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엔 국가차원의 블록체인 발전전략이 있다
독일 블록체인·암호화폐 법제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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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 기자
김병철 기자 2020년 4월15일 08:00
독일. 출처:Ingo Joseph/Pexels
독일. 출처:Ingo Joseph/Pexels

베를린은 유럽에서 블록체인 개발자가 가장 많이 모여있는 도시 중 한 곳으로 꼽힌다. 그러나 블록체인을 바라보는 독일정부의 심정은 복잡하다. 장기 디지털 전략으로는 블록체인 기술을 키우고 싶지만, 불법 다단계 사기 등 암호화폐 범죄로 투자자 피해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정부는 다양한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법제를 정비하면서 블록체인을 제도권 안으로 포섭하고 있다. 

독일연방정부는 2019년 9월 블록체인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토큰경제를 위한 방향의 설정'이라는 부제에서 보듯이, 독일정부가 블록체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블록체인 기반 토큰경제를 발전시키려는지에 대한 포괄적 내용을 담고 있다.

'숙의 전문국가'인 독일은 이 전략 수립을 위해 2019년 봄 대규모 자문회의를 열고 158명의 전문가 및 관계자의 의견을 취합했다. 2018년까지 독일에서 거주한 김성곤 전 충북블록체인진흥센터장은 "독일정부는 1년 가까이 준비했고 발전전략의 부속문서만 수백장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블록체인으로 디지털 혁신 촉구

발전전략의 두 축은 ①디지털 혁신 촉진과 ②금융 안전성 확보다. 

"블록체인 기술이 제공하는 기회를 이용하고 이 기술의 잠재력을 디지털 전환에 활용한다. 새로이 태동한 혁신적인 독일의 블록체인 생태계는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독일은 블록체인 응용 프로그램의 개발과 블록체인 기술의 확장에 대한 투자처로서 매력적인 입지가 돼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독일 정부는 블록체인 기반으로 디지털 ID 시범사업, 고등교육 증명서 시범사업 지원, 물류 공급망 연구개발 등을 하겠다고 밝혔다. 또 기후변화 대응이 국책 과제인 독일은 블록체인을 에너지산업에 적용하는 연구개발과 실증사업도 추진한다. 독일 정부는 "블록체인 기반으로 발전설비 시스템을 공공DB에 연결하는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독일 정부는 불가역성과 불변성이라는 특성을 이용해 블록체인상 정보를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고 있다. 더불어 블록체인 응용프로그램이 영상, 음악 등 콘텐츠 저작권을 보호할 수 있는지도 연구중이다. 심지어 2020년 말까지 회사법에 블록체인을 도입해 출자지분을 관리(지분의 청산, 지분권의 행사 등)할 수 있는지도 검토할 계획이다. 곧 정부가 나서 DAO(탈중앙화 자율조직)를 연구한다는 뜻이다. 

김형섭 한밭대 교수(법학박사)는 "독일은 블록체인에 대한 체계적 국가전략을 본격적으로 제시하고, 분야별로 다양한 시험을 통해 기술의 확장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출처=베를린/EPA 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출처=베를린/EPA 연합뉴스

 

암호화폐의 금융 안전성 확보

독일 정부가 블록체인을 중요한 미래 기술로 보면서도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이유는 암호화폐가 가진 리스크 때문이다. 독일 정부는 발전전략에서 "명확하고 안정적인 규제의 틀을 구축해 매력적이고 안정적인 투자환경을 조성한다"면서도 "국민경제 전체의 균형을 유지하고,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우선적으로 추구한다"고 밝혔다. 

독일 연방금융감독청(BAFIN)은 비트코인 가격이 전고점에 가까웠던 2017년 11월 암호화폐공개(ICO)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당시 BAFIN은 ICO가 기업공개(IPO)와 유사한 이름을 가졌지만 법률과 기술적으로 전혀 다르다며 "ICO는 매우 투기성 높은 투자로 투자금을 모두 잃어버릴 것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BAFIN은 이어 ICO에 사기꾼이 많이 모여들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덧붙였다. 

독일은 암호화폐 거래를 일찌감치 제도권 안에서 규제했다. BAFIN은 비트코인이 발행된 지 3년 후인 2011년 은행법을 개정해 암호화폐를 금융상품으로 규정했다. 김성곤 전 센터장은 "암호화폐 거래소도 인허가 요건을 갖춘 후 BAFIN의 금융서비스 라이선스를 얻어야 사업을 할 수 있어서 한국처럼 난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보아왔던 거래소 '먹튀'나 사기도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한국 금융위원회는 법률이 아닌 행정지도로 ICO를 금지했지만, BAFIN은 원칙적으로는 금지하지 않는다. 다만 금융위 관계자는 "독일도 자국민 대상 ICO는 제한하고 있어, 독일 기업도 스위스 등에서 ICO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데이터 조사기관인 스타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2018년 4월 기준 독일의 블록체인 스타트업은 120여개이며, 이중 52개 회사가 ICO로 자금을 조달했다.

Infografik: 120 Blockchain-Startups in Deutschland | Statista

독일 정부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올해 안에 ICO 규제법을 만들 예정이다. 독일 정부는 발전전략에서 "암호화폐 발행인이 사전에 법률 규정에 따라 BAFIN의 승인을 얻어 작성된 투자설명서를 공시한 때에만 암호화폐 공모를 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4차 EU 자금세탁방지 지침을 2019년 12월에 은행법에 적용하면서 암호화폐 수탁업을 제도권 안으로 추가했다. 이를 통해 2020년 1월부터 은행도 고객의 암호화폐를 수탁할 수 있게 됐다. 당시 독일 은행협회는 즉각 환영 입장을 밝혔다. 

한국에선 KB국민은행이 디지털자산 수탁사업을 준비중이지만 법제 환경이 여의치 않다. 일견 비교된다고 볼 수 있지만, 천창민 서울과학기술대 조교수(경영학과)는 "독일은행은 증권·보험·카드 등까지 모두 하는 ‘유니버설뱅킹’ 형태라 은행업만 하는 한국의 은행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독일 금융기관이 암호화폐 수탁업도 가능해진 것으로 해석하는 게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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