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40여 년만에 처음으로 증권 투자의 장벽을 낮출 계획이다. 그러나 정확히 어디까지 장벽을 낮출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12월 18일 SEC 위원 5명 중 3명은 민간 금융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개인과 기관을 의미하는 ‘공인투자자(accredited investor)’의 정의를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공표하기로 했다. 개정안은 미국 국립문서 기록물을 게시하는 연방 공보(Federal Register)에 게재해 60일 동안 승인의 당위성에 대해 여론을 모으는 절차를 거칠 예정이다.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보유 재산을 임의로 정한 기준이 아니라 상품에 대한 이해도를 기준으로 미등록 토큰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릴 것이라며, 이를 반기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암호화폐 전문 변호사들은 이번 개정안이 SEC의 평가 기준과 고려 사항들을 명시하고는 있으나 법 개정으로 인해 공인투자자 수가 크게 증가하지는 않을 거라고 지적한다.

켈만 법률사무소(Kelman Law)의 파트너 변호사 재커리 켈만은 “공인투자자 범위 확대라는 게 현재로선 자격증을 소지한 브로커나 사모펀드에 소속된 해당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직원 등 월가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로 해당되는 이야기로 보인다”며, “그 숫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테나 블록체인(Athena Blockchain)의 법률 고문이자 칼튼 필즈(Carlton Fields)의 변호사 드루 힝크스는 개정안이 얼핏 많은 변화를 가져다줄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작은 부분”이라고 말한다.

개정안에는 자율규제기구에서 실시하는 시험 등 공인투자자 자격을 얻기 위해 갖춰야 하는 교육 자격증들을 임시로 정해둔 부분이 있다. 힝크스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꼽은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다.

개정안 전문에는 공인투자자 자격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증명서나 명칭, 자격증들을 SEC가 지정해야 한다고 나와있다.

“인가받은 4년제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되는 것인가? 아니면 박사학위 소지자를 의미하는가? 전자라면 수백만 명이 해당될 것이고, 후자라면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SEC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한 후에나 정확히 알 수 있으며, 현재로선 법 개정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은 되지만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 만한 근거는 없는 상황이다.” - 드루 힝크스

 
 

개정안


이번 SEC 개정안에는 2015년에 발간된 보고서에서 나온 법 개정 조항을 포함해 2007년부터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제안된 여러 개정안이 담겼다.

지난 2018년 SEC에 등록 면제 조항인 D 규정(Regulation D)의 506조(Rule 506)을 통해 약 1조 7천억 달러 규모의 자금이 모집(지분 및 채무증권 포함)됐고, 반면 규정대로 등록한 증권 판매액은 140만 달러에 그쳤다. 등록 면제 상품에 대한 수요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정안에는 “지나치게 광범위한 정의는 투자자 보호라는 중대한 가치를 위협할 수 있고, 증권 시장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동시에 불필요하게 협소한 정의는 투자자의 재정상태, 순자산, 금융 지식 및 경험, 관리 중인 자산규모 등의 요소를 고려할 때 충분히 투자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마저 투자자의 투자 기회를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SEC의 헤스터 퍼스 위원은 공인투자자로서 자격은 투자자의 시장 이해도를 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퍼스 위원은 성명을 통해 “SEC의 현재 정의에 따르면 부모가 사준 페라리를 타고 다니면서 일은 하지 않는 투자자들은 공인투자자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주중에는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 짬을 내 투자하는 사람들은 공인투자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개정안에 반대한 앨리슨 리 위원은 별도의 성명을 내고 법이 개정되면 노인층과 은퇴자들 같은 일반투자자들이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북미증권감독협회(NASAA) 대표 크리스토퍼 제롤드도 개정안이 시행되면 공시를 지속적으로 하지 않는 미등록 비유동성 증권 때문에 일반투자자가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개정안이 공인투자자 정의 확대와 관련해 여러 변경 사항을 담고 있지만, 개선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케케묵은 정의를 의미 있게 개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 -크리스토퍼 제롤드

 
 

역사적 맥락


공인투자자의 범위를 확대해 더 많은 개인과 기관투자자들이 공인투자자 자격을 얻을 수 있게 하려는 움직임은 널리 환영받지만, 정의 확대와 관련해 인터넷에서 오가는 대화들을 살펴보면 ‘공인투자자’라는 용어의 역사적 맥락과 관련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켈만 변호사는 말한다.

현재 기준에 따르면 자산규모 100만 달러 이상 또는 연소득 20만 달러 이상의 개인, 연소득 30만 달러 이상의 부부, 1933년 증권법에서 정의하는 은행, 저축기관 및 대출기관, 1934년 증권거래법에서 정의하는 브로커 및 딜러, 1940년 투자회사법에 따라 등록된 투자회사, 사업허가를 취득한 중소기업, 자산 규모 500만 달러 이상의 정부계획 및 직원복지계획 등이 공인투자자로 인정된다.

켈만은 역사적으로 특혜보다는 실용성 측면에서 공인투자자 자격을 부유층에게 주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부유한 투자자들에게 이렇듯 면제 혜택을 준 것은 그들이 투자금을 모두 잃더라도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사태)이나 금융 위기처럼 시장 전체에 영향을 끼칠 리스크를 야기하지 않을 만한 재정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켈만은 이번 법 개정 추진이 향후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임에는 틀림없으나 시장 전체의 리스크 측면이 아닌 투자접근성 관점에서 이를 바라본다면 공인투자자라는 개념이 대공황 이후에 생겼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인투자자를 전체 리스크를 완화하는 존재가 아닌 투자자 IQ테스트 문제로 본다면 투자자들이 왜 SEC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 반문했다.

퍼스 위원도 이번 개정안이 투자자의 재정 상태보다는 실제 시장에 대한 이해도를 고려함으로써 공인투자자 정의 확대에 있어 중요한 첫 단계를 밟고 있다고 말했다.

엘라드 로이스먼 위원 역시 투자자가 보유한 재산은 투자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측정하는 대략적인 방법일 뿐이라며 전통적인 접근 방식에서 탈피하려는 이번 법 개정을 지지했다.

“D 규정을 최초로 도입한 SEC도 자신들이 공인투자자 자격 요건에 관한 완벽한 기준을 마련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이 가장 높은 투자 상품에 최상위 부유층만 투자할 수 있다면 어떨지 과연 생각해 보았는가?” - 엘라드 로이스먼 SEC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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