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엔 시간이 필요하다. 킬러앱 못 찾으면 사라질 수도 있다"
[인터뷰] 한재선 그라운드X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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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외현
김외현 2020년 1월13일 10:00
한재선 그라운드X 대표. 출처=정인선/코인데스크코리아

블록체인·암호화폐 취재현장에서 만나는 외국인들이 한국 업계 상황을 물어오면서 빼놓지 않는 프로젝트가 클레이튼이다. 모기업 카카오의 명성에 힘입은 부분이 크겠지만, 불과 반년 만에 그만큼의 인지도를 확보한 것 자체로도 국내외 관심의 규모를 알 수 있다.

클레이튼을 운영하는 카카오 블록체인 기술 계열사 그라운드X의 한재선 대표이사가 코인데스크코리아 인터뷰에서, 클레이튼의 성과에 대해 ‘한국의 디폴트(기본) 퍼블릭블록체인’ 위상을 확보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새해에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화가 진행되면서 “상당히 많은”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사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을 내놨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권고안 적용 및 도입 따른 위축은 불가피하다는 시각이다.

그는 또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라며 블록체인 기술의 미래를 낙관하면서도, 킬러앱(시장에 나타나자마자 다른 경쟁상품을 몰아내고 시장을 장악하는 새로운 서비스나 상품)이 나오지 않으면 기술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짚었다. 다음은 한재선 대표와의 신년 인터뷰 전문이다.

-2019년은 클레이튼이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의미가 컸을 것 같다. 어떻게 평가하는지?

“다행스럽게 원래 내려고 했던 계획대로 늦지않게 잘 나왔다. 지금까지 6개월 정도 돌아간 시스템 치고는 꽤 많은 성과를 달성했다. 메인넷을 내고, 다운되는 일 없이 트랜잭션을 내면서, 여러 서비스가 온보딩하는 과정까지 짧은 기간에 잘 안착했다. 이젠 한국에선 퍼블릭블록체인을 쓴다면 디폴트가 된 것 같다.”

-2020년 계획은?

“더 많은 트랜잭션과 유스케이스(use case, 이용사례)가 나오지 않을까 한다. 이제는 아시아 범위까지 넓혀서, 아시아에서 퍼블릭블록체인을 쓰겠다고 하는 이들은 클레이튼으로 가겠다고 하는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

-그라운드X 차원에서는 어떤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지?

“클레이튼은 여러 블록체인 서비스 및 사업을 위한 베이스라고 보고, 그 위에 실질적인 사업을 할 것이다. 플랫폼을 시작하게 된 것도, 이더리움이나 이오스와 경쟁해서 최고의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시작한 게 아니다. 그라운드X의 탄생도 초점은 원래 서비스에 맞춰져 있었는데 마땅한 플랫폼이 없었다. 그래서 플랫폼을 시작했고 잘 진행되고 있다. 이제 원래 하려고 했던 블록체인 사업을 추진하게 될 것이다.”

한 대표는 현재 클레이튼의 평균 일간 트랜잭션이 30~40만건 수준으로, 적을 때도 20만건, 많을 때는 60만건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고 밝혔다. 운영한 지 4년이 넘은 이더리움이 60~70만건을 보이는 것과 비교하면, 분명히 괄목할 만한 성장이라는 게 평가다. 한 대표는 특히 “도박이나 게임도 없고, 모두 유스케이스를 구현한 서비스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업계에는 클레이튼이 꿈꾸는 ‘국제화’가 가능한지를 묻는 이들이 있다.

클레이튼, 원래 서비스 목표했으나 마땅한 플랫폼 없어서 만든 것


-지난해 5월 뉴욕 컨센서스에서 클레이튼을 소개하면서 “그 어떤 SNS 및 메신저 서비스 기업도, 카카오와 같이 단일 국가에서 9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이룬 적 없다”며 카카오톡의 성과를 먼저 소개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카카오톡은 국내에서만 큰 성과를 보이는 것도 현실이다. 국외에서의 경쟁력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해외로 나갈 때 카카오톡의 혜택을 보고 나가겠다는 것은 아니다. 클레이튼(의 운영을 결정하는 참여기업 집합체인) 거버넌스카운슬 20~30%는 해외 기업들이다. 그것도 이제 시작한 스타트업이 아니라 어느 정도 규모가 있고 그러면서 블록체인에 관심이 있는 곳들이다. 어떤 곳은 한국보다도 적극적이다. 그들이 들어온 이유도 클레이튼 기반으로 블록체인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해외 사업을 추진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카카오의 자원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카카오와 무관한 블록체인 만의 사업을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재선 그라운드X 대표가 미국 뉴욕에서 열린 컨센서스 2019에서 발표하고 있다. 출처=김병철/코인데스크코리아

