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탁 서비스가 암호화폐 시장을 불공정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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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lle Acheson
Noelle Acheson 2020년 1월27일 22:31

우선 ‘컨테이너(container)’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자. 바다를 오가는 대형 화물선 이야기가 아니다. 병, 상자, 통처럼 무언가를 넣을 수 있는 ‘용기(vessels)’를 말하는 것이다. 믿을 만한 컨테이너의 용도는 무언가를 넣어두는 것이다. 좋은 컨테이너는 안에 든 내용물이 변하지 않아야 한다.

금융에서 ‘용기’는 대개 펀드 자산을 저장하는 수탁서비스를 말한다. 좋은 수탁서비스는 고객 앞으로 된 증권과 채권을 안정적으로 ‘보관’한다. 종종 추가서비스가 제공되기도 하지만, 자산의 ‘가치’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치는 서비스는 금물이다.

하지만 암호화폐 시장은 다르다. 좋은 암호자산 수탁서비스는 자산의 시장 가격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며, 자산의 본래 가치에도 영향을 준다.

이러한 차이는 처음 암호화폐가 세상에 나왔을 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두드러진다. 전통 금융에서 수탁자는 시스템의 핵심이지만, 시장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암호화폐 분야에서 개인 또는 단체로 이루어지는 수탁자의 전략은 자산의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이러한 영향력에 대한 적절한 감독은 이뤄지지 않고, 규제 대상도 아니다. 그래서 어쩌면 완전히 새로운 권력 구조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받아들여지느냐 내쳐지느냐

암호자산 관리 기업 비트와이즈(Bitwise)의 최근 업데이트를 예로 들어보자. 비트와이즈는 2017년 암호화폐 업계의 첫 인덱스 펀드 중 하나인 비트와이즈 10 프라이빗 인덱스 펀드(Bitwise 10 Private Index Fund)를 출시했다. 최근 비트와이즈는 투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수에 포함하는 자산을 고르는 기준을 업데이트했다고 밝혔다.

업데이트 이전까지만 해도 비트와이즈 10 대형 암호화폐 인덱스(Bitwise 10 Large Cap Crypto Index)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암호자산이 콜드스토리지(오프라인 지갑)에 보관되어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번 업데이트가 반영되면서,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은 수탁자가 자산을 보관해야만 해당 인덱스에 포함될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타당해 보인다. 특히 가격 변동 폭이 크고 하락장이 심한 암호자산의 특성을 고려하면, 비록 암호자산 수탁이 복잡하긴 해도 투자관리 측면에서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암호자산 분야는 취약한 보안이라는 고질적 문제를 안고 있다.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은 수탁자를 우대하는 것은 더 강력한 감독 체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는 옳은 방향이다.

그런데 한발 더 들어가보자. 이번 규정 변경으로 인덱스 구성에 변화가 생겼다. 일단 모네로(XMR)가 인덱스에서 빠졌다. 익명성에 중점을 둔 프라이버시 코인(privacy coin)은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은 수탁자에게 자산을 맡기지 않는다. 모네로가 빠진 자리는 체인링크(LINK)가 대신할 예정이다.

인덱스 기준이 합리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듯 보이기는 하지만, 암호자산에 대한 기관투자자의 관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수탁자의 관행’이라는 문제가 남는다.

수탁자들은 불확실한 규제 때문에 프라이버시 코인을 멀리할 수 있다. 또한, 기관투자자들이 귀찮은 자가수탁보다 전문적 서비스를 선호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굴지의 인덱스 펀드에 포함되느냐 마느냐는 자산의 가격 전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시장 인프라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결정이 여기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 비트와이즈는 투자자 소식지에서 카르다노(ADA)가 인덱스 자격을 갖추었음에도 펀드에서 카르다노를 매각한다고 밝혔다. 펀드의 수탁자인 코인베이스 커스터디(Coinbase Custody)가 카르다노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펀드의 구성 변경은 펀드매니저의 특권이다. 하지만 수탁자가 자산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예는 또 있다. 코인베이스 커스터디는 카르다노 기반 암호화폐 에이다(ADA)를 지원한다는 결정을 해야 할까? 그러면 에이다는 펀드에 포함될까? 한 수탁자의 결정만으로 좌지우지되는 이러한 가능성이 에이다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걸까?

