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기업들은 왜 블록체인 사업을 하려 할까? 20~21세기 금융의 역사에 답이 있다. 금융 대기업들은 판을 다시 짜야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책 <넥스트 머니>의 공동 저자인 이용재씨는 26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블록체인 강국을 위한 현안과 과제'를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세계 주요 금융 기업들이 블록체인에 뛰어들고 있다"며 블록체인 기술이 금융의 새 판을 짤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재 <넥스트 머니> 공동 저자가 26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2019 팍스넷뉴스 블록체인 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한수연 기자
이용재 <넥스트 머니> 공동 저자가 26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2019 팍스넷뉴스 블록체인 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한수연 기자

 

블록체인 기술은 한때 이른바 '기술 덕후'들의 관심사로 여겨졌다. 불과 몇 년 전 이야기다. 그러나 현재 블록체인은 세계적인 금융 기업들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2017년 12월 세계적인 파생상품 거래소 CME 그룹이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시작했고, 2018년에는 세계적 규모를 자랑하는 자산운용사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가 암호화폐 거래와 보관 업무 서비스를 내놨다. 지난 14일에는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이 자체 암호화폐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규제 환경은 아직 구축되지 않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금까지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 신청(2월9일 기준 10개)을 모두 거절했고, 암호화폐 선물거래소 백트(Bakkt)도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승인을 받지 못해 출시일이 2018년 8월에서 2019년 후반으로 연기됐다.

그러나 이용재씨는 규제 환경도 곧 열릴 것이라며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그는 "올해 안에 비트코인 ETF가 나올 것이라고 본다. 블록체인이 전세계 금융전쟁을 촉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지=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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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금융 기업들이 블록체인·암호화폐 사업에 속속 뛰어드는 상황을 새로운 금융의 판이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분석했다.

"블록체인은 (금융 시장) 2등 기업에는 판을 바꿀 수 있는 무기가 되고, 1등 기업에는 현재의 경쟁우위를 유지해 줄 방패가 되기도 한다. 1등이든 2등이든 금융 기업들은 암호화폐를 받아드릴 수밖에 없다."

이씨는 "대기업이 새로운 분야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서는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이 명분은 금융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라고 했다.

그는 판을 다시 짜기 위해서는 ▲혁신 기술 ▲시장(자본) ▲환경(규제와 정책) 3가지 요소가 시너지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20~21세기 금융의 역사를 살펴보면 금융 업계와 금융 규제가 기술 창업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설명했다.

이용재씨에 따르면, 1950년대 아서 록이 벤처투자사(venture capitalist)라는 용어를 만들고 최초의 VC를 차렸다. 아서 록은 윌리엄 쇼클리 반도체 회사를 뛰쳐나온 8명의 기술 전문가들(일명 '8인의 배신자')이 1957년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설립할 때 투자를 중계하며 혁신 기술과 자금을 이어줬다. 때마춰 1958년 미국 정부는 중소기업투자법을 제정해 기술 창업을 위한 환경을 마련했다.

1972년에는 'KPCB'와 '세쿼이아'라는 주요 VC 두 곳이 등장했다. 세쿼이아는 애플, 구글 등 현재 IT 대기업들이 스타트업이던 시절 투자했고, KPCB 역시 구글, 아마존 등에 초기 투자했다. 이 두 VC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여러 기술 기업들을 발굴했다. 1978년에는 법이 개정돼 대형 연기금과 자산운용사가 VC펀드를 집행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혁신 기술과 자본, 정책이 만나면서 지금의 미국 실리콘밸리가 만들어졌다.

이미지=이용재씨 발표 자료
이미지=이용재씨 발표 자료

 

1990년대 닷컴 열풍은 얼마 안 돼 닷컴 버블로 이어졌다. 이씨는 "1990년대 말, 수많은 닷컴 회사들이 문을 닫았지만 인터넷이라는 인프라는 남았다"며 "이 인프라는 2000년대 소프트웨어 시대의 발판이 돼 트위터, 스카이프, 스포티파이 등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닷컴 버블 이후 애플리케이션(소프트웨어)의 시대가 열렸다"며 "역사에는 궤적이 있다. 블록체인 열풍이 불었다가 이내 꺼졌는데, 곧 댑(dapp)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그는 2009년 넷스케이프 창업자인 마크 앤드리슨이 세운 VC인 앤드리슨 호로위츠의 최근 투자 포트폴리오가 블록체인·암호화폐 회사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페이스북, 트위터, 미디엄, 깃허브, 애어비앤비, 인스타그램 등에 투자했던 마크 앤드리슨이 최근 코인베이스나 크립토키티 등 암호화폐 기술 쪽으로 포트폴리오를 옮기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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