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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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전례없는 경제위기에 대응해 미국, 유럽, 일본 등 각국 정부는 가계 지원을 위한 현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러한 재난지원금이 ‘헬리콥터 머니’에 비유되면서 은행이나 자산가가 아닌 ‘국민을 위한 양적완화’가 코로나 이후 세상의 정책 대안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양적완화(QE)는 기준금리가 제로에 가까워져 더 이상 내리기 힘든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말 그대로 양(통화량)으로 승부하는 것을 말한다. 국채 등 자산 매입을 통해 금융기관에 돈을 풀어 시장금리를 낮추려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으로 선진국에서 실시하고 있다.

헬리콥터 머니는 1969년 통화론자 밀턴 프리드먼이 창안한 용어로, 중앙은행이 헬리콥터에서 돈을 살포하듯 통화를 직접 시중에 공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앙은행이 화폐를 찍어 길바닥에 뿌릴 수는 없기 때문에 양적완화처럼 국채를 사들여 유동성을 공급한다. 다만 국채를 유통시장이 아닌 발행시장에서 사들여 재무부 계좌로 돈을 쏴 국민을 위해 사용한다는 점에서 양적완화와 차이가 있다. 정부는 입금된 돈을 재원으로 재난지원금처럼 가계에 현금을 지급해 소비를 뒷받침할 수 있고, 인프라 투자 등을 위한 재정 지출도 늘릴 수 있다. 은행을 지원했던 기존의 양적완화와 달리 헬리콥터 머니가 ‘국민을 위한 양적완화(People’s QE)’로 불리는 이유다.

중앙은행은 경제에 유동성을 불어넣을 수는 있지만, 돈이 흘러가는 목적지를 정하지는 못한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 있지만 마시게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특정 경제주체를 구제하는 건 정부다. 헬리콥터 머니는 이런 재정정책을 본따 용처를 정해 국민들 계좌에 현금을 집어넣는 방안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통화정책이 효과를 내기 위해 재정 이전과 결합한 구조라는 것이다.

미 연준은 지난 3월 가계 생계와 고용을 지원하는 폭넓은 대책을 내놨다. 최서영 삼성선물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정책은 일자리와 소득 문제는 정부가 책임을 지고 그 과정에서 늘어날 정부부채는 중앙은행이 떠안는 구조로, 헬리콥터 머니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지난달 9일 재무부에 직접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영란은행의 단기융자제도를 통해 재무부가 마이너스 통장을 갖게 된 것이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전 의장도 2016년 연준에 재무부의 특수 계정을 만들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연준이 국채매입 대금을 재무부 계좌에 입금해 공공사업에 쓰자는 것이었다. 2015년 제레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는 국책은행이 발행하는 채권을 영란은행이 사들여 정부가 주택과 대중교통 등 공공 인프라에 투자해 고용을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동안 양적완화는 금융시장을 안정시켰지만 자산가와 기업들에게 과실이 돌아가 부의 불평등을 키웠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직후 미 연준 등 주요국 중앙은행은 국채를 유통시장에서 대거 사들여 금융기관에 공급한 유동성이 민간대출로 이어지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신용경색을 우려한 은행들이 대출을 꺼려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초과지급준비금이 늘어날 정도로 실물경제로는 돈이 스며들지 못했다. 갈 곳을 잃은 유동성은 주식시장 등으로 흘러가 자산가격을 끌어올렸다.

이에 취약계층 지원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정책수단으로 헬리콥터 머니가 재조명되고 있다. 영국의 경제전문가 프란시스 코폴라는 최근 국내에 발간된 저서 '프리드먼은 왜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자고 했을까?'에서 ‘은행을 위한 양적완화’에서 ‘모두를 위한 양적완화’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금융위기 이후 실시된 양적완화가 은행을 구제함으로써 경제시스템을 유지하는 데는 기여했지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서민들은 구제하지 못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은행에 돈을 빌려주는 데만 사용할 게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위해 재정을 지출하는 데 활용할 것을 주장한다.

이같은 헬리콥터 머니는 정부의 부채 부담을 덜어줄 수는 있지만 통화량 증가로 물가상승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프리드먼도 '화폐경제학'에서 과도한 화폐발행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하지만 지금의 물가를 보면, 인플레이션보다는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수준이다. 헬리콥터 머니 주창자들은 금융위기 이후 저물가의 지속은 양적완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방증으로, 실물경제 회복을 위해서도 적정 수준의 인플레를 일으킬 필요가 있다고 반박한다.

기존에 확보된 예산에서 지출하는 한국의 재난지원금은 헬리콥터 머니와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은 “다음에 다른 곳에 사용될 재정을 앞당겨 활용하는 재난지원금은 경제에 추가적인 구매력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파월 연준 의장이 ‘마이너스 금리’ 선긋는 이유

은행 예대마진 축소돼 수익 악화
4조8천억달러 이르는 MMF 우려

유로지역과 일본에 이어 미국과 영국도 ‘마이너스 금리’ 도입 압박을 받고 있다.

미 연방기금 금리 선물시장은 지난 7일부터 기준금리 마이너스 인하 가능성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마이너스 금리의 효과가 불확실하며 현재로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하고 나서야 최근 0%에서 움직이고 있다. 영국은 지난 20일 사상 첫 마이너스 금리로 국채를 발행했다. 영란은행은 지난 3월 기준 금리를 사상 최저인 0.1%까지 인하했다. 투자자들은 영란은행이 올해 말쯤 금리를 마이너스까지 인하할 가능성에 베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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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는 “코로나19가 이제 중앙은행들에 더 많은 경기부양을 실시하도록 마이너스 금리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시장에서는 코로나19에 따른 수요충격으로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진입할 수 있다는 우려가 마이너스 금리 가능성을 유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 연준은 시장이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마당에 부정적 효과가 우려되는 마이너스 금리정책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일정액의 현금을 중앙은행에 맡겨놓고 있는데, 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면 되레 예치금에 대한 이자를 내야한다. 또 고객의 예금금리에는 마이너스를 적용하기 어려워 예대마진이 축소돼 수익성이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단기자금시장의 불안도 우려된다. 미국의 경우 4조8천억달러에 이르는 머니마켓펀드(MMF) 수익률이 하락하거나 마이너스가 되면 판매가 중단될 수밖에 없다. 실제 일본은 2016년 1월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도입한 뒤 엠엠에프 잔액이 빠져나가기 시작해 이듬해 5월에는 아예 시장이 사라졌다. 반면 유럽중앙은행(ECB)은 2014년에 도입한 마이너스 금리에 대해 실물경기 부양과 물가안정에 유효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은행의 수익성도 자산가격 상승과 대출 확대에 따른 수익 개선이 예대마진 하락 영향을 상쇄해 중립적이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경기후퇴 우려가 커지고 저물가 기조가 지속될 경우 오는 8월께 마이너스 금리 전망이 다시 부각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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