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게티이미지뱅크

1년 전만 해도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는 리버스ICO에 주목했다. 기존 기업이 이미 운영중인 서비스에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를 접목하는 리버스ICO는, 막 창업했거나 창업을 준비하면서 암호화폐공개(ICO)를 하는 기업들이 백서 하나로 ‘맨 땅에 헤딩’하는 것과는 달라보였다. 각종 상품과 서비스로 시장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와 사업성을 확보했으니, 블록체인 사업의 성공 가능성이 더 크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특히 리버스ICO 프로젝트는 기존에 암호화폐 투자에 익숙하지 않던 대중을 상대로 블록체인 기술의 실제 활용 사례를 비교적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컸다.

지금은 어떨까? 코인데스크코리아는 당시 대표적 리버스ICO 사례로 거론됐던 콘텐츠프로토콜과 캐리프로토콜, 테라, 페이프로토콜의 1년을 되짚어봤다. 여러 지표 중에서도 투자자들의 견해를 종합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 토큰 가격에 비춰봤을 때, 셋 모두의 성적표는, 안타깝게도, 낙제점이다.

우선, ①콘텐츠프로토콜은 ‘한국판 넷플릭스’로 유명한 왓챠플레이의 운영사 프로그램스가 지난해 7월 설립한 자회사를 통해 진행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다. 콘텐츠프로토콜은 왓챠 및 왓챠플레이로 확보한 이용자 취향 및 감상 데이터와, 이 데이터를 분석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시청률 등 전통 콘텐츠 평가지표를 넘어선 다양한 분석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콘텐츠프로토콜 측은 이를 통해 발생한 부가가치는 CPT 토큰을 통해, 데이터를 제공한 이용자들에게 되돌려주는 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콘텐츠프로토콜은 지난 5월 CPT 토큰을 이용해 영화 예매권, 잡지 구독권, 온라인 서점 상품권, 노트북 등 상품을 교환할 수 있는 CPT 스토어를 런칭했다. 이는 암호화폐를 이용해 실생활에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대표적인 활용처로 주목받았다. 콘텐츠프로토콜은 또한 JTBC, MBC 등 방송사들과 협력을 맺어, 이들이 제작하는 콘텐츠와 관련한 시청 및 취향 데이터를 대시보드 개발에 활용하기로 하는 등 생태계 확장을 꾀했다.

그러나 지난 1월 업비트 최초 상장 당시 4원에서 출발해 최대 14원까지 올랐던 CPT 가격은 11일 오후 4시 현재 1.9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코인원은 지난달 말 “거래 지속성과 최소한의 거래량 미달로 투자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며 CPT를 투자 유의 종목으로 지정했다.

②캐리프로토콜은 태블릿피시를 이용한 전화번호 기반 멤버십 적립 서비스 도도포인트로 잘 알려진 스포카 창업팀이 주도하는 암호화폐 기반 멤버십 적립 서비스다. 블록체인을 통한 ‘구매 데이터 선순환 플랫폼’ 구축을 목표로 한다. 캐리프로토콜 측은 소비자가 자신의 오프라인 구매 데이터를 직접 통제하도록 해 ‘데이터 권익’을 되찾고 이를 수익화하는 토큰 이코노미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블록체인에 기록한 이용자의 구매 데이터를 광고주가 조회하고, 캐리 토큰을 그 보상으로 소비자에게 직접 지불하도록 해 중간 매개를 없앤다는 구상이다.

지난 12월 14일 서울 한 호텔에서 기존 왓챠 서비스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콘텐츠 프로토콜(CPT) 에어드롭 행사가 열렸다. 사진=왓챠 제공
지난 12월 14일 서울 한 호텔에서 기존 왓챠 서비스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콘텐츠 프로토콜(CPT) 에어드롭 행사가 열렸다. 사진=왓챠 제공

캐리프로토콜은 도도포인트 운영사 스포카와 국내 최대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파리바게뜨 등을 운영하는 SPC그룹, 자산관리 어플리케이션 뱅크샐러드 운영사 레이니스트 등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생태계 확장을 꾀했다.

그러나 지난 5월 캐리프로토콜은 토큰 가격이 폭락하는 사태를 겪었다. 초기 투자자 락업(매도 제한) 기간이 종료되면서, 이들이 기존에 보유하던 물량을 대거 매도했기 때문이다. 프라이빗 세일 당시 5원 가량이었던 CRE 토큰 가격은 6월 업비트 상장 후 80원대 후반까지 올랐다가, 현재는 3원 수준을 오르내리고 있다.

개발 지연도 가격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캐리프로토콜은 지난 10월 기존에 공개했던 계획과 달리 중앙화 방식으로 시스템을 우선 개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낮은 TPS 및 높은 트랜젝션 비용 등을 이유였다.

③테라는 티켓몬스터(티몬)를 창업한 신현성 의장이 주도하는 결제용 암호화폐 프로젝트다. 티몬, 배달의민족, 야놀자 등 국내 기업, 싱가포르의 큐텐, 캐러셀, 베트남의 티키 등 아시아 지역 전자상거래 기업이 참여하는 ‘테라 얼라이언스’를 통해 몸집을 불렸다.