 

장단점

스테이킹(staking) 서비스를 예로 들어보자. 점점 더 많은 수탁자가 ‘스테이킹’으로 알려진 거버넌스 메커니즘에 참여해 토큰 보유자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분증명 방식을 채택한 블록체인에서는 토큰 보유자가 토큰을 맡겨놓고 거래를 검증하는 데 참여하면 (작업증명 방식에서 채굴 보상처럼) 보상을 받는다. 수탁자들도 고객이 맡긴 자산을 스테이킹에 활용하려 한다. 많은 고객이 추가 수익에는 끌리지만, 이를 위해 복잡한 절차를 거치는 것은 꺼린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고객들에는 종종 기관투자자도 섞여 있다. 이들은 투자의 선택지를 ‘편리한 스테이킹’으로 제한하고 싶어한다. 바꿔 말하면, 수탁자가 지원하고자 하는 토큰의 스테이킹 서비스에만 투자하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수탁자는 투자자의 선택을 좌지우지할 수 있고, 이렇게 함으로써 자산의 시장 가치에 적잖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오늘날 은행은 모든 종류의 통화 예금에 이자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외환 시장의 유동성과 이자를 주는 폭넓은 다른 투자처가 있다면 은행의 전략은 큰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

암호화폐 시장이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아직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은 수탁자가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관투자자가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다른 분야 만큼 넓은 투자 선택지를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암호화폐는 수탁자의 선택에 영향을 많이 받는 자산이다.

 

변화의 끝은?

전통적인 금융시장에서 대형 수탁자들은 자산 선별에 관여하지 않는다. 수탁자들은 이 역할을 투자자에게 맡긴다. 전통적인 수탁자는 기술적 고려사항에 기반해 어떤 자산을 지지할지 결정하지 않는다. 기술을 빼고 나면 시장 철학의 밑바탕에는 경쟁을 통해 공정하게 자산 가격이 결정될 것이란 생각이 깔려있다.

그러나 암호화폐 시장 내 경쟁은 공정과 거리가 멀다.

수탁자 같은 시장 인프라 참여자들이 현재와 잠재적 시장 가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면서 새로운 권력 구조가 탄생한다.

앞으로 경쟁이 증가하면 이러한 영향이 줄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암호화폐 시장에서 수탁과 투자를 비롯한 여러 분야가 곧 통합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를 통해 수탁자의 영향을 줄일 수 있는 반대급부는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암호자산 시장의 분위기는 완전히 뒤바뀔 것이다. 암호자산은 중앙화된 수탁자가 필요하지 않도록 설계되었지만, 진화를 거듭한 끝에 지금은 중앙화된 수탁자가 더 많은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러한 변화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시스템은 유기적으로 진화하기 때문에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효율보다는 리스크가 더 큰 시스템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경험했던 일이다. 초기 인터넷의 탈중앙화 약속은 중앙화된 인프라로 진화했고 우려스러운 부작용들을 낳았다. 우리가 탈중앙화 구조에서 문제가 생기면 직접 해결하는 '불편하지만 자주적인' 방법 대신에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는 권한을 중앙의 관리자에게 넘겨버렸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똑같은 실수를 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이번에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은 우리의 정보뿐만이 아니다. 암호화폐 시장은 새로운 부를 창출하고 이를 손쉽게 이전할 수 있는 시장이다. 당장은 비교적 규모가 작지만, 주류 포트폴리오에 편입되고 있고 앞으로 더욱 폭넓게 금융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확률이 높다.

편리함은 좋다. 이와 더불어 암호자산 분야의 시장 전문성과 관리·감독 수준이 높아지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무엇을 원하는지 신중하라”는 격언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 글을 쓴 노엘 애치슨 연구원은 약간의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 This story originally appeared on CoinDesk, the global leader in blockchain news and publisher of the Bitcoin Price Index. view BPI.
· Translated by NewsPepperm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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