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나 낙하산 말고…‘페어 룰’ 고민 끝에 스타트업 차렸다”
[최민영의 혁신 탐구생활]
패스트트랙아시아 박지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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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영 한겨레 기자
최민영 한겨레 기자 2020년 9월23일 17:58
서울 강남구 패스트파이브 강남2호점에서 박지웅 대표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출처=김혜윤/한겨레
서울 강남구 패스트파이브 강남2호점에서 박지웅 대표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출처=김혜윤/한겨레

한달 전 쯤, ‘아들아 너는 창업 전에…’라고 시작하는 ‘창업 21계명’을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접했다. “나이가 만 40살이 넘지 않는지, 카이스X 서울X로 시작하는 졸업장이 있는지, 카카X 네이X로 시작하는 근무 경험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며 시작했던 그 글은 벤처업계에 몸 담고 있는 이들에게 꽤나 공감을 얻었다. 창업 시장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에게 ‘정말 그러냐’고 물어보니 “이 바닥의 불문율 같은 얘기”라며 “창업 시장도 이젠 성숙기에 접어들어서 어떻게 하면 돈을 쉽게 투자를 받을지, 어떤 멤버를 꾸려야 사업에 유리한지 검증이 끝났다. 성공 등식이 성립됐다고 봐야하는 시기”라고 귀띔해줬다.

박지웅(38) 패스트트랙아시아 대표의 과거 인터뷰를 보면서 ‘노력’이나 ‘결핍’, ‘자수성가’와 같은 단어들이 눈에 띄었던 것은 그래서였다. 창업 시장은 시작부터가 노력으로 바꾸기 힘든 학벌이나 배경같은 조건을 갖춰야 출발선에 설 수 있는 영역이 됐다는데, 노력에 비례하는 결과를 내는 방법이 창업이라니. “어릴 적부터 내내 서초동 근처에서” 크게 부족한 점이 없이 살아와 ‘21계명’에 속한다고도 볼 수 있는 그가 막연히 희망만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지난 9일 서울 강남역 근처 사무실에서 만난 박 대표는 많은 것을 손에 쥐고 부족함 없이 커온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원하는 바를 늘 쉽게 얻은 건 아니었다고 했다. “아주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이라 남들이 듣기엔 배부른 소리일 것”이라고 말했지만, ‘잘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크고 작은 좌절은 그에게는 작지 않은 상처로 남은듯 보였다. 열등감일수도 있는 그 상처는 “내가 이길 수 있는 판”을 끊임없이 찾게 하는 원동력이 됐고, 그는 그 힘으로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열고 있었다.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패스트파이브 강남2호점에서 박지웅 대표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기 전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김혜윤/한겨레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패스트파이브 강남2호점에서 박지웅 대표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기 전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김혜윤/한겨레

천재나 낙하산 말고…가능한 공정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은?

박지웅 대표는 의대를 목표로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수능 만점자가 66명이나 나올 정도로 쉬웠던 2000년 11월 “역대급 물 수능” 때 대입을 치르면서 원했던 대학에 못 갔다. 차선으로 선택한 포항공대 산업공학과에서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깨우치는” 과학고 출신 “천재 동기들”을 보면서 “노력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차이가 아니구나” 또 한 번 좌절했다. 연세대에 다니는 친구에게 묻고 물어 얻어냈던 금융 컨설팅사 인턴 시절, 옆 자리 동료는 알고 봤더니 “‘누구 아들’이라면서 위에서 내리 꽂은” 사람이었다. “보다 페어(공정)한 규칙은 뭘까? 고민 끝에 얻은 답이 사업과 투자였습니다. 제3자에게 선택받아 취직하고 승진하기 보단, 시장과 고객에게서 직접 평가 받으면 좀 더 심플하고 페어할 것 같았어요. 경험 없이 바로 사업을 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고 판단해 일단 투자업계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대학 졸업반이었던 2008년, 공대 동기들은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진로인 벤처캐피탈 심사역이 되겠다고 하면서부터 ‘맨땅에 헤딩’이 시작됐다. “인턴 시절, 벤처캐피탈협회가 만든 수첩 하나를 얻었습니다. 국내 모든 벤처캐피탈 대표의 연락처가 적혀있었죠. 수첩에 있는 모든 투자사 대표 이메일로 이력서와 투자계획을 매달 반복해서 보내며 면접의 문을 두드렸어요. 물론 대부분 답이 없었죠. 그러다 6개월만에 한 투자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당시에 새로 문을 연 신생 벤처투자사 스톤브릿지캐피탈이었다. “면접을 보고 그 회사의 유일한 20대로 입사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제 막 시작하는 회사가 인력을 꾸리는 과정에서 ‘이런 사람도 한 명쯤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뽑았다는 얘길 들었다”고 했다. 없던 자리를 만들어서 28살에 벤처캐피탈리스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막상 현업에 가보니 벤처캐피탈은 “아무도 20대와 놀아주지 않는 곳”이었다. “대기업에 오래 근무하다 퇴사한 40대 중반이 막내였고, 투자도 (당시 한국 증시에서 시가총액 10위권 기업이었던)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의 협력회사를 중심으로 이뤄졌어요. 성장성 있는 작은 회사는 곧 대기업에 납품하는 하청업체였죠. 투자 정보도 이전의 대기업 근무 경험을 살려서 얻는 분위기였어요. 미국의 자료를 보며 공부하고 입사했는데, 한국의 벤처캐피탈은 제가 예상했던 것과 완전 딴판이었죠.”

