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비트코인이 필요해서 구해야 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대개는 국내 업비트, 빗썸 같은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해 원화를 주고 구입하려 할 것이다. 다소 진입 장벽이 있는 ‘채굴’을 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길 모두 왠지 낯설다. 만약 카카오톡에 연동된 국내 대표적 간편결제 서비스 카카오페이에서 비트코인을 살 수 있다면 어떨까? 하루에도 여러 차례 들여다보는 ‘카톡’인 만큼 비트코인과 암호화폐의 구매 접근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한국에선 가정적인 상황이지만 미국·유럽에선 현실이 된 지 오래다. 국외 주요 간편결제 서비스들은 몇해 전부터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주식처럼 구매할 수 있는 기능을 탑재했다.

잭 도시 트위터 공동창업자가 창업한 미국 핀테크기업 스퀘어의 간편결제 서비스 캐시앱이 대표적인 예다. 캐시앱은 미국 간편결제 시장에서 페이팔의 벤모를 바짝 뒤쫓고 있다. 캐시앱은 2018년 미국 뉴욕의 암호화폐 사업 면허인 ‘비트라이선스'를 얻어 ‘비트코인 사고팔기' 기능을 추가했다. 암호화폐 종류는 많지만 캐시앱에선 비트코인만 다루며, 은행계좌나 신용카드로 현금을 충전한 뒤 살 수 있다.

스퀘어가 시험 삼아 암호화폐 사업을 시도한 거라고 보면 오산이다. 스퀘어의 비트코인 매출은 경이적이다. 올해 1분기 비트코인 매출은 3억600만달러(약 3668억원) 규모였고, 이는 전년 대비 367% 늘어난 것이었다. 스퀘어는 “처음으로 암호화폐 매출이 법정화폐 매출을 넘어섰다”며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하면서 구매 수요가 늘어난 덕분”이라 했다. 매출이 늘자 스퀘어는 지난 5월 매일, 매주 등 정기적으로 비트코인을 사는 자동매매 기능을 추가했다.

 

‘1위’ 페이팔의 등판

스퀘어의 성공은 1위를 자극했을지 모른다. 세계 3억2500만명이 사용하는 페이팔이 이 흐름에 곧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이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은 최근 <코인데스크>에 페이팔과 벤모가 암호화폐 거래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며, 지갑 기능도 탑재하게 될 예정이라고 확인했다.

페이팔이 암호화폐 매매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댄 슐먼 페이팔 최고경영자가 2015년 7월 나스닥 상장 뒤 직원들과 축하하고 있는 모습. 출처=한겨레 자료
페이팔이 암호화폐 매매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댄 슐먼 페이팔 최고경영자가 2015년 7월 나스닥 상장 뒤 직원들과 축하하고 있는 모습. 출처=한겨레 자료

한 소식통은 “석달 안에 또는 그보다 빨리” 서비스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고, 또다른 소식통은 “페이팔이 복수의 암호화폐 거래소와 공동으로 유동성 공급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곧 현금과 암호화폐의 활발한 쌍방향 환전을 실현할 것이란 뜻이다. 페이팔과 협업할 거래소로는 미국의 코인베이스와 유럽의 비트스탬프가 거론됐다. 현재 코인베이스는 이미 페이팔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지만, 페이팔 계좌로 현금을 출금하는 것만 가능하다.

페이팔과 코인베이스는 별다른 언급을 않고 있지만, 페이팔이 올해 초 ‘블록체인 연구 엔지니어’와 ‘암호학 엔지니어’ 채용 공고를 낸 것도 새삼 주목을 받는다. 블록체인 기술의 잠재적인 적용을 연구하는 직책들이다.

페이팔에서 암호화폐 매매가 실현된다면 암호화폐 대중화는 또다른 전기를 맞게 된다. 지난해 6월 페이스북이 발표한 암호화폐 프로젝트 리브라 이래 가장 큰 주목을 받을 사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여개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페이팔은 전자결제와 국외송금 중심이며, 미국에서만 서비스하는 벤모(이용자 5200만명)는 주로 소액 송금에 사용된다.

