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에서 토큰 관련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는 카림 차브락. 출처=코인센스
튀니지에서 토큰 관련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는 카림 차브락. 출처=코인센스

이더리움 재단(Ethereum Foundation)이 유엔아동기금(UNICEF, 유니세프)에 했던 기부는 매우 현명한 판단이었다.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논의 중이지만, 유니세프에 대한 지원을 향후 2년간 지속하기로 했다. 유니세프 같은 단체와 제휴를 맺은 건 우리 재단이 이더리움 기술 향상에 계속 집중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방안이라고 믿는다.” -아야 미야구치, 이더리움 재단 이사

지난해 10월 이더리움 재단은 비트코인(BTC)과 이더(ETH) 등 15만 달러어치 암호화폐를 유니세프에서 시험 운영하는 암호화폐 펀드에 기부했다. 이후 유니세프 카자흐스탄 사무국은 유니세프 본부에서 지역 교육 프로그램에 보내는 자금 등 내부 결제를 처리하는 이더리움 기반 결제 시스템을 개발해왔다.

“시스템 운영 준비가 완료됐다. 해당 시스템은 유니세프에 여러모로 득이 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시스템 개발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스마트계약과 이더리움만을 사용했는데, 디지털 화폐 송금에 비트코인을 이용해보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 달라.” -올렉산드라 가스케비치, 유니세프 제휴 담당자

유니세프가 예산을 처리하는 과정에는 다양한 승인 권한이 있는 담당자 여러 명의 서명이 필요하다. 그래서 카자흐스탄 사무국은 여전히 스마트계약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지금은 비용을 처리하려면 사람이 일일이 엄청난 양의 서류를 재확인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새로운 디지털 결제 절차가 도입되면 업무 효율성이 확연히 오를 것으로 보인다.

가스케비치는 유니세프 카자흐스탄 사무국이 내년부터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러시아어를 쓰는 다른 국가들에 맞춰 시스템을 쉽게 수정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튀니지의 시범프로그램

유니세프는 소프트뱅크 투자자문(SBIA)과도 제휴를 맺고, 암호화폐 유통 구조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유니세프 벤처스(UNICEF Ventures)의 공동책임자 크리스 파비안은 튀니지의 토큰 프로젝트 ‘코인센스(Coinsence)’ 등 몇몇 스타트업에 자금을 지원하며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디디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코인센스는 ERC-20 기준을 따라 발행한 토큰을 지역사회에서 통용되는 화폐로 사용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코인센스의 설립자 카림 차브락은 인구 10만의 해안 도시 함마메트에서 2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시범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해당 프로그램은 이번 분기에 정식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금 부족과 청년실업 문제를 겪는 지역사회들이 있다. 이들은 정부가 나서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주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 카림 차브락, 코인센스 설립자

지역 주민들은 주로 해안가를 청소하는 자원봉사자에게 ERC-20 규정을 따른 토큰을 지급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차브락은 실업률을 낮추고 생산적인 지출 습관을 기르도록 하는 데 프로젝트의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체 지역 토큰을 발행하길 원하는 지역사회를 지원하는 법적 틀이 마련돼 전국 규모의 협회를 연내에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비트코인에 관해 처음 들은 건 2010년의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추구하는 바는 일반 시민들의 삶에 녹아들어 역할을 하는 투기 용도가 아닌 화폐를 만드는 것이다.” -카림 차브락

이러한 실험은 모두 이더리움 재단에서 자금을 지원받은 것인데, 이더리움 재단은 기술적 조언만 제공할 뿐 SBIA처럼 공식 파트너는 아니다. 예를 들어 코인센스는 이더리움 재단으로부터 지원금으로 받은 이더 50개 대부분을 지난해 말 시범 프로그램에 지원하거나 연구 비용으로 썼다. 또 아르헨티나 스타트업 아틱스 랩(Atix Labs)은 이더리움 재단이 기부한 비트코인을 사용해 파비안이 카자흐스탄 프로그램에 유용할 것이라고 말한 소프트웨어 툴을 개발했다.

