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겨레 자료사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지난 8일 암호화폐 거래소 이더델타(EtherDelta)를 증권법 위반 혐의로 조사한 끝에 거래소를 세운 재커리 코번(Zachary Coburn)에게 벌금 38만8천 달러, 우리 돈 약 4억4천만 원을 부과했다. 이더델타라는 거래소, 코번이라는 인물, 벌금 액수를 비롯한 구체적인 징계 내용보다도 이번 결정을 두고 증권거래위원회가 암호화폐 거래소 조사와 단속, 징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사실 최근까지 증권거래위원회는 ICO로 투자금을 모으는 암호화폐 관련 프로젝트, 회사를 중점적으로 단속해 왔다. 토큰을 증권으로 볼 것인지, 토큰을 판매한 행위가 증권법 위반 소지가 있는지가 가장 큰 쟁점이었다. 그런데 증권거래위원회 내부 사정에 밝은 관계자가 지난주 <코인데스크>에 귀띔해준 바에 따르면 이제 증권거래위원회는 본격적으로 암호화폐 거래소 단속에 나설 예정이다.

뉴욕대학교 법학대학원 방문 교수 앤드루 힌케스는 등록하지 않은 증권 거래소를 운영한 혐의로 벌금을 부과한 증권거래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일종의 경고 사격과도 같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암호화폐 거래소 혹은 거래소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서비스를 운영해온 이들이라면 지금까지 직접 운영 정지 명령을 받았거나, 아니면 적어도 거래소 운영과 관련해 증권법을 지키고 있는지 입증하는 서류를 내라는 요청을 받았을 것이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이제야 처음으로 공식 징계했다는 사실은 무척 놀랍다. 이렇게 심사에 오랜 시간이 걸릴 줄 몰랐기 때문이다."

이번 징계는 또한, 증권거래위원회가 소위 탈중앙화 거래소(DEXs) 문을 닫아버리는 것은 어렵더라도 거래소를 운영하고 암호화폐를 영업한 데 대한 법적 책임은 얼마든지 지울 수 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기도 했다. 코번은 증권거래위원회가 씌운 혐의를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은 채 영업 이익과 이자에 해당하는 38만8천 달러를 순순히 벌금으로 내고 문제를 매듭지었다.

"이더델타와 코번의 사례는 중앙에서 서버를 운영하지 않고 소위 노드를 분산해 거래소를 운영한다고 해도 증권거래위원회는 이를 전혀 달리 취급하지 않을 것이란 것을 보여준다. 탈중앙화 거래소를 운영한다고 법적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 증권거래위원회는 유권 해석을 통해 얼마든지 탈중앙화 거래소를 옥죌 수 있다."

게다가 이번 징계 조치가 문제 삼은 거래소 영업 시점도 주목해야 한다. 증권거래위원회는 이더델타가 2016년 7월 12일부터 2017년 12월 17일까지 이더리움 기반 토큰을 (허가 없이) 판매한 혐의로 징계를 내린다고 밝혔는데, 코번은 해당 기간 이더델타를 떠나는 절차를 밟고 있다가 실제로 2017년 말 이더델타를 떠났기 때문이다. 변호사 프레스톤 바이언은 말했다.

"거래소나 사업체를 매각해 처분하든 몇 년 전에 거래소를 운영했든 상관없다. 증권거래위원회는 기어이 증권법을 적용해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갈 것이다."

코번이 낸 벌금이 우리돈으로 몇억 원대에 그쳤으며, 코번은 자본시장에서 퇴출당하지도 않았다. 여기엔 그가 증권거래위원회의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증권거래위원회는 여러 차례 암호화폐 거래소나 거래소를 운영하는 이들에게 위원회와 관련 법규, 규정 준수 여부를 상의하라고 충고해 왔다.

"이더델타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증권거래위원회와는 최대한 협력하는 것이 거래소에도 상책이다. 증권거래위원회는 위원회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이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최대한 선처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는 듯하다."

 

탈중앙화에 관한 해석은 SEC의 몫


지난 2017년 암호화폐 가격이 급등하고 ICO 열풍이 분 이래 탈중앙화 거래소를 표방한 플랫폼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그런데 이더리움 기반 토큰을 거래할 수 있는 이들 플랫폼은 사실상 규제 사각지대에 있었다.