최근에는 테라의 제휴사 차이코퍼레이션의 간편결제 서비스 차이가 국내 기업들과의 업무협약을 바탕으로 사용처를 넓혀가고 있다. 차이는 CU편의점, 배달의민족, 티몬, 벅스, 오늘의집, 아이디어스, 야놀자, 번개장터 등 서비스에 결제수단으로 추가됐거나 앞으로 추가될 예정이다.

지난 5월 테라 메인넷 런칭 직후 3000원 가량이었던 루나(LUNA) 토큰의 가격은 12일 현재 300원대(코인원 기준)에 머물러 있다.

기존 서비스와 블록체인 연결, 말처럼 쉽지 않아


전반적인 암호화폐 투자 시장이 하락세를 보인다는 점을 감안해도, CPT, CRE, LUNA의 낙폭은 꽤 큰 편이다. 곧 투자자와 시장으로부터 낙관적인 기대를 받지 모하고 있다는 뜻이다. 일부 시장 참여자들은 리버스ICO의 부진이 본질적 한계라고 짚었다.

암호화폐 공시 플랫폼 쟁글을 운영하는 크로스앵글의 김준우 공동대표는 “리버스ICO 프로젝트는 단순히 계획뿐 아니라 그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팀과 자원, 브랜드 가치, 자산 등이 (암호화폐 프로젝트의) 사업 가치로도 연결되리라는 기대 때문에 주목받았던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대부분 경우 기존 사업과 암호화폐 사업 간 가치 연결이 기대만큼 쉽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UDC 2019에서 발표 중인 캐리 프로토콜 최재승 대표. 출처=업비트

김 대표는 심지어 대부분 기업들이 기존 사업 운영 주체와 암호화폐 사업 운영 주체 사이에 명확히 선을 그었다면서, 그 부분이 결정적 패착이었다고 지적했다.

“암호화폐를 둘러싼 규제 체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의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은 리버스 ICO 사업에 인력과 비용을 투입하는 데에 보수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공연한 법적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거나, 토큰 가격 하락 등 사업 성과를 단기간에 내지 못할 것을 우려해서다. 경영진 입장에서도 이미 잘 돌아가는 서비스가 있는데 사업적 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한 신사업에 우선순위를 두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황성재 파운데이션X 파트너도 비슷한 의견을 밝혔다. 그는 “투자의 관점에서 리버스ICO는 기존 주식회사의 프로토콜과 토큰 이코노미라는 프로토콜을 동시에 가져가는 것인데, 아직까지는 토큰이 회사의 가치를 반영하는 모델이 (주식보다) 잘 작동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에 최근에는 투자사들이 토큰을 프로젝트에 반환하고 지분 투자로 전환하는 경우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현금 줘도 쉽지 않은 보상, 암호화폐론 더 어렵다


스타트업의 기존 서비스에 토큰을 활용한 보상 시스템이 꼭 필요한지 검토가 부족한 상태에서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를 섣불리 접목했다는 지적도 있다. 정호석 법무법인 세움 대표변호사는 “기존 사업에 블록체인을 접목해 (리버스) ICO를 하는 이유가 단순히 '돈을 모으기 위해서’여서는 안 된다”라며, “기존 프로젝트를 더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 (암호화폐를 통한) 보상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보상을 지급해 서비스 이용자의 특정한 행동을 이끌어내는 건 사실 현금을 준다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라며, “토큰을 통한 보상체계를 지나치게 쉽게 보고 만들려 한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테라와 차이 코퍼레이션는 2019년 6월12일 블록체인 기술 활용 및 사업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출처=테라 제공
테라와 차이 코퍼레이션는 2019년 6월12일 블록체인 기술 활용 및 사업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출처=테라 제공

반면,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더이상 리버스ICO라는 표현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는 의견도 있다. 신규 블록체인 사업을 하는 입장에선, 기존 기업과의 협업이 이젠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이라는 이야기다. 김서준 해시드 대표는 "처음에는 몇백~몇천만명 단위의 이용자를 가진 기업이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뉴스가 됐지만 이젠 아니다"라며, '리버스ICO'라는 용어를 써야 하는 필요성이 줄어든 것일뿐 해당 현상이 사라졌거나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리플, 메이커다오 등 프로젝트를 보더라도, 전통 금융기관 및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통해 '리얼 월드 어덥션'(real world adoption, 실생활 적용)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커뮤니티를 제대로 넓혀가기 위해서는 모든 걸 처음부터 만들어가기보다 이미 이용자층을 확보한 기업과의 협업해야 한다는 게 이젠 당연한 게 됐다."
정인선 한겨레신문 정인선 기자입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3년여간 코인데스크 코리아에서 블록체인, 가상자산, NFT를 취재했습니다. 일하지 않는 날엔 달리기와 요가를 합니다. 소량의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 클레이(KLAY), 솔라나(SOL), 샌드(SAND), 페이코인(PCI)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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