-네이버와 카카오의 경쟁 구도를 염두에 두고 비교하는 이들이 있다. 글로벌 서비스로 나아간다고 했을 때, 라인의 링크는 라인페이의 글로벌한 기반을 확보한 상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그라운드X보다는 유리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메신저는 아시아에 기반이 있는 라인이 유리하다. 그러나 우리가 꼭 메신저 기반으로 하겠다는 건 아니다. 라인도 내부적으로 고민할 것이다. 라인페이가 잘 되는 것과 거기에 블록체인을 붙일지는 다른 문제다. 어떤 이익이 있을지를 봐야 한다. 기술에 몰입하는 사람들은 다 붙이면 좋다고 생각하지만, 기업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기회일 뿐,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물론 라인이 페이에 여러 서비스를 다 붙이고 하면, ‘와, 잘 하네’ 하고 박수를 쳐야겠죠.(웃음)”

-한편으로는 페이스북이 백서를 발표한 암호화폐 리브라와 비교하는 시각도 있다. SNS 기반 기업이 주도해, 저명한 기존 기업들이 얼라이언스 형태로 운영주체를 형성하는 형태라는 공통점 때문인 듯하다. 클레이튼의 거버넌스카운슬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하고 있나?

“리브라의 리브라연합은 가입 지원을 하고 심사를 받아 들어가는 게 결정되는 시스템인 것으로 알고 있다. 반면, 우리는 전략적으로 핏(fit)이 맞는 데를 찾아가서 일종의 초청을 통해 가입시키고 있다. 클레이튼 거버넌스카운슬 구성을 보면 전통 산업에서 온 기업들이 많다. 처음부터 블록체인·암호화폐 쪽을 키우려고 한 게 아니었다. 어느 정도 규모가 구성이 잘 되면서 지금은 영역을 넓히고 있다. 블록체인·암호화폐는 물론, 비영리 부문도 고려중이다.”

클레이튼 거버넌스 카운슬. 출처=그라운드X

클레이튼 플랫폼의 공동운영 주체인 거버넌스카운슬에는 현재 27개 기업이 참여중이다. 애초 지난해 6월 첫 공개 때보다 4곳이 늘었다. 카카오, 카카오페이, 카카오게임즈 등 카카오 계열사, LG전자, SK네트웍스, GS홈쇼핑, 한화시스템 등 국내 대기업, 그리고 필리핀 유니온뱅크, 글로벌 광고 기업 예모비, 일본 게임 개발사 구미, 홍콩의 해시키, 인도네시아 통신사 악시아타디지털 등 국외 기업 등이 참여한다. 이밖에도 생태계 파트너(Ecosystem Partners), 초기서비스 파트너(Initial Service Partners), 클레이 BApp 파트너 등 명칭으로 80여개 기업들이 이름을 올렸다. 한 대표는 지난해 11월말 거버넌스카운슬 서밋 행사에서, “클레이튼은 100개 파트너를 목표로 출범한 페이스북 리브라보다도 앞서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클라우드 도입 10년 걸려…블록체인 그보다는 빠를 것


한 대표는 지난해 10월 어느 강연에서 “퍼블릭블록체인을 하겠다는 스타트업이 찾아오면 말리고 싶다”고 말한 것이 언론에 보도돼 화제가 됐다. 당시 그의 발언 취지는 규모있는 기업이 플랫폼을 만들고, 스타트업은 그 위에서 서비스를 만드는 생태계를 꾸려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그의 의도를 오해한 이들이 더러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당시 발언이 논란이 됐다. 일각에서는 스타트업의 의지를 꺾으려는 발언으로 보기도 했다.

“기자가 쓰는 줄 모르고 이야기했던 내용이 보도돼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진심은 맞다. 의지는 능력이 아니다. 의지를 현실화하려면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저희(그라운드X)도 진짜 힘들었다. 스타트업이 판을 깔 구조가 아니었다. 흔히 생각하듯이 탈중앙이라는 철학이 잘 작동해서 초기에 잘 만들어놓으면 오픈소스 개발자들이 달려들어서 개발에 나서고 노드가 붙는다는 건 이상일 뿐이다. 나중엔 어떨지 몰라도 지금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컴퓨터과학의 분산기술도 어렵고, 암호학도 어렵다. 이 2가지를 섞어서 인터넷 스케일로 뭔가 만든다는 건 일찍이 없었던 규모의 일이다. 그걸 어떻게 다 헤쳐가면서 할지의 문제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데 물론 그래도 한다면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럼에도 클레이튼을 비롯해서 수많은 블록체인이 플랫폼을 지향한다. 그러나 플랫폼은 탈중앙이 아니다, 그건 진정한 블록체인이라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굳이 블록체인이 필요하느냐는 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른 한편에선 무역, 유통 등에 특화된 폐쇄된 허가형블록체인 등이 진정한 블록체인 기술의 쓰임새를 구현한 것이란 시각도 있다. 블록체인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가?

