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래밍’되어 신속 지급된 한국 재난지원금의 비결
한국 79% 지출 시작했는데
일본 아직 72%가 신청 중
카드·주민번호가 ‘효율’ 갈라
미·캐나다 저소득층 지원
독·프 프리랜서 등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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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
김병철 2020년 6월2일 07:00

코로나19 유행에 따른 경기 침체를 우려한 ‘재난지원금’ 정책이 전세계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각국은 저마다 재정 상황과 사회적 합의에 따른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재난 상황에 대처하는 행정력도 관건으로 떠올랐다. 특히 나라마다 다른 주민식별제도와 금융 및 정보기술(IT) 인프라는 지원의 속도까지 가르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사례를 비교하면 이런 차이가 비교적 선명하게 나타난다. 두 나라 의회는 지난 4월30일 코로나19로 고통받는 모든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추가경정예산을 각각 의결했다. 19일이 지나 한국에선 79%의 가구가 재난지원금을 받아 지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같은 날 일본 지방자치단체 중 19%만 지급을 시작했고, 72%는 신청서를 우편으로 발송 중이라고 <재팬 타임스>는 전했다. 같은 날 같은 결정을 했는데, 한국에선 이미 돈이 쓰이기 시작했고, 일본에선 아직 신청도 못 한 이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한-일 간 격차를 빚어낸 가장 큰 원인은 카드 이용률과 신원 확인 시스템이었다. 한국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세원 양성화 및 내수 활성화를 목적으로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실시하는 등 정부가 사실상 카드 이용을 장려했다. 그 결과 민간소비지출에서 신용카드 비율은 2000년 13%에서 2019년 72%까지 증가했다. 반대로 현금결제 비율(2018년)은 한국 20%, 미국 26%, 일본 48%였다.

신용·체크카드에 현금을 ‘충전’하는 방식으로 코로나19 관련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된 5월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이 이용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출처=김혜윤/한겨레
신용·체크카드에 현금을 ‘충전’하는 방식으로 코로나19 관련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된 5월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이 이용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출처=김혜윤/한겨레

 한국은 높은 카드 이용률을 활용해 신용·체크카드에 현금을 ‘충전’하는 방식을 택했다. 세계은행이 집계한 181개국의 코로나19 경제대응 현황 자료를 보면, 이런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카드 충전’ 방식의 지원은 즉각적으로 지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원금이 쓰일 수 있는 업종, 지역, 기한 등을 설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필요와 취지에 맞게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셈이다. 한국은 이를 가계 소비 진작 및 중소상공인 지원에 맞춰 설계했다.

 반면, ‘현금 지급’ 방식의 지원은 소비로 이어지지 않고 채무 변제나 저축에 사용될 우려가 있다. 실제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일본, 대만 등이 현금성 지원을 했으나 경기부양 효과에 대해선 논란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개인에게 식별번호를 부여하는 한국의 주민등록번호 제도 또한 도움이 됐다. 대부분 나라의 경우 사회보험, 운전면허, 여권 등 특정 목적의 일련번호는 있지만, 통합을 시도한 것은 오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한국은 중앙집권적 행정구조 아래에서 1968년 ‘김신조 사건’ 뒤 간첩 식별 등을 위해 모든 국민에게 번호를 부여했다. 번호 자체에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담아 사생활 침해라는 논란이 있고, 모든 경우에 동일한 번호가 이용돼 위험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코로나19 국면에서 감염 경로 파악과 재난지원금 지급에는 큰 도움이 됐다.

 일본은 통합형 ‘마이넘버’ 제도를 2015년부터 시행했지만, 강제 사항이 아닌 탓에 보급률은 16%(5월 초 기준)에 그치고 있다. 1인당 10만엔(약 114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온라인으로 신청하려면 마이넘버카드가 필요한 탓에, 마이넘버가 없는 많은 이들은 우편으로 신청서를 받아 관공서에 제출했다.

