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칼럼]열흘이 넘었다. 집에 있지만 집에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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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선 기자
정인선 기자 2020년 3월10일 10:00
출처=Andrea Piacquadio/Pexels
출처=Andrea Piacquadio/Pexels

  코인데스크코리아는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1000명에 다가가던 지난달 24일 오후 ‘되도록 재택근무’ 조처를 취했다. 같은 날 SKT와 KT 등 대기업들이 전면 재택근무에 돌입한 상태였다.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이니, 원격근무엔 익숙했다. 본래도 일주일에 한 번 주간 편집회의가 있는 날이 아니고선 동료들과 얼굴을 맞댈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재택근무도 수월할 줄 알았다. 막상 해보니 아니었다. 

  #1일차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이 있는 옆 방으로 출근했다. 각각 30분씩은 걸리던 외출 준비와 이동 시간이 사라졌다. 그 주에 만나기로 했던 업계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돌리는 걸로 업무를 시작했다. “사태가 잠잠해지면 다시 만날 날을 잡자”로 시작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건강하라”는 말로 끝나는 통화를 수차례 주고받았다. 

  #2일차

  집에 머문다고 해서 놀고 있는 게 아니란 점을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것도 일이었다. 지난해 9월 부모님 집에서 독립해 나온 뒤 내가 혼자 사는 집에 한 번도 찾아오지 못했던 엄마는 이때다 싶으셨는지 “혼자 심심할테니 놀러 가겠다”고 했다. 가족과 따로 사는 1인가구도 이런데, 당분간 학교에도 학원에도 갈 수 없는 어린 자녀가 있는 이들은 어떨지 까마득했다.

  가방을 메고 집 밖으로 나가는 척을 한 뒤, 남편이 아이의 한눈을 판 사이 빈 방으로 들어가 ‘셀프 감금’을 하니 그나마 아이의 방해 없이 재택근무를 할 수 있었다던 워킹맘 기자 선배의 무용담이 떠올랐다. 엄마가 방 안에 숨어 취재원들과 종일 전화 통화를 주고받는 동안 아이가 “어디서 엄마 소리가 난다”고 말해 모두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나.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김외현 부편집장은 “나는 초등학생 아들들에게 빼앗겨 내 방은커녕 책상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3일차

  슬슬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마스크와 노트북을 챙겨 집 앞 카페로 출근했다. 카페는 이미 나같은 이들로 만석이었다. 회사에선 재택근무를 지시했지만 책상에 앉으면 침대와 부엌이 한눈에 들어오는 다섯 평 원룸에선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어 종일 카페에서 마스크 한 장에 의지해 일하고 있다는 친구, 그리고 월세 수십만원을 내면서 굳이 집 밖에 작업실을 따로 구한 프리랜서 친구가 생각났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권고는 개별 기업, 혹은 개개인만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4일차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기사거리를 찾으려니 쉽지 않았다. 주간 아이템 보고를 앞두고 평소의 배로 막막했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들로도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일찍이 잡아 뒀던 인터뷰도 모두 무기한 연기된 탓이다. 메일함에 들어온 보도자료도 모두 기업들의 재택근무 확대 소식 뿐이었다. 속으로 ‘이 자료도 담당자가 집에서 썼을까’ 생각했다. 집에 있지만 집에 가고 싶어졌다. 

  #주말

  눈 비비자마자 책상으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토요일이 오자 깨달았다. 집 밖에 못 나가는 게 싫은 게 아니라 집 안에서도 일을 해야 하는 게 싫은 거였다. 며칠째 밖에 나가지 않으니 시간과 요일 개념이 흐릿해졌다. 토요일 밤, 일요일 밤인줄로 착각해 난생 처음 “와, 내일 출근한다”고 설레어 했더니 친구가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라고 했다.

  #다시 월요일, 5일차

  두고 온 물건이 있어 오랜만에 사무실로 향했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유신재 편집장이 출근해 있었다. 오후 한나절을 상사와 함께(라기엔 인사 정도만 주고받고 각자 할일을 하며) 지내니,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환경에 다시 감사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대중교통이 붐빌 시간을 피해 마스크를 눌러 쓰고 귀가했다.

  한편, 전국 초, 중, 고등학교 개학이 23일로 2주 더 미뤄졌다. 재택근무도 그만큼 길어졌단 의미다. 장기전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했다.

  #9일차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처음으로 코인데스크코리아 기자 여섯 명이 모여 회의를 했다. 물론, 직접 만나지 않고 화상으로 진행했다. 당초 모이기로 한 시간은 세 시였지만 누구는 화상 회의 접속 링크를 찾지 못해서, 누구는  노트북 마이크가 켜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작이 20분정도 지연된 점만 빼면, 회의는 평소처럼 매끄럽게(?) 진행됐다.

  #10+n일차

  • 잠옷 그대로 책상에 앉지 말 것.
  • 싱크대에 설거지 거리가 쌓여 있어도 업무 시간이 끝나기 전엔 못본 척 할 것.
  • 출근 시간, 점심 휴게 시간, 퇴근 시간이 오면 간단한 요가나 스트레칭이라도 해, 일과 생활에 단절을 줄 것.
  • 자주 창문을 열어 집 안을 환기할 것.
  • 특별한 용건이 없어도 취재원들에게 더 자주 전화해 안부를 물을 것.
  • 업무가 끝나면 가까운 집 앞 공원이라도 나가 산책할 것 등.

  ‘슬기로운 재택근무 생활’을 위한 나름의 규칙을 세워 지키기 시작하니 집 안 생활도 조금씩 수월해졌다. 그렇다고 해도 언제까지 방 안에서 반쪽짜리 취재를 해야하나 걱정스런 마음이 더 크다. 하루빨리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돼 모두의 일상이 회복되길 바란다. 잠잠해지면 다시 만나자는 그 말, 빈말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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