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 예고? 시장 교란? 쟁글의 '이상한' 예약공시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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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기자
김동환 기자 2020년 6월3일 07:00
미국 야구의 전설 베이브 루스(1895~1948) 뉴욕양키스 선수가 1932년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 홈런을 예고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출처=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미국 야구의 전설 베이브 루스(1895~1948) 뉴욕양키스 선수가 1932년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 홈런을 예고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출처=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암호화폐 정보공시 플랫폼 쟁글(Xangle)의 '예약공시' 제도에 대한 원성이 들끓고 있다. 일부 암호화폐 프로젝트들이 단기적인 코인 가격 조정(급등)에 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실질적으로 개선될 여지가 크지 않다.

최근의 논란을 달군 것은 지난 25일 암호화폐 프로젝트 무비블록의 '중대 발표'였다. 당시 무비블록은 쟁글을 통해 예약공시를 걸어둔 뒤, 26일 트위터를 통해 '중대 발표'(Big anouncement)를 예고했다.

투자자들은 갖은 추측을 쏟아냈다. 영화배급 관련 블록체인이라는 무비블록의 프로젝트 특성에 비춰, 국내외 방송사 및 제작사와의 제휴라는 설이 오르내렸다. 넷플릭스가 그 상대라는 근거 없는 추론도 등장했다. 관심이 쏠리면서 무비블록 코인(MBL) 가격은 이날만 30% 넘게 올랐다.

27일 정식 공시를 통해 알려진 중대 발표의 정체는 무비블록이 계원예술고등학교와의 온라인 영화제를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이틀 전인 25일 계원예고 홈페이지에 이미 공지된 내용이었다. 예약공시 뒤 업비트 기준 개당 3.6원을 찍었던 MBL 가격은 정식 공시 후 2.18원까지 떨어졌다. 2일 오후 4시 현재 가격은 2.07원이다.

블록체인 기반 IoT 플랫폼 프로젝트인 젠서(Xensor)도 27일 쟁글 예약공시를 실시했다. 개당 12.34원 수준으로 시작했던 젠서 코인(XSR) 가격은 예약공시 후 하루동안 40원까지 올랐다. 다음날 공개된 본 공시는 젠서가 거래소 한빗코에 상장된다는 내용이었다. 젠서는 이미 최대급 거래소인 빗썸 원화마켓에 상장된 상태로, 추가적인 거래소 상장을 '빅 뉴스'라 하기는 힘들어보인다. 그럼에도 예약공시 만으로 가격이 하루사이 3배 올랐던 꼴이다. 실제 공시가 나오자 하락하기 시작해 2일 오후 4시 현재 28.31원을 기록중이다.

이러던 와중에 '쟁글의 파트너'를 자처한 한 인물은 예약공시 대상 암호화폐의 가격 추이를 예상하는 게시물을 주요 암호화폐 커뮤니티에 올려 입길에 올랐다. 이른바 '인플루언서'급으로 평가되는 그는 예약공시 대상 암호화폐의 차트 분석으로 수익을 볼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 암호화폐 업계 인플루언서가 커뮤니티에 업로드한 쟁글의 예약공시 관련 글. 쟁글과 상호 파트너십을 강조하면서 가격 관련 언급을 하고 있다.
한 암호화폐 업계 인플루언서가 커뮤니티에 업로드한 쟁글의 예약공시 관련 글. 쟁글과 상호 파트너십을 강조하면서 가격 관련 언급을 하고 있다.

업계 반응은 대체로 쟁글에 비판적이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에게 투명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공시 플랫폼을 만든 애초 취지는 좋은데, 그냥 공시하면 될 것을 왜 예약공시로 혼란을 주느냐는 것이다.

한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는 "쟁글이 투자자를 교란하는 이상한 제도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확하게 처음부터 무비블록이 계원예고와 온라인 영화제를 진행한다고 공시했다면 누가 그 정보를 보고 MBL을 샀겠느냐"면서 "이미 빗썸에 상장되어 있는 XSR이 한빗코에 추가 상장된다고 해서 매수하는 투자자도 없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암호화폐 분석기업 관계자는 "투자자 정보 공유 차원에서 이뤄지는 공시라기 보다는 고도의 마케팅에 가깝다고 본다"면서 "예약공시가 쟁글의 마케팅용 유료 서비스인지부터 분명히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쟁글 "동일시간 동일정보 차원…문제 없다"

쟁글의 운영사 크로스앵글 쪽은 '예약공시'에 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근 몇몇 코인의 가격이 급등해 화제가 되었을 뿐, 예약공시 제도 자체는 지난 2019년 10월 쟁글이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 베타 서비스때부터 제공됐었다는 것이다.

