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썸 대표에서 커스터디 창업가로…"나는 모험가 허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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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모 기자
박근모 기자 2020년 1월22일 16:50
허백영 볼트러스트 대표. 출처=볼트러스트
허백영 볼트러스트 대표. 출처=볼트러스트

혹시나 몰락하는 건 아닐까.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산업에 드리운 구름을 보며 많은 이들이 탄식한다. 그러나 커스터디 업체 볼트러스트(Vaultrust)를 창업한 허백영 대표는 아직 기회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글로벌 금융기업 도이체방크, 씨티은행(Citibank), ING 등에서 15년 이상 몸담았다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에 입사한 지 반년 만에 대표에 올랐던 그다.

자신을 '모험가'라고 칭한 허 대표는 "암호자산이 세상을 바꾸는 금융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역설했다. 다만, 그 전제는 전통 금융기관의 참여이며, 이를 위해 커스터디 서비스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커스터디 업체를 꾸린 허 대표를 지난 17일 강남구에 위치한 볼트러스트 사무실에서 만났다.

- 스스로를 '모험가'라고 부르는 이유는?

"대학 졸업 후 도이치은행 전산 담당으로 처음 금융권에서 일하게 됐다. 이후 씨티은행과 자회사인 씨티캐피탈에서 신규 서비스 개발을 담당했다. 신규 서비스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ING가 ING증권을 설립한다고 해서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이 작업이 마무리되자 공허함이 밀려왔다.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게 힘들었다. 그때 '미래 금융회사가 되기 위한 채용'이라는 빗썸의 채용 공고를 봤다. 내용이 너무 부실했다. 담당자에게 연락해서, 금융 회사가 되려면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웃음) 암호화폐 거래소라는 생전 처음 보는 산업에 대한 궁금증에 노파심이 든 것 같다. 어느날 이상준 사장으로부터 한번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함께 세상을 바꾸는 금융 혁명에 도전하자고 했다. 빗썸에 들어갔고, 금융전략을 담당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대표가 됐다. 대표직에 오른 뒤 빗썸 내부 시스템이 안정화되는 것을 이끌었다. 내겐 또다시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고, 빗썸을 나와 커스터디 업체 볼트러스트를 만들었다."

허 대표를 빗썸에 영입한 이상준 사장은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국 팀장 출신으로 2017년 8월 빗썸에 합류했으며, 지금은 빗썸코리아의 지주사인 빗썸홀딩스의 대표를 맡고 있다.

- 커스터디 업체를 만들게 된 배경은?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암호자산 커스터디 업체는 생소하고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 9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제이 클레이튼 위원장이 비트코인 연동 ETF 상품 발행을 위한 가장 중요한 선결 과제는 커스터디라고 말하면서 바뀌었다. 커스터디 서비스는 암호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또 적절한 절차를 통해 전송하는 것을 가장 기본으로 하는 서비스다. 암호자산을 활용한 파생상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커스터디 서비스가 필수라는 의미다. 이를 위해 2019년 4월 빗썸코리아 사내 벤처로 볼트러스트를 만들었다. 빗썸 퇴사 이후 본격적인 커스터디 서비스 사업을 위해 분사했다. 현재 총 12명으로 구성돼 있다."

- 해외에서는 빗고(Bitgo), 피델리티, 코인베이스 등이 커스터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 상황은?

"현재 국내 암호자산 시장은 해외 커스터디 업체가 장악하고 있다. 국내에 제대로 된 커스터디 업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4차위) 권고안에 담긴 '암호자산 제도화' 중장기 전략을 보면, 금융권이 암호자산을 취급하는 과정에서 해외 커스터디 업체에만 의존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산 커스터디 솔루션을 개발·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 암호자산은 국내 기업이 맡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국내에서도 본격적인 커스터디 서비스가 등장할 때가 됐다. 그래야만 한다. 커스터디 서비스가 뒷받침 됐을 때 암호자산을 기반한 다양한 금융 상품이 나올 수 있다."