암호화폐 거래소 관련 자료를 공개하는 댑레이더(DappRadar)에 따르면 거래량 규모가 가장 큰 탈중앙화 거래소 IDEX를 이용하는 고객이 하루에 1천 명을 조금 웃돈다. 이더델타는 증권거래위원회의 징계 소식이 나온 뒤 거래소 이용 고객이 곧바로 11%가량 줄었다.

증권거래위원회가 이더델타에서 취급한 토큰 가운데 정확히 어떤 토큰을 증권으로 간주해 징계를 내렸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증권거래위원회가 앞으로 증권법을 어긴 데 대해 암호화폐 거래소의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책임을 물을지는 이번 징계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힌케스는 ERC-20 토큰을 대하는 증권거래위원회의 시각을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증권거래위원회는 코번이 거래소를 세우고 탈중앙화 거래소 운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스마트계약을 담은 코드를 썼으며, 이를 토대로 거래소를 직접 운영했다고 봤다. 그런 코번이 탈중앙화 거래소 운영이 증권거래소법(Exchange Act)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힌케스는 특히 이더리움이나 비트코인의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참여해 코드를 쓰고 플랫폼을 개발하는 개발자들의 기여와 법적 책임에 관해 앞으로 치열한 법적 해석과 다툼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즉, 암호화폐 프로젝트에 코드를 쓴 개발자들이 해당 소프트웨어 운영에 따르는 법적 한계를 미리 명시하고 지침을 주지 않았다가는 나중에 해당 프로젝트가 문제 됐을 때 개발자들도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더델타는 문제의 소지가 있는 토큰을 미리 걸러내 거래 토큰 목록에서 뺄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ERC-20 기반 토큰 운영의 증권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던 증권거래위원회의 시야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워싱턴DC에서 일하는 변호사 스티븐 팰리는 법원이 마지막에 어떤 토큰을 증권으로 판결할지와 무관하게 이더델타가 관장한 거래 대부분이 "등록하지 않은 증권을 사고판 행위"로 간주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맞설 것이냐 피할 것이냐


변호사 프레스톤 바이언은 증권거래위원회의 이번 결정으로 인해 미국에서 아예 사업을 접거나 암호화폐 프로젝트를 펼 나라로 미국 아닌 나라를 택하는 업체들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싱가포르나 잉글랜드처럼 ICO나 암호화폐, 토큰에 훨씬 우호적인 법체계를 운영하는 나라는 얼마든지 있다. 이제 암호화폐 기업가들에게는 암호화폐 친화적인 나라에서 기회를 최대한 살리면서 미국 규제 당국과는 최대한 얽히지 않는 사업 모델을 만드는 것이 과제가 됐다."

반대로 규제를 적극적으로 지키는 쪽을 택한 업체도 있다. 미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탈중앙화 거래소 에어스왑(AirSwap)은 정식 인가를 받은 증권 중개업체와 제휴를 맺고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하기로 했다. 명확하지 않은 규제 환경을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에어스왑의 공동창업자 마이클 오베드는 코인데스크에 이렇게 말했다.

"다른 거래소와 달리 에어스왑은 거래소 운영에 개입하지 않는다. 아예 주문장부(order book)가 없으니 매수와 매도 주문을 서로 맞추거나 거래 수수료를 받는 일도 우리 소관이 아니다. 우리는 규제 당국과 최대한 협조하여 규정을 어기지 않으면서 거래소를 운영하는 법을 찾고 있다."

미국에서 운영하는 에버블룸(Everbloom)을 비롯한 몇몇 거래소는 법적 책임을 질 위험을 낮추기 위해 트레이더에게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힌케스는 핵심은 다른 데 있다고 말했다.

"이더델타에 증권거래위원회가 내린 결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 수수료를 받느냐 안 받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증권으로 간주할 수 있는 자산을 사고파는 거래소가 규제 기관의 승인을 받고 정식으로 등록하지 않은 채 운영했기 때문에 증권법을 어겼다고 판단한 것이다."

변호사 스티븐 팰리는 증권거래위원회의 규제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미 증권거래위원회는 수십 건의 사례를 조사하고 있다. 앞으로 보도자료나 규제를 집행한 뒤 이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수도 없이 보게 될 것이다. 이더델타에 내린 징계로 일단락된 건 사실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이제 연극의 2막 정도가 내리고, 3막이 시작되는 단계쯤 와 있다고 보인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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