크로스앵글 관계자는 2일 코인데스크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업계의 문제 제기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우선, 투자 시장을 교란한다는 지적과 관련해, 이 관계자는 "암호화폐 업계는 투자자들 간의 정보 격차가 심한 편인데 이런 부분을 완화하고 투자자들의 정보 획득 시점을 같게 하자는 차원에서 예약공시 제도가 나왔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이 같은 시점에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무비블록의 사례처럼 프로젝트들이 예약공시 플랫폼을 악용하고 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에 대해서는, "저희가 금융감독원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기업에 공시 내용의 진위를 따져 물을 강제력이 없는 민간 공시 플랫폼 특성상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는 얘기다. 그는 "예약공시 공지창 하단에 예약공시 자체가 특정 프로젝트의 호재나 악재를 의미하지 않으니 투자나 의사결정에 유의하라는 안내를 함께 내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예약공시 자체가 프로젝트 쪽에서 추가 비용을 받는 마케팅용 유료 서비스 아니냐는 의혹도 정면으로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쟁글 플랫폼을 이용하는 암호화폐 프로젝트가 공시요건에 맞는 내용을 올리면서 예약공시를 요청하면 공시가 나가는 구조"라며 "오히려 요건에 맞지 않아 저희가 공시를 거부한 사례도 있다"라고 반박했다.

또 '쟁글 파트너'를 자처하면서 예약공시 투자를 부추긴 외부 인사들에 대해서는, "파트너가 아니라 이용계약서를 쓰고 쟁글의 공시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그들의 가격 분석과 쟁글의 예약공시 사이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공시에 '예약'은 성립할 수 없다

쟁글의 '예약공시'는 말 자체가 통상적인 '공시'의 용례와 어긋나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기업공시는 법에 따라 법률관계와 사실관계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행위이다. 현행법(상법)상 주식회사는 정관과 재무제표, 주주명부, 주식 교환·이전 사항 등을 주주들에게 공시해야 한다. 그 내용이 민감한 탓에 상장 기업의 공시는 주가 등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공시는 법률이 지우는 의무이므로, 선택적이라는 뜻을 포함하는 '예약'이란 표현은 성립할 수 없다. 공시는 정해진 시기에 정해진 범위에 맞춰 실시할뿐, 예약 또는 예고 대상이 될 수 없는 이치다.

쟁글의 예약공시 공지창. 본공시까지 남은 기한과 함께 현재 해당 암호화폐의 시세가 표기된다.
쟁글의 예약공시 공지창. 본공시까지 남은 기한과 함께 현재 해당 암호화폐의 시세가 표기된다.

반면, 법의 테두리 밖에 있는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가격 등락'이라는 결과만 노리고 '공시'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 쟁글은 애초 이같은 현실에서 옥석을 가려내줄 신뢰의 플랫폼을 선언했던 만큼, 이번 예약공시 논란으로 입게 될 타격은 불가피해보인다. 쟁글이 거꾸로 투자자들의 투기 성향을 부추긴다는 비판까지 나오는 판이다.

암호화폐 정보 종합 서비스인 메사리(Messari)나 스미스앤크라운(Smith+Crown) 등 쟁글과 유사한 국외 비즈니스 모델을 살펴봐도 예약공시 제도 방식은 찾기 힘들다. 이들도 공시 정보를 제공하지만, 그 내용과 형식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공시 내용의 적정성과 투명성을 플랫폼의 신뢰도와 직결시키는 분위기로 읽힌다. 특히 메사리 전담팀의 감사와 분석을 거쳐야 하는 메사리 공시 레지스트리(Messari Disclosures Registry)에 오른 암호화폐는 2일 현재 57개 뿐이다.

만약 쟁글이 예약공시 제도를 고수한다면, 하루 1차례 특정 시간에 정기적으로 예약공시를 모두 소화하도록 하되 사전에 종목을 공개하지 않는 '정기성 블라인드 예고' 방식으로 개선 가능하다는 견해도 있다. 이렇게 하면 같은 시간에 같은 정보를 투자자들에게 제공하겠다는 애초 쟁글의 목표에는 부합할 수 있다.

쟁글은 2일 오후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통해 예약공시 제도의 배경과 향후 운영방향을 설명하고, "앞으로는 공시를 게시하는 프로젝트와 공시 내용에 대한 검증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정도로 이후에 이뤄질 예약공시가 소비자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지는 의문시된다. 크로스앵글 관계자는 "문제가 된 무비블록 공지도 같은 수준의 검증을 거쳐 게재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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