 모든 국민에게 현금을 보편지원하지 않고, 저소득층이나 경제적 피해가 큰 이들을 선별지원하는 나라들도 있다. 캐나다는 소득이 감소한 이들이 인터넷이나 전화로 신청하면 매주 500캐나다달러(약 45만원)를 최대 16주 동안 은행 계좌나 수표로 지원한다.

 미국은 연소득 7만5천달러 이하의 납세자 94%에 대해 성인 1인당 1200달러(약 148만원)를 재난지원금으로 준다. 지급 수단은 국세청에 납세 신고를 하던 은행 계좌를 통한 이체와 수표 우편 발송 가운데 택할 수 있다. 미국은 이미 2001년, 2008년 경제부양을 위해 납세자에게 각각 300, 600달러를 같은 방식으로 지급한 경험이 있다.

이탈리아 금융관료들이 29일 이탈리아은행 연례 보고서 발표 행사에 참석했다. 출처=AFP 연합뉴스
이탈리아 금융관료들이 29일 이탈리아은행 연례 보고서 발표 행사에 참석했다. 출처=AFP 연합뉴스

 개인에게 현금을 직접 주지 않고, 기업에 운영비와 인건비 등을 보조하는 경우도 많다. 독일과 프랑스는 프리랜서, 자영업자, 10명 이하 사업자에게 운영비 등을 지급하며, 이탈리아는 해고를 막기 위해 최대 9주 동안 노동자 급여의 80%를 지원한다. 피해 기준을 매겨 선별적으로 지원하면 형평성에 부합하고 재정 부담이 적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상 선정과 지급에 시간이 걸리는 단점도 분명하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싱가포르와 홍콩은 보편지원을 선택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계좌 이체와 수표 우편 발송을 통해 전 국민에게 소득별로 600~1200싱가포르달러(약 52만~104만원)를 지급한다. 홍콩 정부는 지난 2월 성인 약 700만명에게 1만홍콩달러(약 160만원)를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지급 시기는 3분기 이후로 예상되고 있다. 

코로나19, 디지털 화폐 논의의 불씨를 살리다

재난지원금 배달 사고 속출하면서
미국에서 ‘디지털 달러’ 논의 활발
은행 없이 직접 지원금 수령 ‘가능’

각국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면서, 중앙은행이 직접 디지털 화폐(CBDC)를 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탄력을 받고 있다. 은행 계좌나 수표 등 전통적 방식보다 효율적인 지급 수단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논의는 특히 미국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난 4월16일 러시다 털리브와 프라밀라 자야팔 등 민주당 소속 하원의원들은 정부가 직접 코인을 발행해 국민들에게 매달 지원금을 지급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크리스토퍼 장칼로 전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은 지난 5월11일 세계 최대 블록체인 콘퍼런스 ‘컨센서스’에 참가해, 새로운 시대엔 달러의 역량도 확대돼야 한다며 ‘디지털 달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디지털 달러는 지난해에도 여러차례 관련 법 발의 등이 있었지만 실제 법제화로 이어지진 못해 힘이 빠지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씨가 되살아난 이유는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배달 사고’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장애는 중앙은행과 시중은행으로 구성된 2중 구조에서 비롯됐다. 대다수 지원금 수령자들은 최근 2년 동안 세금 환급을 받은 은행 계좌로 지원금을 받았는데,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시중은행에 돈을 보내고 은행이 이를 다시 개인들에게 송금하는 과정에서 최소 하루 이상이 걸렸다. 게다가 중간에 주말까지 끼어 있었다. <뉴욕 타임스>는 “워싱턴(연준)에선 금요일에 돈을 보냈는데 사람들은 수요일에야 돈을 받았다”며 “차라리 포니익스프레스(서부개척시대의 조랑말 우편)가 더 빠를 것”이라고 꼬집었다.

