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개발 중인 오지스 팀원들. 출처=오지스
열심히 개발 중인 오지스 팀원들. 출처=오지스

"블록체인이 살아남으려면, 일반인들은 자신들이 블록체인을 쓰는 줄 몰라야 해요. 오지스가 존재하는 이유도 그겁니다. 우리를 알지 못해도, 우리의 기술을 이용하는 그때가 블록체인의 전성기일 거예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블록체인 스타트업 인터뷰하러 온 사람에게, 보자마자 사람들이 블록체인을 몰라야 한다? 지난 6일 강남역 인근 오지스 사무실에서 만난 박태규 대표는 자신들의 존재가 '비밀'로 남아야 블록체인 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사실 저희가 인터체인인 오르빗체인을 기획하고 만들 당시만 해도, 이걸 만들면 댑(Dapp)이나 디파이(Defi) 서비스가 넘쳐날 줄 알았어요. 앱(App)처럼 누구나 댑을 이용하고, 암호화폐를 스테이킹(staking)하거나 빌릴 줄 알았죠. 현실은 그게 아니었어요. 예상과 달리 댑도 없고, 서비스도 없고, 이용자도 없더군요."

산업의 미래와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묻어난 작년 하반기 박태규 대표와 인터뷰는 꽤 의미있는 기사로 기억에 남아있다. 당시 열과 성을 다해 자체 개발한 오르빗체인을 설명하던 모습이 아직 기억에 선한데, 대체 왜 그러시나요?

"블록체인의 존재 의미가 생기려면 사용자가 있어야죠. 말 그대로 블록체인 생태계가 만들어져야죠. 근데 왜 늘어나지 않을까, 고민했습니다. 일반 사용자들이 블록체인이 뭔지, 인터체인이 뭔지 몰라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죠. 그래서 그 부분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박 대표가 "블록체인이 뭔지, 인터체인이 뭔지 몰라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라고 말할 때 그가 떠올린 것은 카카오의 블록체인 기술 계열사 그라운드X가 만든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Klaytn)이다. 클레이튼의 암호화폐 지갑 클립은 지난달 3일 카카오톡에 정식으로 탑재됐다. 박 대표 설명처럼 클립에서는 어려운 지갑 주소 등 블록체인 개념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카카오톡을 쓰듯이, 카카오페이를 쓰듯이 클레이튼의 암호화폐 클레이(Klay)를 송금하거나 다양한 블록체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오지스는 클립 출시 이전부터 클레이튼 생태계 파트너로 합류했고, 오르빗체인을 이용한 토큰 스왑 서비스를 만들었다. ERC20 기반의 토큰을 클레이튼 기반 KCT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터체인 기술로 이더리움 기반 댑을 클레이튼에서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오지스에 따르면, 오르빗체인을 통해 지금까지 약 9000만개 이상의 토큰이 클레이로 전환됐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그라운드X를 설득했죠. 후발주자인 클레이튼이 단독으로 생태계를 구축하는 건 쉽지 않으니, 기존의 댑을 인터체인 기술로 끌어오면 개발사나 사용자가 블록체인에 접근하기 쉬울 거라고 했어요.
다른 한편으론, 클레이튼 스코프(Klaytnscope) 같은 고급 사용자를 위한 기능도 개발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클레이튼 버전의 이더스캔이죠. 클레이튼의 거래 내역을 누구나 볼 수 있는 도구입니다. 블록체인의 기본 기능이라고 할 수 있죠."

오지스가 개발한 클레이튼 버전 이더스캔인 '클레이튼 스코프' 실행 모습. 출처=클레이튼 스코프 갈무리
오지스가 개발한 클레이튼 버전 이더스캔인 '클레이튼 스코프' 실행 모습. 출처=클레이튼 스코프 갈무리

클레이튼 스코프는 최근 코스모체인의 발행량 조작 사건 덕에 유명세를 탔다. 클레이튼 댑 '코스미(Cosmee)'를 운영하는 코스모체인이 자체 토큰 '코즘(COSM)'을 임의로 발행한 사실이 스코프에서 확인돼 논란이 발생한 것이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한순간에 블록체인의 신뢰를 무너지게 만들 수 있거든요. 반면, 블록체인이라서 다행스러운 부분도 있죠. 블록체인이 아니었다면, 스코프가 없었다면 오히려 이런 사건은 공개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라운드X와 함께 스코프 기능을 좀 더 고도화시킬 계획입니다."