- 단순히 커스터디 서비스가 있다는 것만으로 거래소가 더욱 안전해지고, 여기에 기반을 둔 금융 상품이 나올 수 있다는 프로세스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암호자산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보안 솔루션이 없어서? 보안 담당자가 없어서? 아니다. 인적 요소인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다. 아무리 보안 시스템을 잘 갖췄다 해도 담당하는 사람이 뚫리면 끝이다. 내부 횡령 사고도 그렇게 발생한다. 내가 몸담았던 빗썸만 하더라도 보안을 위해 연간 70억원을 쓴다. 그럼에도 암호자산을 탈취당했다. 그렇다면 전통 금융권에서는 왜 이런 사고가 거의 없을까? 전통 금융기관은 당장 필요한 자금을 제외한 나머지는 수탁업체에 보관한다. 커스터디라는 통제 절차로 철저히 자산을 보관하는 것이다. 전통 금융기관들은 수탁 서비스에 자산을 맡기고, 맡긴 자산을 기반으로 다양한 금융 상품을 만든다. 암호화폐 거래소도 마찬가지다. 암호자산에 기반한 금융 상품이 나오려면, 이를 위한 암호자산이 안전하게 보관됐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 그렇다면 제대로 된 암호자산 커스터디 서비스가 제공된다면, 국내 전통 금융권에서 암호자산 금융 상품이 나오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을까?

"당연히 나올 수 있다. 이미 국내 대형 은행 몇 곳과 이야기를 진행 중이다. 다만, 국내 금융권에서는 직접 암호자산 커스터디를 하고싶어 하지 않는다. 암호자산 커스터디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블록체인 메인넷 노드 개발부터 암호자산 보관 기술 개발 등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전통 금융권에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논의 중인 국내 대형 은행들은 모두 제대로 된 암호자산 커스터디 서비스가 있다면 여기에 보관된 암호자산으로 새로운 금융 상품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논의 중인 내용도 해당 금융사에 맞는 암호자산 커스터디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분이다."

- 볼트러스트의 수익 모델은? 커스터디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나?

"맞다. 기본적으로 암호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해주고, 이에 대한 수수료를 받는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관 수수료는 수익 모델이 될 수 없다. 금융권 수준으로 암호자산 커스터디 서비스를 개발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또 다양한 커스터디 업체가 등장하면서 수수료 경쟁도 치열해질 것이다. 이런 상황을 뚫고 나가려면, 다양한 기관과 거래소 등의 암호자산 커스터디 서비스를 유치해서 규모의 경제를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보관된 암호자산을 바탕으로 대출이나 OTC 등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볼트러스트는 기본적으로 거래소나 금융 기관을 위한 커스터디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또 다양한 암호자산 금융 서비스도 순차적으로 직접 선보일 계획이다."

- 볼트러스트 같은 수탁업체들이 많이 생긴 뒤, 어떤 과정을 거쳐 암호자산 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는가?

"암호자산을 활용하면 현재는 불가능한 다양한 금융 상품이 등장할 수 있다. 예컨대, 한 기업이 1000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할 계획인데 당장에 소송 비용이 부족하다. 이 경우 소송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기업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자체를 토큰화해서 700억원 정도에 판매할 수 있다. 만약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면, 차익 실현을 위해 이 토큰을 구입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유형 자산이 아닌 무형 자산까지도 암호자산을 통해 투자 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 '저 빌딩의 유리창 하나는 내꺼야'라고 말했던 농담이 현실화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점차 이런 형태의 금융 상품을 원하는 투자자가 많아지고 있다."

- 볼트러스트의 커스터디 서비스는 언제 나오나?

"커스터디 서비스는 올해 상반기 중 출시될 계획이다. 주 타깃은 국내·외 암호화폐 거래소, ICO를 진행한 재단, 부가서비스 제공자, 전통 금융 기관, 국내 대기업, 개인 자산가 등이다. 대표적으로 빗썸이 보관 중인 암호자산 일부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 소재의 암호화폐 거래소와 금융 기관도 볼트러스트 커스터디 서비스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상태이며, 서비스 제공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국내 금융기관과도 논의가 진행 중인만큼 이른 시일 내 새로운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당장은 금융권 수준의 안전한 솔루션을 완성해, 올해 상반기 서비스를 출시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 다음 암호자산을 활용한 다양한 금융 상품과 서비스도 본격 개발할 계획이다. 볼트러스트가 커스터디 업체로 자리를 잡고 안정적인 성장을 한다면, 그 다음은 잘 모르겠다. 아직 이후 계획은 없다. 다만, 그때가 되면 나는 또 다른 새로운 사업을 위해 움직이고 있지 않을까 싶다.(웃음) 나는 안정적 관리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모험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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