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말 가상계좌 중단과 실명제는 위헌이었을까
헌재, 16일 '암호화폐 거래 실명제' 공개변론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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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
김병철 2020년 1월19일 09:00
헌법재판소. 출처=김병철/코인데스크코리아

정부의 가상통화 투기 대책은 위헌인가? 헌법재판소는 2017년 말 발표된 정부의 '가상통화 투기 대책'의 위헌 여부를 가리기 위해 지난 16일 공개변론을 열었다. 이날 청구인 300여명은 정부 조치가 법률 근거 없이 재산권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피청구인인 금융위원회는 은행들의 자발적 참여이기 때문에 공권력 행사가 아니라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정부 대책: 가상계좌 → 거래 실명제


정희찬 안국 법률사무소 변호사 등 348명은 정부의 '가상계좌 중단'과 '거래 실명제' 조치가 위헌이라며 2017년 12월30일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법소원이란 공권력이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에 헌재에 구제를 요청하는 제도다. 헌재는 지난 2년여동안 양쪽 변론을 들었고 이날 첫번째 공개변론을 열었다.

헌법소원에 이르게 된 것은 2017년 1월 약 1천달러였던 비트코인이 같은 해 12월이 되자 최고점인 2만달러까지 약 ‭1900‬% 폭등한 뒤였다. 암호화폐 투기 열풍이 심상치 않자, 금융위는 투기와 범죄를 예방한다면서 2017년 12월 은행에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가상계좌 제공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가상계좌는 통상 공과금이나 인터넷쇼핑, 우윳값·신문값 등에 사용한다. 관공서 및 기업은 은행과 가상계좌 서비스 계약을 맺고, 가상계좌를 고객에게 하나씩 분배한다. 고객이 이 가상계좌로 입금하면 관공서 및 기업은 해당 납부가 완료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금융위는 곧이어 2018년 1월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를 시행했다. '가상통화 거래 실명제'라고 불리는 이 조치는 거래소에 원화를 입·출금할 때 거래소와 투자자가 동일한 은행을 사용하도록 강제한다. 기존 가상계좌 방식에서 투자자는 B, C 은행의 계좌에서 (거래소가 부여한) A은행의 가상계좌로도 입·출금할 수 있었다.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출처=헌법재판소 제공

1. 각하?


헌법소원의 종국 결정은 각하, 인용, 기각 3가지다. 이중 제일 먼저 따져봐야 하는 건 이 조치가 헌법소원 대상이 되느냐다. 심판청구가 적법하지 않으면 헌재는 각하 결정을 내려 본안심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①공권력 행사
정 변호사 등 청구인들은 가상계좌 중단 등 정부가 취한 조처가 권력적 사실행위에 해당하므로 헌법소원 대상인 '공권력 행사'라고 주장했다. 청구인은 "'슈퍼갑'이라 할 수 있는 금융위 지시를 은행이 거부할 여지는 극히 적다"면서 가상계좌 중단과 거래 실명제 실시는 정부가 은행에 강요한 공권력 행사라고 강조했다.


반면, 피청구인인 금융위는 은행의 자발적 참여라 공권력 행사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금융위는 "이 대책을 어겼다고 은행들이 법적 불이익을 받을 것이 예정되지 않았다"며 "은행들이 금융당국과 논의 과정에서 자금세탁 위험성 등 가상계좌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자발적으로 따른 것"이라는 반론을 펼쳤다.


②자기관련성
금융위는 청구인들에게 헌법소원 청구 자격이 없다며 자기관련성을 문제 삼았다. 가상계좌 서비스의 당사자는 은행과 거래소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청구인들은 정부 조치의 직접적 대상은 은행이지만, 이로 인해 청구인들이 가상계좌를 이용할 수 없게 됐으므로 자기관련성이 있다고 밝혔다. 정 변호사는 "서로 악수하려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손을 묶으면, 다른 사람도 악수를 못하게 되는 논리와 같다"고 주장했다.


③기본권 침해
2018년 1월 가상계좌 중단 후 거래 실명제 실시까지 약 한달의 기간이 있다. 이 기간 동안 신규 투자자는 일부 거래소에서 가상계좌를 통해 암호화폐에 투자할 수도, 거래 실명제를 사용할 수도 없었다. 청구인들은 자유롭게 거래를 할 수 없어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금융위는 자신에게 가상계좌를 부여해달라는 건 법률상 권리가 아니며, 헌법상 기본권은 더더욱 아니라고 반박했다.

2. 인용 또는 기각


각하가 아니라면 헌재는 청구의 실체적 내용을 살펴보는 본안심리를 거쳐 인용과 기각을 결정한다. 헌재가 청구를 인용하면 가상계좌 중단 등 정부 조치는 취소된다. 그러나 청구가 이유없다고 판단하면 기각한다.

①재산권 침해
청구인들은 비트코인 등 "암호재산은 엄연한 재산권"이며, 정부 조치는 자유로운 거래를 제약한 공권력 행사라며 재산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가상계좌는 은행이 거래소와 계약하는 서비스일 뿐이라며, 가상계좌 사용권이 헌법상 기본권이 아니므로 재산권 침해가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②법률유보원칙
만약 재산권으로 인정된다면 공권력이 이를 제약하려면 관련 법률이 필요하다. 청구인들은 정부 조치는 국회에서 입법된 법률에 근거하지 않는 행정부의 가이드라인(행정조치)일뿐이라며 위헌이라고 강조했다.


정 변호사는 1993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으로 시행된 금융실명제와 비교했다. 그는 "당시 금융위가 가상통화 거래 실명제처럼 (행정조치로)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다면, 헌재는 위헌 결정했을 것"이라며 "이 사건 심판과 금융실명제가 다른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과 은행법을 근거로 들었다. 특금법에 따르면 은행은 고객신원을 확인하고, 자금세탁 등 의심거래를 확인하면 금융위에 보고해야 한다.


금융위는 가상계좌 방식에서 은행이 아닌 거래소가 고객에게 각 가상계좌를 부여하다보니, 은행이 차명거래를 실시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를 거래 실명제로 전환해, 거래소와 고객의 입출금계좌를 동일은행으로 제한함으로써 자금세탁 위험을 낮췄다는 주장이다.

"규제는 필요했다"


공방은 첨예하지만 양쪽 모두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은행의 자금세탁방지 노력은 필요하다는 점이다. 정 변호사도 "은행이 불법행위 차단을 위해 암호화폐 거래내용 확인이 필요했다는 건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규제는 적법한 절차(입법)를 통해 도입해야 한다"며 위헌을 주장했다.

법조계에선 위헌 결정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이 많지는 않다. 일부 변호사들은 각하 혹은 기각을 예상했다. 한서희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헌재가 공권력 행사가 아니라고 보고 각하할 가능성이 있다. 설령 본안심리에 들어가더라도 인용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양쪽 변론과 참고인 진술을 들은 후 위헌 여부를 판단할 계획"이라고 밝힌 헌재는, 이날 공개변론 이후 앞으로 양쪽의 보충의견서 등을 더 받아볼 예정이다. 헌재 관계자는 "변론 후 수개월만에 결정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실체가 빠르게 파악되지 않으면 수년씩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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