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암호화폐가 금융상품이 된 과정을 살펴보니
일본 암호화폐 법제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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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
김병철 2020년 6월5일 09:00
일본. 출처=Carla Burke/픽사베이
일본. 출처=Carla Burke/픽사베이

일본에선 한국보다 수년 앞서 암호화폐 투자열풍이 불었다. 크립토컴페어에 따르면 세계 비트코인 시장에서 일본 엔화의 시장점유율은 2016년 60%를 육박했다. 당시 일본은 미국을 제치고 비트코인 투자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열풍의 배경엔 2013~2014년 전세계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였던 마운트곡스(Mt. Gox)가 있다. 그러나 마운트곡스는 2014년 해킹으로 비트코인 85만개(당시 약 4억7300만달러)를 도난당해 수많은 투자자들이 자산을 반환받지 못하면서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에선 암호화폐 사고를 방지하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법률에 근거를 둔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관련 입법이 추진됐다. 이후 일본은 두 차례 법률 개정을 통해 암호화폐 규제를 촘촘히 만들어 가고 있다.

첫번째 규제 체계 정비는 2016년 이뤄졌다. 일본은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암호화폐를 법률상의 재산적 가치로 인정했다. 당시 현금 대신 비트코인 등을 받는 상점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송금, 결제에 관한 법률인 자금결제법으로 포섭한 것이다. 

또한 자금결제법에 '가상통화교환업'을 추가해, 암호화폐 거래소를 상법상 회사로 간주하기로 했다. 규제 테두리 안에 넣은 것이다. 등록제가 도입되면서 미등록 거래소가 퇴출되기 시작했고, 2017년 4월부터는 거래소들이 금융청의 감독을 받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범죄수익이전방지법을 개정해 가상자산 사업자를 규제 대상으로 추가해, 계좌 개설시 고객신원확인(KYC) 등을 강화했다. 이는 2021년 3월 시행 예정인 한국의 개정 특금법과 비슷하다. 

일본 엔화. 출처=Jasmin777/픽사베이
일본 엔화. 출처=Jasmin777/픽사베이

그러나 사고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2018년 1월 당시 일본 최대 거래소였던 코인체크(Coinchek)에서는 넴(NEM) 5억개(약 5억6000달러)를 해킹당했다. 금융청은 해킹이 핫월릿에서 발생했다는 이유 등을 들어 투자자 자산(암호화폐와 금전) 관리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그해에만 20번 넘게 거래소들에 업무개선명령 등 행정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같은 해 9월 거래소 자이프(Zaif)가 비트코인 5966개를 포함해 약 6000만달러의 암호화폐를 또다시 해킹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암호화폐 거래를 제도권에 편입했는데도 잇따라 사고가 발생하자, 일본 금융청은 규제를 강화하는 두번째 법률 개정에 착수했다. 자금결제법과 금융상품법을 2019년 다시 개정해 지난 5월부터 시행한 것이다.

이번 자금결제법 개정에서 법률상 명칭인 가상통화는 암호자산으로 바뀌었다. 통화가 자산으로 바뀐 건 애초 암호화폐를 지불수단으로 바라봤으나 사실상 투자대상으로 활용됐기 때문이다. 2018년 일본 금융청이 전문가들과 운영한 '가상통화교환업 연구회'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암호화폐 거래의 약 80%가 마진거래 등 파생상품 거래였다.

일본암호자산거래업협회(JVCEA)가 공개한 2018년 9월~2019년 12월 일본내 암호화폐 마진거래 현황. 출처=쟁글
일본암호자산거래업협회(JVCEA)가 공개한 2018년 9월~2019년 12월 일본내 암호화폐 마진거래 현황. 출처=쟁글

또한 개정된 법은 거래소 내 투자자 자산을 거래소 자산과 엄격히 분리시켜, 투자자 자산을 신탁회사 등에 맡기게 했다. 해킹에 대비해 투자자 보유 암호화폐는 콜드월릿에 보관하게 하고, 예외적으로 핫월릿에 보관하는 경우에는 인출권 보호를 위해 거래소가 동일한 양의 암호화폐를 보유하게 했다. 추가로 암호화폐 수탁회사도 규제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금융상품거래법은 한국의 자본시장법에 해당한다. 일본은 이 법에서 암호화폐를 금융상품으로 규정해 현물 거래와 파생상품 거래를 모두 규제 대상에 집어넣었다. 이로써 암호화폐를 이용한 증거금 거래를 규제할 수 있게 됐고, ICO(암호화폐공개)에도 금융상품거래법을 적용했다.

조영은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가상자산을 금융상품으로 인정하는 것은 가상자산을 공인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 신중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적어도 시세조종으로 인한 투자자 피해 방지면에서는 일본 금융상품거래법의 불공정거래 금지 규정을 우리도 도입하는 걸 검토할 필요는 있다"고 했다.

한국에 비해 일본은 규제가 명확한 편이다. 한국 금융당국은 ICO를 법률이 아닌 가이드라인(행정지도)으로 금지하고 있고, 암호화폐 정의도 자금세탁방지법인 특금법에 억지로 넣은 데 그치고 있다. 그러나 '관치금융' 성향이 강해 암호화폐 시장의 자율성이 지나치게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자율규제기구인 일본암호자산거래업협회(JVCEA)가 거래소 운영과 암호화폐 상장 등을 관리하지만 사실상 금융청의 입김이 작용한다. 지난 5월1일 기준 협회에 가입한 거래소는 17개이며 상장된 암호화폐는 22종뿐이다. 4일 한국 대형 거래소들인 빗썸과 업비트에만 각각 107종, 173종이 상장된 것과 큰 차이가 있다. 또한 일본 기업이 발행한 암호화폐는 대부분 일본 시장 내에서 거래되는 등 폐쇄적인 모습도 나타난다.

일본 암호화폐 거래소와 상장된 암호화폐 현황. 출처=쟁글
일본 암호화폐 거래소와 상장된 암호화폐 현황. 출처=쟁글

최근 두번째 법 개정으로 일본 암호화폐 거래는 상당히 줄어들 전망이다. 개정 금융상품거래법의 시행으로 허용되는 암호화폐 레버리지 비율은 기존 4배에서 2배로 줄었다.(기존 기업은 1년의 유예기간 존재) 게다가 이 규제로 일본인들은 지난 5월부터 최대 100배까지 허용하는 세이셸 선물거래소 비트멕스에서 투자할 수 없게 됐다. 

거래소 비트뱅크(Bitbank)의 아츠시 쿠와바라 사업개발담당은 코인데스크코리아 인터뷰에서, "최근 법 개정은 투자자 자산 보호 측면을 강화시킬 것"이라며 "(암호화폐) 규제 수준이 증권과 외환 등 금융상품 급으로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일본 금융청이 제일 주력하는 건 투자자 보호 측면이며, 자금세탁과 테러자금조달방지 영역에선 은행 수준의 엄격한 모니터링이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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