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플리커
출처=플리커

"그램(GRAM)에 투자한 것만 수천만원인데, 꼭 받아야 합니다."

텔레그램이 블록체인 프로젝트 톤(TON, Telegram Open Network)에서 사용하는 암호화폐 그램 판매를 두고 벌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소송전 끝에 마침내 항소를 포기했다. 이 소식을 접한 국내 그램 투자자들과 공구방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집단 멘붕'이란 표현도 모자람이 없어보인다.

지난 13일 텔레그램의 설립자인 파벨 두로프는 공식 발표를 통해 "SEC와 진행 중인 법정 다툼으로 톤 프로젝트를 중단한다"며 "그램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의 72%를 환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무렵부터 투자자들 사이에서 투자금 환불에 대한 걱정이 슬슬 커지기 시작했다. 결정타는 25일(현지시각)에 나왔다. 텔레그램은 "미국과 해외 투자자들에게 그램 토큰 발행을 금지한 법원 판결에 항소를 철회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톤 프로젝트의 완전 포기와 더불어 그램 토큰도 영영 발행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문제는 국내 투자자들은 톤에 직접 투자한 게 아니라 '공구방'(공동구매상)을 통해서 간접 투자한 것이어서, 텔레그램의 투자자 보상 및 구제책을 직접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공구방 한곳에 직접 투자한 것도 아니고, 또 다른 공구방을 여러 차례 거치는 등 '다단계' 형태였다. 텔레그램이 투자금을 환불한들, 여러 단계를 거쳐 이같은 투자자들에게까지 투자금이 돌아올지 확실치 않다.

익명을 요청한 공구방 관계자 ㄱ씨는 "다단계 방식으로 그램 판매가 이어지면서, 공구방 사이에서도 환불을 어떻게 받고, 정산해야 하는건지 혼란에 빠져있다"고 현 상황을 전했다. ㄱ씨는 이같은 방식으로 모아진 국내 톤 투자금이 적어도 300억원 규모라고 귀띔했다.

공구방을 통해 그램에 투자했다는 개인투자자 ㄴ씨는 "공구방 담당자들이 연락도 받지 않고, 사무실도 닫혀 있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그램에 투자한 나 같은 투자자들을 모아서 소송 등 공동 대응하려고 준비 중"이라며 "투자금의 일부라도 회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탄했다.

ㄱ씨 등에 따르면, 2018년 다수의 공구방들은 개인들에게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받고 그램을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텔레그램은 투자금을 현금으로만 받았다. 이 때문에 상위 공구방들은 하위 공구방에게 현금으로 투자금을 넘겨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2018년과 지금의 암호화폐 가격이 다르고 현금화 시점에 따라 저마다 투자금의 규모도 달라지는 탓에 공구방을 통한 개인 투자자의 실제 투자 금액을 확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상위 공구방조차 언제 환불이 될지 모르는 마당에, 공구방끼리의 여러 이해관계까지 얽혀있어 하위 공구방과 개인투자자들의 투자금 환불은 장담할 수 없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투자 계약서 문제도 환불의 걸림돌로 꼽힌다. ㄴ씨처럼 공구방을 이용한 대다수 개인 투자자들은 계약서 작성 없이 계약을 체결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결국 계약 여부를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 공구방도 마찬가지다. 공구방 관계자에 따르면, 그램뿐만 아니라 대다수 국내서 판매된 암호화폐의 경우 하위 공구방과 상위 공구방이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쌍방의 투자 계약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만큼 투자금을 받기까지 민형사상 책임 소재 공방이 불거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구방은 묵묵부답

현재 그램 토큰 판매를 주도한 공구방들은 바짝 엎드린 채 침묵하고 있다.

"텔레그램의 항소 포기 소식을 듣고, 상위 공구방 운영자에게도 연락해봤지만, 그쪽도 그들의 윗선에 확인중이라는 이야기만 하고 있어 답답한 상황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내년에는 톤이 출범하고, 그램이 풀려서 토큰 배포가 이뤄질 줄 알았다. 우리도 투자 손실이 막대하다." - 공구방 운영자 ㄷ씨

코인데스크코리아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에서 그램 판매를 진행한 것은 3~4개의 최상위 공구방을 중심으로 한 다단계 구조였다. 특히 가장 규모가 컸던 최상위 공구방은 지난해 7월 일본의 암호화폐 거래소 리퀴드에서 그램 퍼블릭세일을 진행했던 '그램아시아'라고 한다. ㄱ씨는 "그램아시아의 김아무개씨는 국내 한 암호화폐 다단계 업체와 연결돼 있으며, 그 업체가 그램 토큰을 국내서 판매하기 위해 그램아시아라는 곳을 내세운 것으로 안다"며 "당시 그램을 판 자금을 바탕으로 현재는 새로운 채굴 코인을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램아시아 홈페이지는 현재 폐쇄된 상태로, 코인데스크코리아는 여러 차례 김모 대표에게 연락했지만 보도 시점까지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톤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풀렸다 하더라도 국내 투자자들이 제대로 보상을 받을 수 있었을지 의문스럽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상위 공구방으로부터 그램 판매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는 또다른 공구방 운영자 ㄹ씨는 "2018년 당시 그램아시아를 필두로 다양한 업자들이, 그램 물량을 확보했으니 팔기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홍보했다"면서 "특히 텔레그램이 하는 유망한 프로젝트라는 소문이 돌면서 묵혀만 놔도 이득이라는 소문이 돌아 날개 돋친 듯 팔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ㄹ씨는 "하지만 불법적인 일을 했던 사람들이 공구방을 만들고 그램을 개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판매하는 모습을 보고 그램에 관심을 끊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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