“내가 ‘아저씨’들보다 제조업 투자를 잘 할 것 같진 않은데…” 생각하던 때 박 대표의 눈에 들어온 세계는 모바일이었다. 그가 심사역이 됐던 2008년 이후, 한국은 아이폰 3지에스(GS)가 들어오고 페이스북 이용자가 급격히 늘었다.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많이 바뀔 것 같았어요. 매일 소재 부품 이야기를 하는 회사 선배들은 스마트폰을 안 쓰고 페이스북도 몰랐는데, 상대적으로 저는 이런 서비스를 만드는 2030 창업자들에게 접근성도 좋을 것 같았죠. 모바일 기반 사업을 하는 회사를 만나자고 마음을 먹고 공부를 시작했어요. 누구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고 네트워크도 없어서 닥치는대로 보고서를 읽었습니다. 앱스토어에서 카테고리별로 1~10등 앱을 만드는 회사도 모두 찾아서 만났습니다. 앱스토어의 카테고리가 우리의 라이프스타일 전체를 대변한다고 봤기 때문이에요. 여기서 업종별 1~2등을 잘 가려서 투자해놓는다면 다수가 망하더라도 한두개는 커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박 대표는 2012년까지 4년 동안 벤처투자자로 일하면서 스톤브릿지캐피탈이 1위 배달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과 인기 피시(PC)게임 배틀그라운드를 만든 게임 개발사 ‘크래프톤’, 소셜커머스 ‘티몬’ 등 30여개 회사에 투자를 결정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지금은 유니콘으로 성장한 이들 회사를 초기에 알아본 덕분에 ‘실력 좋은 투자자’로 업계에서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투자 성공 사례가 이어지자, 위험부담 때문에 미뤄두었던 사업을 생각하게 됐다. “인수합병 등 투자 이익을 실현하는 과정을 여러차례 거치면서, 이 모든 과정에서 주연은 결국 창업팀이고 투자자는 조연일 뿐이구나”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는 사업 과정에서 돈이 필요한 시점에 돈을 넣는 결정을 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한게 없더라고요. 결과를 만들어 낸 건 결국 임직원들이었습니다. 동시에 ‘내가 그 회사에 투자했다는 것은 결국 나도 그 회사 사업 계획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구나, 이게 계속 맞아 떨어지면 나도 한 번쯤 주연을 해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죠.”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패스트파이브 강남2호점에서 이용객들이 로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출처=김혜윤/한겨레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패스트파이브 강남2호점에서 이용객들이 로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출처=김혜윤/한겨레

“컴퍼니빌더 패스트트랙아시아에서는 경력보다 노력이 우선입니다”

투자자에 이어 두 번째 직업으로 사업가를 택하면서 박 대표는 2012년 ‘컴퍼니 빌더’를 표방하는 패스트트랙아시아를 세웠다. 티몬에 투자하면서 인연 맺었던 티몬 창업자 신현성 대표와 티몬의 유일한 엔젤투자자였던 노정석 리얼리티리플렉션 최고전략책임자(CSO)와 공동창업한 회사다. 컴퍼니 빌더는 단순히 스타트업에 돈을 투자하는 것을 넘어,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고 사업모델 구상하는 과정도 함께 거치며 투자자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업을 관리하고 키우는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는 패스트트랙아시아가 처음으로 시작한 개념이다.

이같은 형태로 사업을 한 이유를 묻자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아서”였다고 그는 답했다. “한 회사가 하나의 서비스를 하면 한 가지 일로만 몇 년을 가야 합니다. 저는 해보고 싶은 사업이 많았는데 어떤 것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려면 회사가 회사를 만드는 형태여야겠다고 어렴풋하게 생각했습니다.” 마침 공동 창업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던 터라 ‘회사 만드는 회사’를 세워보자는 방향에는 다들 쉽게 동의했다고 한다. “막연히 아이디어를 키워가던 중에 해외에서는 이런 형태로 사업을 하는 회사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스타트업 스튜디오, 스타트업 팩토리 라는 이름으로 불리더군요. 그 중에서 외신에서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이 ‘컴퍼니 빌더’여서 그렇게 쓰기 시작했습니다.”

