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1년 전만 해도 국내에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꽤 있었습니다. 크립토겨울이 길어지고 블록체인 산업의 성장이 더뎌지면서, 많은 기업들이 자의반타의반 '탈블'을 선택했습니다. 이긴 자가 살아남는 걸까요, 살아남는 자가 이긴 걸까요. 이런 상황에서도 묵묵히 남아있는 블록체인 스타트업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바이프로스트(BIFROST)의 박도현 대표를 만나기 전에 걱정이 앞섰다. 지난 1년간 국내 블록체인 업계의 뜨거운 감자가 '탈블(블록체인을 떠난다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바이프로스트의 지상 과제였던 댑 생태계 구현이 머나먼 이야기가 됐음을 알기 때문이다.

바이프로스트에서 이더리움, 클레이튼, 리브라 등 이종 블록체인을 연결하는 테스트 모습. 출처=파이랩
바이프로스트에서 이더리움, 클레이튼, 리브라 등 이종 블록체인을 연결하는 테스트 모습. 출처=파이랩

바이프로스트는 프라이빗 블록체인과 퍼블릭 블록체인을 결합해, 이들의 장점만을 가져오고자 시작한 프로젝트다. 예를 들면 하이퍼레저 패브릭의 빠른 처리 속도와 이더리움의 높은 신뢰도를 결합해, 이더리움을 이용하면서도 빠른 거래 처리를 가능하도록 할 수 있다. 이더리움 기반 댑이라고 할지라도 바이프로스트를 활용하면, 기존 앱과 사용자경험(UX) 측면에서 별다른 차이를 느낄 수 없도록 할 수 있는 기술인 셈이다.

1년 전 박도현 대표는 코인데스크코리아와 인터뷰를 통해 2020년에는 다양한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킬러댑(Killer Dapp)이 등장하고 본격적인 댑의 시대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했다.

"댑(Dapp)의 시대가 올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근데 안 오더군요.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팀원들과 블록체인의 미래에 대해 원점에서 고민했습니다."

현실은 달랐다. 지독한 크립토겨울이 계속되면서 댑 생태계는 퇴보 상태에 빠졌다. 전 세계 댑 리스트를 볼 수 있는 스테이트 오브 더 댑스(State of the Dapp)에 따르면, 전체 댑은 2019년 2667개에서 올해 3514개로 1.31배 증가했으나, 일일 순수 사용자(Daily Active Users)는 12만9000여 명에서 8만5900여 명으로 오히려 0.66배가 줄어들었다.

박도현 파이랩 대표. 출처=박근모
박도현 파이랩 대표. 출처=박근모

지난 16일 압구정동에 위치한 새로운 사무실에서 만난 박도현 대표는 표정이 밝았다. 파이랩테크놀로지(이하 파이랩)의 식구는 1년 전에 비해 10여 명 이상 늘어났다. 그리고 직원들 모두 활기찼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먼저,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제 예상이 틀렸습니다. 인정합니다. 바이프로스트는 계획대로 개발이 끝났지만, 생각처럼 블록체인 댑 생태계가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작년 10월에는 이더리움 개발자 컨퍼런스 '데브콘(Devcon)'에서 메타디움, 이더리움, 에이더리움(Athereum), 클레이튼, 리브라 등을 스마트계약으로 연결하는 기술 시연도 진행했습니다.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다들 이제 퍼블릭 블록체인을 지원할 수 있는 인프라(바이프로스트)가 있으니, 댑만 있으면 블록체인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습니다."

어쩌면 최악의 상황이었을 테다. 2년간 개발한 프로젝트가 물거품이 될 상황이니 말이다. 다시 물었다. 근데 왜 이렇게 분위기가 좋은 거죠? 

"블록체인에 대해서 원점부터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바이프로스트는 인프라입니다. 고속도로 같은 거죠. 우리는 고속도로를 만들면, 자동차가 많이 다닐 거라고 단순히 생각했어요. 근데, 자동차 회사가 망해서 사라지더라고요. 자동차 회사가 없는데 차가 어떻게 다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직접 자동차도 만들어 보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질주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댑이 '바이파이(Bifi)' 입니다."

바이프로스트를 포기할 수 없었던 박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 한참을 고민하다 직접 댑을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바이프로스트에 따르면, 바이파이는 탈중앙금융(Defi) 서비스다. 이더리움 기반 토큰(ERC20)인 컴파운드(COMP)만을 취급하는 컴파운드와 달리, 바이파이는 다양한 블록체인 플랫폼을 연결할 수 있는 바이프로스트를 기반으로 개발 중인만큼 '비트코인-이더리움', '비트코인-이오스', '이더리움-이오스' 등 다양한 이종 블록체인 암호화폐까지도 스마트계약으로 연결해 디파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기본 구조는 개발 완료 단계에 있으며, 올 하반기 정식 서비스를 공개할 계획이다.

"블록체인을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분야는 금융입니다. 스마트계약을 이용하면, 사람의 개입없이도 정확한 자금 처리가 가능하죠. 근데 이 정도 수준은 이미 메이커다오나 컴파운드 등이 선점하고 있습니다. 우린 이들과 달리 바이프로스트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양한 암호화폐를 중간 과정 없이도 스마트계약만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바이파이로 바이프로스트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보여줄 겁니다."

바이프로스트는 여전히 이렇게 희망을 붙들고 이야기하는데, 많은 기업이 '탈블'한 이유는 뭘까.

"현재의 블록체인 산업은 2000년대 초반의 IT버블(닷컴버블)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IT버블이 꺼지기 전에는 눈감고 아무 IT 주식을 사더라도 다 상한가를 기록했어요. 암호화폐도 마찬가지였죠. 블록체인 프로젝트팀들이 백서만 내고, ICO를 하면 암호화폐가 불티나게 팔렸고, 가격도 급등하더군요. 그러다 IT버블이 사라지면서 수많은 기업들이 사라졌어요. 안타깝지만, 블록체인 쪽은 아직 거품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올해 더 많은 블록체인 관련 기업이 사라질 거에요. 기술 개발 없이 달콤한 열매만 먹다 보면, 결국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할 수밖에 없는 거죠."

박 대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IT버블 시대를 지나오면서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 등이 살아남고 유니콘 기업이 된 것처럼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블록체인에 대한 관점을 바꾸면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는 결론이다.

"처음에는 블록체인이 소프트웨어(SW)라고 생각했어요. 피처폰(Feature phone) 시절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들어간 스마트폰이 탄생해 세상을 바꾼 것처럼 블록체인도 그럴 줄 알았죠. 근데, 아니더라고요. 블록체인은 철저히 하드웨어(HW), 인프라로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핵심 저변 기술로 세상을 천천히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블록체인이 활용돼야 하죠. 그러다 보면 블록체인 업계에서도 유니콘 기업이 탄생할 겁니다."

압구정동으로 옮긴 파이랩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 출처=파이랩
압구정동으로 옮긴 파이랩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 출처=파이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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