파비안은 지난해 이더리움 재단이 유니세프에 기부한 것은 우선 실험을 해볼 부분이 있다는 데 양측이 합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각적 접근

이더리움 재단은 직접 블록체인 솔루션을 운영하지 않고도 유니세프와의 협약을 통해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파비안은 “이더리움 재단 덕분에 여러 방면에서 이더리움 커뮤니티와 교류하고 커뮤니티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는 기부 이상의 파급효과를 불러왔다. 가스케비치에 따르면, 유니세프 카자흐스탄 사무국에서 지금까지 청년 200명을 대상으로 이더리움에 관해 교육한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 프로그램에 블록체인 기술과 스마트계약에 관한 기본 요소들이 포함됐다. 유니세프에서 내부 시스템을 바꾸고 이더를 받아줄 외부 파트너를 찾아 나서면서 카자흐스탄 사무국은 특정한 니즈를 충족할 맞춤형 솔루션을 개발하기 위해 현지 인재를 교육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파비안은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 건설업체 등 카자흐스탄 현지에 있는 외부 파트너 중 서비스 대금을 암호화폐로 받길 원하는 곳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물론 강요하지 않는다. 암호화폐로만 비용을 지급하는 게 아니라 법정통화로도 지급하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 -크리스 파비안, 유니세프 벤처스 공동책임자

파비안은 앞으로 2년간 유니세프의 목표는 현지 기술 벤처 업체들을 지원해 인터넷이 되지 않는 학교에 인터넷을 연결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는 자체 암호화폐 노드를 운영함으로써 인근 지역 주민들과 가게에 인터넷을 연결해주고 그 대가로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유니세프는 일회성 기부를 넘어 프로젝트 자체를 지속할 수 있는 생태계의 구축을 목표로 한다.

전 세계 학교들이 인터넷을 연결할 수 있도록 돕는 이니셔티브 ‘기가(GIGA)’ 이외에도 차브락은 친환경적인 활동에 인센티브를 제공해 비영리기관과 대학들이 유엔(UN)의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튀니지 지역사회에서 사용되는 화폐들을 고안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이더리움인가?

이더리움이 전 세계 다양한 프로그램에 450억 달러에 이르는 자금을 투자하는 유니세프의 글로벌 개발 전략에 가장 널리 쓰이는 블록체인 기술이 된 가장 큰 비결은 이더리움 재단이 유니세프에 먼저 손을 내밀어 기부했다는 사실이다.

이더리움 재단이 낸 기부금의 액수는 유니세프 전체 예산 크기에 비하면 극히 작지만, 파비안이 언급한 협약 덕분에 유니세프 암호화폐 펀드가 암호화폐를 송금받고 유통할 수도 있는 적법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다. 펀드에서 비트코인도 받고 있으나 파비안은 지금까지 비트코인 기부는 한 건도 없었다고 말했다.

차브락은 자신이 튀니지에서 얻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암호화폐를 사용하도록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정부와 같은 익숙한 기관이 발행하지 않은 자산을 이용자 본인이 소유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해외 스타트업의 토큰이나 비트코인을 판매하기가 더 어려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트코인에 대한 이질감뿐만 아니라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자산이라는 점 때문에 지역사회는 비트코인 생태계를 구축하기를 꺼린다. 사람들은 발행 주체를 알 수 있고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화폐를 받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 카림 차브락

물론 이처럼 지역사회에서 비트코인을 통제와 관리가 가능하지 않은 자산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오해일 수도 있다.

이더리움 재단은 그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다른 컴퓨터과학 자원이 부족한 신흥 시장에서 간접투자 방식으로 블록체인 교육과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전략이 결국에는 시장 점유율과 인지도를 놓고 경쟁하는 수많은 블록체인 프로젝트 가운데 이더리움 재단을 차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대개 암호화폐는 투자 수단으로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이더리움은 투자 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유니세프든 다른 어떤 기관이든 우리가 보유한 기술을 활용해서 우리의 영향력을 극대화할 방안을 찾을 것이다.” -아야 미야구치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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