박 대표는 고급 사용자와 일반 사용자 모두를 위한 한 가지 더 중요한 기능이 있다며, 키르(KIR, Klaytn Improvement Reserve)를 설명했다. EOS의 투표 시스템과 비슷한 기능으로, 클레이 보유자가 클레이튼 노드에 투표하면, 전체 클레이 총 수량의 비율대로 보상이 지급된다. 지분증명(POS)의 스테이킹 보상과 비슷하다.

"클레이튼도 결국 블록체인인 탓에 51% 공격에 취약합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많은 클레이가 믿을만한 노드에 맡겨져야 하죠. 물론 일반 사용자는 이런 부분까지 모르셔도 됩니다. 다만, 노드에 클레이로 투표를 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 아시면 돼요."

오지스에 따르면, 이달 안에 일반 사용자를 대상으로 투표 시스템이 동작할 예정이다. 투표에 따른 보상 수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클레이튼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핵심 노드인 거버넌스 카운슬(GC)은 총 29개로 이뤄져 있다. 이 중 오지스-해시드만 우선 투표에 참여한다.

박태규 오지스 대표. 출처=오지스
박태규 오지스 대표. 출처=오지스

이제 슬슬 아픈 질문을 할 시점이다. 오지스 매출은 좀 어떤가요?

"오르빗체인이 많이 활용되야만 우리의 본격적인 수익도 발생하죠. 그래서 오르빗체인이 연동된 클레이튼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역시 매출은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하지만 다시 아픈 질문을 던진다. 대표님은 업계의 '탈블' 현상을 어떻게 보시나요?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은 현재 가장 유망한 산업 분야죠. 근데 이것들은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니에요. 1950년대에 개념이 등장하고 첫 시도 사례가 나왔죠.  2006년에 딥러닝 기술이 등장하면서 그야말로 열풍이었습니다. 다들 AI를 외쳤죠. 근데 그런 기업들 다 사라졌습니다. 다들 계획 없이 뛰어들었던 거죠. 블록체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더리움이 등장하면서 ICO가 활성화되고 투자금을 모으기 쉬워지니 너도나도 뛰어들었죠. 탈블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수순입니다. 올해가 탈블 현상의 정점을 찍을 것 같습니다. 많은 기업과 사람들이 블록체인을 떠나겠죠."

그럼 오지스에서는 탈블하는 분은 없나요?

"작년이나 올해나 30여 명에서 인원이 늘거나 줄진 않았어요. 2018년 오지스가 설립된 이후로 크립토겨울이 닥쳤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팀원들이 모두 블록체인에 대한 공통의 비전을 공유했기 때문에 아직 탈블 하신 분은 없습니다. 근데 고민이 많아요. 올해 안에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땐 탈블하는 분들을 못잡을 것 같아요."

박 대표는 탈블 열풍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이 결국 살아남으려면 사람들이 "블록체인인지 모르고 사용할 수 있는 시기"가 와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올해 안에 블록체인이 실생활 속에 녹아든 서비스가 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최근에 통신사들이 만든 패스(Pass)라는 앱에 블록체인 기반의 운전면허증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이게 블록체인 기반이라는 건 우리나 아는 내용이지, 사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알 필요가 없거든요. 사용자가 블록체인이라는걸 모르고 서비스를 이용할 때 블록체인의 진가가 나올 겁니다. 지금까지 미래 지향적인 큰 그림만 그렸다면, 이제는 블록체인이라는 걸 몰라도 누구나 블록체인을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1년 전만 해도 국내에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꽤 있었습니다. 크립토겨울이 길어지고 블록체인 산업의 성장이 더뎌지면서, 많은 기업들이 자의반타의반 '탈블'을 선택했습니다. 이긴 자가 살아남는 걸까요, 살아남는 자가 이긴 걸까요. 이런 상황에서도 묵묵히 남아있는 블록체인 스타트업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제보, 보도자료는 contact@coindeskkorea.com
저작권자 © 코인데스크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