들고, 내 밑에 강씨 계좌를 만들었다. 비트커넥트와 헥스트라코인은 최아무개씨로부터 추천을 받았다. 최씨의 추천자 코드를 입력하고 투자를 했다.”

다만 H대표는 “렌딩코인 등은 내가 투자한 200여개 코인 중 일부에 불과하다. 강씨가 다단계로 코인을 판매하는 것은 나중에 알았고, 강씨 밑에 누가 있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이 코인들이 망하면서 큰 손해를 봤다며 자신도 투자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스스로 아시아 대표와 어드바이저 직책을 맡은 센트라에 대해서도 “우리가 투자하라고 (권유)한 게 아니라, 우리도 (피해를 본) 투자자였다”고 말했다.

자신은 다단계 코인 사기의 공범이 아니라 피해자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최소한 H대표가 유망한 ICO 프로젝트를 골라낼 만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H대표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열풍이 불기 이전에도 불법 다단계에 발을 들였다.

H대표를 잘 아는 또다른 강아무개씨는 <코인데스크코리아>에 “B사를 시작하기 전에 H대표와 다단계 사업을 함께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H대표는 “투자 권유를 해서 수익을 받았지만 다단계인지는 몰랐다. 지인들에게 권한 것은 다단계가 아니지 않느냐. 나도 투자 피해자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다단계 회사의 경영진 4명이 구속됐지만 나는 출근도 하지 않았고, 당시 경찰 조사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미지=공정거래위원회 불법 다단계 예방 영상 캡처
이미지=공정거래위원회 불법 다단계 예방 영상 캡처

 

그동안 H대표는 자신의 이력으로 이스포츠(e-sports) 전문가이자 코스닥 상장사를 인수합병한 경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B사 웹사이트에도 그는 자신이 M&A 전문가로 몇 건의 대형 인수합병을 성사시켰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H대표의 M&A 이력은 자랑할 만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H대표는 2007년 8월 코스닥 상장사 E사를 인수해 그해 10월 대표이사에 올랐다. 그러나 그가 대표이사로 재직한 기간은 고작 4개월이다. <코인데스크코리아>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별다른 재산도 없던 H대표는 당시 상장폐지 위험에 있던 이 회사를 자기 자본도 없이 약 40억원을 빌려 인수했다. 이후 그는 LG그룹 경영진 등이 대거 이 회사 유상증자에 참여한다는 소문을 퍼뜨려 주가를 상승시킨 뒤 약 400억원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계획했다. 이어 H대표는 ‘찍기’ 수법의 가장납입을 시도했지만 무리한 유상증자는 결국 실패했다. H대표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사기, 배임, 횡령 등으로 징역 3년의 형이 확정됐다. 법원은 H대표가 피해자들로부터 약 23억원을 편취하고, 횡령과 배임으로 E사에 약 43억원의 손해를 끼쳤고, 결국 E사가 상장폐지됐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 사건에 대해 H대표는 “너무 젊고 경험도 없었을 때 코스닥 회사를 인수했다”고 말했다.

이미지=공정거래위원회 불법 다단계 예방 영상 캡처
이미지=공정거래위원회 불법 다단계 예방 영상 캡처

 

검찰과 경찰은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암호화폐 투기 광풍이 불면서 기존 다단계 조직들이 암호화폐 시장에 대거 뛰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단계 조직들은 실제 블록체인 기술과 무관한 사기 코인들을 암호화폐인 양 속여 판매해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박상기 법무부장관이 지난 1월 거래소 폐쇄까지 언급하는 등 암호화폐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된 배경에도 이런 불법 다단계 행위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장관 정책보좌관을 맡고 있는 이종근 부장검사는 다단계 범죄 수사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로 공인된 인물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블록체인 액셀러레이터 대표는 “제대로 된 블록체인 프로젝트라면 다단계 조직에 기대어 ICO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단계 방식으로 판매되는 코인은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역시 익명을 요청한 한 벤처캐피털 대표는 “불법 다단계, 사기 때문에 정부가 ICO와 암호화폐를 제재하는 면이 크다”며 “이런 세력을 솎아내야 블록체인 생태계가 정화되고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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