“가능성은 다 열려있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거나 이를 방해하는 요소가 나오는 건 예측할 수 없다다. 미래는 예측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보자.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오픈한 건 2004년이었고, 저는 2007~2008년 처음 클라우드 사업을 했다. 그런데 기업들이 클라우드 서비스를 도입했다는 얘기를 들은 게 2014년이었던 것 같다. 10년 걸린 것이다. 10년 지나니 모두가 쓰게 됐다. 마찬가지로 인터넷도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대부분 기술은 어느 정도 시간표를 필요로 하고, 요구되는 시간이 있다. 게다가 스마트폰 같은 엔드유저를 위한 기술은 그나마 빠르지만, 엔드유저까지 가는 과정을 만드는 기술, 곧 인프라 기술은 시간이 더 걸린다.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속도감이 빠르지 않다. 블록체인은 인프라 기술이다. 제대로 된 기반을 형성한 것도 2년이 갓 넘었다. 물론 블록체인은 워낙 다이내믹해서 다른 영역보다 속도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빅데이터, 클라우드가 10년 걸렸다면, 블록체인은 그 정도까지 걸리진 않을 거란 생각은 든다. 그러나 1~2년 안에 휘황찬란한 변화가 오지는 않을 것이다. 긴 시간에 걸쳐 탄탄하게 쌓아가야 한다.”

-이런 시기엔 무엇을 해야 하나?

“유저 입장에서 유저들을 생각하는 마인드가 많아져야 한다. 나중에 뭐가 되겠다는 생각도 좋지만, 당장 유저한테 무슨 가치를 주고, 그걸 통해 세상에 어떤 긍정적인 좋은 결과를 줄지 문제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고민했으면 좋겠다. 이 문제의 답이 나오면 다른 것들은 도구일 수 있다. 도구는 목적이 아니다.
플랫폼이 중요한 시기가 아니다. 어플리케이션이 없는데 백날 플랫폼만 잘 해서 뭘 하겠나. 어플리케이션이 플랫폼을 리드하고, 그래서 플랫폼이 발전하고, 다시 어플리케이션을 유도하는 식으로 선순환을 꾸려야 하는데, 지금은 기술만 수두룩빽빽하다. 쓸 사람이 없다면, 플랫폼 방향이 맞는지를 고민하면 뭘 하겠나. 킬러앱이 나오지 않는다면 블록체인도 사라져야 하는 기술이 맞다. 시장이 선택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려면 아카데미아에서 계속 지내던가. 투자할 때 보면, 사라지진 않았지만 주춤해있는 기술들이 지금도 많다.”

한재선 그라운드X 대표가 2019년 8월 if 카카오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출처=그라운드X

한 대표는 카이스트 전자전산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07년 대용량 데이터 분산 처리 업체 넥스알을 설립했다. 2010년 KT가 넥스알을 인수하면서 한 대표는 KT 넥스알 공동대표 및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았다. 2014년 3월부터는 퓨처플레이 CTO로 재직했으며, 2018년 3월 그라운드X가 설립되면서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끝으로 그에게 올해 예고된 주요 블록체인·암호화폐 분야 이벤트에 대해 물었다.

중국은 방향 정하면 빨리 움직인다. 중국인들 정말 열심히 일한다


-지난해 6월 나온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권고안이 올해 본격적으로 적용된다.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에선 작은 규모 기업에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산업화하려면 규제화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틀이 있으면 맞춰서 가야 한다. FATF 권고안을 시작으로 규제는 더 빡빡해질 텐데, 이게 맞는 방향 같다. 지금까지 사기 사건 등 여러 부정적 이벤트가 많았다. 규제가 잘 갖춰지는 것은 블록체인이 제대로 산업화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FATF 규제의 적용 범위를 지금은 거래소 정도 생각하지만, 지갑이나 토큰발행자, 플랫폼까지 확장된다면 상당히 많은 프로젝트가 사업을 접게될 것으로 예상한다. 자금세탁방지(AML)는 은행도 하기 어려운 일이고 시스템을 갖추는 게 힘들다. 각국 법규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나라별로 정리될 건 정리되고 살아남을 건 살아남을 것이다.”

-중국의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가 올해 가시화될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중국 최고지도자가 블록체인 기술 육성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중국의 블록체인 드라이브를 어떻게 평가하나?

“중국의 CBDC는 아직 블록체인인지 아닌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나온다면 임팩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위챗페이가 가져온 변화를 짚어봐야 한다. 그전엔 온라인 기반 오프라인 서비스(Online to Offline)의 구현이 쉽지 않았는데, 위챗페이가 나오면서부터 상상도 못하던 수준까지 실현됐다. 만약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본원통화가 디지털화된다면 상상할 수 없는 유스케이스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중국에서 증명된다면 다른 나라들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중국은 방향을 결정하면 그에 따라 빠르게 움직인다. 게다가 중국인들은 정말 열심히 일한다. 중국 정부도 지원을 하겠다고 하니 정말 많은 이용사례가 만들어질 것이다. 다만, 글로벌화되느냐는 다른 문제다. 중국 내에서만 진행해도 충분할 수 있으니까.”

-리브라도 애초 계획대로라면 올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여러 플레이어들이 다 잘 됐으면 좋겠다. 리브라도 나오고, 텔레그램도 잘 되고, 라인도 나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확률을 높이고 킬러앱을 찾고 유스케이스를 찾아야 한다. 각 플레이어들이 직접 하건, 그들이 만든 플랫폼 위에서 서비스를 하건, 어쨌든 뭐든 나와야 이용자들이 블록체인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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