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를 위한 돈, 민주화를 위한 돈
[편집장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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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재
유신재 2020년 1월16일 08:00

 

검열 저항성(censorship resistance)’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여러 암호화폐의 핵심적인 특징이지만, 여전히 이 용어는 상당히 많은 오해를 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의 거래내역을 아무도 감시할 수 없다는 의미로 검열 저항성을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해다.

비트코인의 모든 이동은 공개된 장부(분산원장)에 기록되기 때문에 누구나 열람하고 추적할 수 있다. 얼마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성착취 동영상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와 이용자들을 처벌할 수 있었던 것도 비트코인의 이런 특징 덕분이다. 한국 경찰과 미 연방수사국 등은 불법 영상물을 매매하는 데 사용된 비트코인을 추적해 범죄자들을 검거할 수 있었다.

비트코인의 검열 저항성이란, 거래 내역을 감시하지 못한다는 게 아니라 감시를 하더라도 거래를 막지 못한다는 뜻이다. 내가 가족이나 친구, 혹은 마약상이나 심지어 테러단체에 비트코인을 전송하더라도 중간에서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말이다.

대체로 평온한 일상을 사는 대다수 사람들은 검열 저항성이 마뜩잖을 수 있다. 나쁜 놈들에게 돈이 흘러가는 것은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 세계 각국의 권력기관들이 은행계좌를 동결하는 방식으로 테러자금 지원이나 각종 범죄를 막을 수 있는 배경이다.

하지만 일상의 평화가 어그러지는 순간 단순해 보이던 문제가 복잡해진다. ‘반송중’ 시위가 반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홍콩에서 시위대는 방독면과 물, 응급약품 등 시위에 필요한 물품 상당수를 거리에서 얻는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물품 구입을 위한 돈을 모금하거나, 물품을 사서 시위 현장에서 나눠주기도 한다. 홍콩 경찰은 지난달 시위대 지원단체 ‘스파크 동맹’이 모금한 7000만 홍콩달러(약 104억원)를 동결시켰다. 마약조직이나 테러단체의 자금 동결은 쉽게 지지해도 홍콩 시위대 자금 동결에는 고개를 갸웃거릴 이들이 많을 것이다.

홍콩이공대 안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던 학생들이 지난해 11월19일 저녁 경찰의 눈을 피해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이 학생들은 모두 경찰에 붙잡혀 연행됐다. 사진=김봉규 한겨레 선임기자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 정부가 암호화폐 관련 규제를 마련하고 있다. 나쁜 놈들에게 돈이 흘러가지 않도록 하는 자금세탁방지가 초점이다. 업계에서도 암호화폐 제도화의 시작으로 받아들이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그 속에서 검열 저항성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홍콩 시민들이 그토록 경계하는 중국은 디지털 통화(CBDC) 개발에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는 나라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에도 일정 수준의 익명성을 부여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중국 정부가 감시와 통제 능력을 포기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홍콩 시민들이 받아들일 미래의 돈은 검열저항성을 갖춘 암호화폐일까, 인민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위안화일까.

 

*이 칼럼은 <한겨레신문> 1월16일자와 인터넷한겨레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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