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규제 당국 65%, 다른 나라 눈치 살피는 중"
[DAXPO 2019] 아폴린 블랜딘 케임브리지대학 대안금융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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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선
정인선 2019년 9월3일 18:01

아폴린 블랜딘 케임브리지대학 대안금융연구소 연구원. 출처=이정아/한겨레

DAXPO 2019에 참석한 세계 각국 암호화폐 관련업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업계는 자기 나라 규제의 동향에 가장 관심이 많고, 규제 당국은 다른 나라의 규제 동향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업계에서 다른 나라 규제 동향을 파악하려는 시도를 하지만, 믿을 만한 자료가 많지 않다. 믿을 만한 다른 나라 자료는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

영국 케임브리지대 산하 대안금융연구소는 지난 4월 전세계 암호화폐 규제 동향에 대한 보고서를 펴냈다. 한국과 미국, 일본 등을 포함한 23개 사법권(jurisdiction, 국가 및 독립된 사법권을 가진 지역 단위)에서 규제 당국과 입법 기관, 학계, 암호화폐 산업 종사자 등 다양한 행위자를 대상으로, 약 열 달에 걸쳐 실시한 설문 및 대면 인터뷰 결과였다. 조사를 주도한 아폴린 블랜딘(Apolline Blandin) 케임브리지대 대안금융연구소 연구원은 3일 DAXPO 2019에서 23개 사법권 암호화폐 규제 동향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발표했다.

대안금융연구소는 앞서 2017년과 2018년에도 각각 '세계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현황 연구'를 실시했다. 연구진은 조사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 많은 가상자산 서비스 제공자(VASP), 특히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규제 환경 변화 탓에 본사를 기존 등록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 중에는 규제 차이를 이용한 차익거래를 노린 경우도 있었다. 아폴린은 "각국의 규제 환경을 면밀히 조사할 필요성을 느껴 후속 연구 성격으로 23개 사법권 규제 동향을 조사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대부분의 조사 대상 국가에서 규제 중첩 현상을 발견했다. 한 국가당 평균 3개 부처가 암호화폐와 관련된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아폴린은 "여러 정부 부처 가운데 정확히 어떤 곳이 얼마만큼의 책임과 권한을 갖고 암호화폐를 다뤄야 하는지 아직 불분명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규제 중첩 현상은 특히 해킹이나 고객 자산 분실 등 사고가 발생했을 때 혼란을 키운다. 아폴린은 캐나다의 암호화폐 거래소 쿼드리가CX 사건을 예로 들었다.

"쿼드리가 사건의 교훈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쿼드리가는 캐나다 규제 당국으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은 거래소였음에도, 대량의 피해자를 양산한 파산 및 암호화폐 증발 사건을 피하지 못했다. 복수의 규제 당국이 암호 자산을 감독하기에, 역할이 서로 겹쳐 막상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누구의 책임인지가 불명확했다."

조사 대상 사법권 수를 40개로 넓혔을 때, 40%에 해당하는 16곳에서 중앙은행이 암호화폐 관련 입장을 가장 먼저 내놨다. 아폴린은 "암호화폐와 법정화폐 사이의 선을 확실히 그을 필요가 은행 쪽에서 가장 먼저 발생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40개 사법권 가운데 30곳이 암호화폐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2013년에 처음 내놨다. 아폴린은 "백서 발행 이후 최초로 2013년 당시 비트코인 가격이 '거품 수준'으로 올랐기 때문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조사 대상 사법권 40%에서 중앙은행이 암호화폐 관련 공식 입장을 가장 먼저 내놨다. 금융 감독 당국과 정부 부처가 그 뒤를 이었다. 출처/케임브리지대 대안금융연구소

정부 부처와 금융감독당국이 중앙은행의 뒤를 이었다. 가이드라인, 경고 등을 포함한 공식 입장을 내놓은 뒤에는 다양한 방식의 규제가 이뤄졌다. 아폴린은 "특히 증권형 토큰과 그밖의 토큰을 구별하는 작업을 통해 암호화폐 관련 규제의 첫 발을 뗀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각 사법권의 규제당국은 제각기 처한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암호화폐에 대응했다. 연구진은 규제 당국의 반응을 크게 네 종류로 분류했다.



  1. 기존 규제 활용: 기존 법 또는 규제를 암호화폐 관련 활동에 적용하는 경우. 금융관계법을 암호화폐에 적용하는 한국, 오스트레일리아가 대표 사례.

  2. 규제 수정(Retrofitted regulation): 기존 법 또는 규제를 수정해 암호화폐에 적용하는 경우. AML(자금세탁방지) 규제 적용 범위를 살짝 수정해 암호화폐까지 포괄하도록 개정한 에스토니아가 대표적.

  3. 맞춤형 규제 체계(Bespoke regulatory regime): 규제 체계를 새로 만들어 전통 금융의 범위를 벗어난 새로운 요소를 모두 포괄시킨 경우. 암호화폐뿐 아니라 크라우드펀딩, 개인간(P2P) 대출 등을 포괄하는 체계를 구축한 멕시코가 대표적.

  4. 맞춤형 규제(Bespoke regulation): 전혀 새로운 입법을 통해 암호화폐 관련 활동을 규제하는 경우. 2018년 10월 최초로 암호화폐 관련 입법을 한 몰타가 대표적.



케임브리지대학 대안금융연구소는 각국 규제 당국의 암호화폐 관련 반응을 크게 네 가지로 분류했다. 출처=케임브리지대 대안금융연구소

연구진에 따르면 규제 당국이 4가지 유형 중 어떤 반응을 내놓는지는 해당 사법권의 암호화폐 관련 활동이 얼마나 활발한지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특히 암호화폐 거래가 상대적으로 활발한 곳일수록 기존 규제를 적절히 수정해 암호화폐에 적용한 경우가 많았다. 아폴린은 "기존 규제 수정이 규제 당국 입장에서는 가장 신속하게 취할 수 있는 대응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사 대상 규제 기관의 65%가 다른 나라는 암호화폐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참고하려고 지켜보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각국이 섣불리 암호화폐에 특화된 규제를 마련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음을 뒷받침한다.

아폴린은 각국 규제 기관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남은 과제가 여전히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규제 당국의  관심이 암호화폐 환전 및 거래에 집중돼 있어, 탈중앙화 거래소나 개인정보 이슈 등에 대한 대응은 상대적으로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에 대한 시장 참여자들의 접근권을 보장하고, 규제의 범위를 명확하게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세계적으로 일관된 규제 틀을 구축해 규제 차이를 이용한 차익거래를 막을 수 있다. 소비자를 보호함과 동시에 혁신을 저해하지 않기 위한 규제 당국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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