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의 상위개념을 뭐라고 할까? 그동안 업계 안팎에선 암호화폐, 가상통화 등이 혼용돼왔는데 3월5일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21일 국내 양대 거래소 가운데 한곳인 빗썸이 ‘가상자산’이라고 하겠다고 발표했다. 가상자산은 영어 virtual asset의 직역이다. 지난해 6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권고안을 갱신하면서 쓴 용어고, 이는 국내 특금법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따라서 국제법과 국내법상 용어는 ‘가상자산’이 맞다. 업계에도 이미 정해진 법률용어인데 굳이 거스를 필요가 있느냐는 견해가 있다.

빗썸 발표 이틀 뒤인 23일 양대 거래소의 또 다른 한곳인 업비트의 방침도 발표됐다. 업비트는 ‘가상’이란 우리말 단어가 영어 virtual과 같지 않다며 반기를 들었다. virtual은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사실상 다르지 않다’는 뜻인 반면, 가상은 ‘실체가 없다’는 의미라는 설명이다. 업비트는 본래 의미를 포괄적으로 살린 ‘디지털 자산’을 쓰겠다고 밝혔다.

코인데스크코리아도 고민이 시작됐다. 우선 가상자산에 대해선, 일상의 용어가 반드시 법률용어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예컨대 주택법 본문에 ‘공동주택’은 있어도 ‘아파트’는 없다. 공동주택은 일상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말이다. 도로교통법에는 ‘오토바이’라는 용어는 없고, 배기량에 따라 ‘원동기장치자전거’와 ‘이륜자동차’가 나뉠 뿐이다. 물론 일상에선 오토바이라고 통칭한다. 그렇다면 ‘가상’의 의미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일상용어를 쓰는 언론이 반드시 법률용어를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디지털 자산은 범위가 너무 넓다. 싸이월드 도토리도 돈 내고 샀던 디지털 형태 자산이었다. 현존하는 수많은 종류의 적립포인트나 게임머니도 다르지 않다. 심지어 은행 예금도 현금으로 뽑기 전까지는 디지털 형태로 존재하고 사용되는 자산이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 한정하기엔 디지털 자산은 광범위한 개념이다.

‘암호화폐’를 그냥 쓰는 것은 어떤가. 블록체인의 시초인 비트코인에는 암호학 기술에 기반한 화폐로 기존 금융질서를 대체하겠다는 큰 꿈이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블록체인 기술과 산업에 애정을 가진 이들이 암호화폐라는 용어를 선호한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블록체인 기술은 이후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왔다. 부동산이나 대출상품 등 실물자산을 ‘토큰화’하는 경우엔 화폐와 거리가 멀다.

저마다 견해가 다기하게 갈리는 현실 앞에서 코인데스크코리아는 일단 ‘암호화폐’라는 용어를 유지하면서 추이를 지켜보려 한다. 신생 산업의 앞날에 대한 중요한 논의를 목격하는 기회에 감사하면서.

김외현 기자 13년 동안 한겨레에서 정치부와 국제부 기자로 일했고, 코인데스크코리아 합류 직전엔 베이징특파원을 역임했습니다. 신문, 방송,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 환경을 경험했으며, 새로운 기술과 오래된 현실이 어우러지는 모습에 관심이 많습니다. 대학에서는 중국을, 대학원에서는 북한을 전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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