'비트코인 제국주의'의 지은이 한중섭씨는 “페이팔의 경쟁사인 캐시앱이 이미 서비스하고 있으니, 페이팔과 벤모에 비트코인 구매 기능이 들어간다는 건 합리적인 추정”이라며 “코인베이스에 가입하지 않고도 이미 사용 중인 벤모에서 비트코인을 바로 살 수 있다면 접근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페이팔과 캐시앱 외에도 영국 핀테크 유니콘 레볼루트도 2017년부터 여러 암호화폐를 판매하고 있다. 미국의 ‘개미 투자자' 집결지라 할 수 있는 투자 프로그램 로빈후드에서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을 살 수 있다.

 

암호화폐 대중화, 매매 다음은 결제

전문가들은 암호화폐 대중화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매매 다음으로는 간편결제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 황현철 홍익대 교수(경영학)는 “지금은 비트코인을 주로 투자수단으로 보지만 간편결제 앱에 들어가면 지급결제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도 생긴다”고 했다. 향후 비트코인 가격 변동성이 줄어들고 전송 속도가 빨라진다면 식당과 커피숍에서 페이팔, 벤모, 캐시앱 등으로 결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제기업이 암호화폐를 도입하기 전에 이미 암호화폐 간편결제를 준비하는 스타벅스 같은 기업도 있다. 미국의 비트코인 선물거래소 백트는 지난 3월 일부 스타벅스 앱 이용자를 대상으로 결제앱 백트 캐시를 시범 운영한다고 밝혔다. 스타벅스는 이미 2018년 백트에 투자하면서 디지털 자산의 확산을 도모하겠다고 선언했다. 암호화폐로 스타벅스 커피를 결제하는 미래는, 커피숍을 넘어선 금융 플랫폼으로서의 스타벅스를 상징한다. 미국 스타벅스 앱 이용자들의 선불충전금을 합치면 중소은행 수준에 이른다.

휴대전화 결제기업 다날이 만든 암호화폐 결제서비스 페이코인은 세븐일레븐, 씨유 편의점, 도미노피자 등에서 하루에 4천~5천건의 거래가 이뤄진다. 출처=유튜브
휴대전화 결제기업 다날이 만든 암호화폐 결제서비스 페이코인은 세븐일레븐, 씨유 편의점, 도미노피자 등에서 하루에 4천~5천건의 거래가 이뤄진다. 출처=유튜브

국내 상황은 어떨까? 카카오페이 같은 간편결제, 토스 같은 소액송금 서비스에 암호화폐 관련 서비스가 들어갈 수 있을까?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와 금융기관의 입장이 바뀌기 전까지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신용카드사는 암호화폐 거래소에 가맹점 승인을 내주지 않는다. 카드사도 금융당국이 암호화폐를 꺼리는 걸 알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암호화폐를 통한 자금세탁 리스크도 발목을 잡는다. 이 관계자는 “전자금융업자도 자금세탁 방지 의무가 있으니 암호화폐를 다루기는 쉽지 않다”며 “간편결제 앱이 암호화폐 기능을 넣으면 (규제당국의 감시를 받게 될) 가상자산사업자로 구분돼 추가로 준비할 것들이 있다. 아직 시장성이 충분히 담보되지 않았는데 굳이 확장해야 하는지는 판단해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다만, 이미 국내에도 다날의 페이코인처럼 암호화폐로 실생활에서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 지난 1일 기준 페이코인 앱 가입자는 45만명이며 세븐일레븐, 씨유(CU) 편의점, 도미노피자 등에서 하루에 4천~5천건의 거래가 이뤄진다. 또한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에는 암호화폐 지갑 기능이 탑재돼 있으며(S10 이후 모델), ‘삼성페이’라는 대중성 높은 간편결제 서비스를 갖추고 있다. 당장은 가정일 뿐이지만, 만약 두 서비스가 연동된다면 순식간에 보편적인 암호화폐 결제 네트워크가 실현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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