 세무사를 통해 세금을 신고했거나 세금 환급 대상이 아니어서 국세청이 계좌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경우도 입금이 지연됐다. 은행 계좌 개설을 위한 최소 예금액조차 없는 이들은 우편으로 수표 형태의 지원금을 받았지만, 이들의 수표는 도난 위험에 노출되기도 했다.

 디지털 화폐를 주장하는 이들은 시중은행을 ‘중개인’으로 간주하면서, 지원금이 2중 구조를 거치지 않고 직접 국민들에게 전달된다는 장점을 강조한다. 금융소외계층도 손쉽게 수령할 수 있다면 더 큰 형평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금융분석가 프랜시스 코폴라는 보편적 기본소득 지급처럼 현금 유통량이 급격히 커지는 상황에서 디지털 화폐를 활용하면 기준금리를 건드리지 않고도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에 즉각 대응할 수 있다고 본다.

 디지털 화폐 논의를 선도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전자지급수단이 유용한 지원금 지급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쓰촨성 청두시가 위챗페이와 알리페이를 통해 ‘소비 바우처’를 발행해 소비 진작에 나선 것이 대표적인 예다. 다만, 지난 4월 구체적 내용이 발표된 ‘디지털 위안’ 시범사업과 관련한 재난지원 사례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정인선 기자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해 12월 디지털 화폐(CBDC)를 운영하는 방법에 관해 가상의 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 보고서로 발행했다. 사진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럽중앙은행 건물. 출처=로이터 연합뉴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해 12월 디지털 화폐(CBDC)를 운영하는 방법에 관해 가상의 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 보고서로 발행했다. 사진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럽중앙은행 건물. 출처=로이터 연합뉴스

 

디지털 화폐(CBDC) 성장하면 블록체인 뜬다?

발표 때마다 비트코인 상승
공개 사례 모두 블록체인 활용
낙관론 불구 전망 아직 일러

장면 하나. 중국 인민은행의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구상에 대한 여러 관측이 나오던 2019년 10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블록체인 기술과 산업 혁신적 발전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까지 하락세를 보이던 비트코인 가격이 이날 40%가량 급등했다.

 장면 둘. 지난 2월12일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시비디시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고 밝히자 비트코인이 갑자기 급등하기 시작했다. 이날도 비트코인은 다른 이유 없이 4% 넘게 상승했다.

 시비디시는 본디 전자적 형태로 발행되는 중앙은행 화폐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5월18일 낸 ‘해외 중앙은행의 시비디시 추진 현황’ 자료를 보면, 현재까지 시비디시의 구현 기술을 공개한 6건의 사례에 모두 블록체인 분산원장기술이 활용됐다.

 하지만 블록체인의 파생물인 암호화폐가 시비디시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런데도 투자자들은 시비디시와 암호화폐 가격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시비디시의 성장이 결과적으로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를 이끌 것이라는 낙관론으로 볼 수 있다.

 시비디시는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은행 및 금융기관들만 이용할 수 있는 거액 결제용 시비디시와 개인, 기업 등 모든 경제 주체가 사용 가능한 소액 결제용 시비디시로 나뉜다. 이미 신용카드 등 효율적인 온라인 지급결제시스템을 갖춘 선진국들은 거액 결제용 시비디시에, 금융 포용성이 떨어지는 개발도상국들은 단번에 디지털 지급결제를 구현할 수 있는 소액 결제용 시비디시에 관심을 보여왔다.

 한은 보고서를 보면, 지금까지 발표된 시비디시 계획 가운데 스위스, 싱가포르, 일본·유럽 중앙은행, 캐나다, 타이·홍콩, 프랑스 등은 거액 시비디시를, 중국,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 바하마, 동카리브 등은 소액 시비디시를 추진 중이다. 다만 대부분은 문서 단계에 지나지 않고 시범운영도 극히 제한적이어서, 시비디시의 구체적인 앞날을 전망하기는 아직 이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 4월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유행으로 현금, 신용카드 등 질병 전파 경로가 될 수 있는 결제방식보다 시비디시 등을 이용한 디지털 결제가 대안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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