패스트트랙아시아가 만든 10개의 회사는 대부분 ‘의식주’와 관련된 서비스를 한다. “의식주는 사람들의 소비 지출이 가장 많은 영역입니다. 한국은 여기에 교육도 포함된다는 독특한 지점이 있죠. 시장 규모가 큰 의식주와 교육 분야에서 혁신을 만들면 임팩트가 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대로 된 혁신 플레이어가 없기도 했고요. 잘 하면 승산 있겠다 싶어서 하나씩 만들었습니다.” 패스트트랙아시아는 현재 공유오피스 ‘패스트파이브’, 성인 직업교육 학원 ‘패스트캠퍼스’, 벤처투자사 ‘패스트벤처스’, ‘패스트인베스트먼트’ 등 4개 자회사를 갖고 있다. 식품 커머스 ‘헬로네이처’, 배달앱 ‘푸드플라이’, 남성 정장 ‘스트라입스’, 의료서비스 플랫폼 ‘굿닥’ 등 4개 회사는 이미 매각했고, ‘퀸시’(쇼핑몰), ‘소울부스터’(여성 속옷)는 사업을 접었다.

서울 강남구 패스트파이브 강남2호점에서 박지웅 대표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출처=김혜윤/한겨레
서울 강남구 패스트파이브 강남2호점에서 박지웅 대표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출처=김혜윤/한겨레

직접 회사를 운영하면서 그는 노력하는 구성원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는 방법도 고민했다. 10개 회사 중 패스트캠퍼스에서만 유독 두드러지는 특징이지만, 이 회사에 있는 ‘2030 본부장’들은 그런 생각 속에서 태어났다. 박 대표는 “시설투자와 자본투자가 많이 들어가는 부동산 사업인 패스트파이브에선 아니지만, 콘텐츠 사업인 패스트캠퍼스에는 외부에서 영입한 인사가 아닌 수습으로 입사해 내부 승진으로 본부장 등 리더그룹에 속하게 된 젊은 책임자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직무교육, 랭귀지, 취업교육, 콜로소(자영업자 교육) 등 4개 사업본부는 본부장 전원이, 사업본부 아래의 팀장은 15명 중 14명이 패스트캠퍼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리더 그룹이 된 이들이라고 한다. 나이대는 모두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다. “2014년 패스트캠퍼스 출범 즈음에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전문 교육 업체가 거의 전무한 상황이었다”며 “외부 전문가 영입으로 얻을 수 있는 장점보다는 실제로 사업을 부딪쳐가며 습득하는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젊은 직원에게도 큰 권한을 주는 방식으로 인력을 운용을 하게 된데에는 박 대표의 심사역 시절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그가 입사할 당시 스톤브릿지캐피탈은 이제 막 생긴 회사라 “굴려야 할 펀드는 많은데 사람이 부족한 회사”였다. “사람이 부족하니 결재 라인도 단순해서 투자하고 싶은 곳이 생기면 준비를 거쳐서 본부장에게 바로 보고하는 식이었어요. 그런 환경에서 나이나 연차에 걸맞지 않게 주도적으로 일해보는 경험을 했고 성과도 내봤죠. 배경이나 네트워크가 없어도 노력하면 된다는 경험을 한 것입니다.”

박 대표는 “모든 직원은 결국 제로베이스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때문에 나이가 젊거나 경력이 없는 직원에게 기회를 주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고 패스트트랙아시아의 기본적인 인적자원 관리 방식을 설명했다. “다른 회사에서 경력을 쌓았다고 하더라도 패스트캠퍼스, 패스트파이브의 상품과 정확히 동일한 것을 판 것은 아니잖아요. 다 처음 해보는 일일테니 어린 직원이라고 못할 것이 없죠. 직원의 경력과 성과가 꼭 비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강력히 합니다. 주어진 일을 잘 수행하면 빠르게 승진하고 더 많은 역할을 부여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과보단 과정입니다. 결과적으론 손실이 났더라도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을 거쳤다면 크게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2030 본부장’들도 다들 일선에서 일할 때 몇억씩 손실을 냈던 사람들입니다.”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패스트파이브 강남2호점에서 이용객들이 로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출처=김혜윤/한겨레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패스트파이브 강남2호점에서 이용객들이 로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출처=김혜윤/한겨레

패스트파이브 상장이라는 당면 과제, 성공할까?

박 대표가 현재 운영하는 사업 중 가장 큰 주목을 받는 일은 2015년 시작한 공유 오피스 ‘패스트파이브’다. 그동안 총 790억원의 투자를 받았고, 지난 7월 상장 신청을 해 현재 절차가 진행 중이다. 연내 상장이 목표다. 그런데 상장 준비를 시작했던 지난해 하반기, 패스트파이브가 벤치마킹한 사업인 위워크가 무너지면서 ‘패스트파이브도 비슷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시선이 있었다. 2018년과 2019년, 각각 210억, 425억원 매출을 올렸지만 매년 50억원 안팎의 적자를 낸 점도 지속가능한 사업모델이 맞냐는 의문을 더했다. 이에 대해서 박 대표는 “위워크는 사업 모델의 문제라기 보단 창업자 개인의 비위 때문에 문제가 생긴 점이 더 크다. 여전히 적자를 내고 있긴 하지만 지금처럼 성장하는 추세라면 내년에는 흑자전환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답했다.

‘회사 만드는 회사’는 앞으로 어떤 회사를 만들 계획이냐고 묻자 “당분간은 패스트파이브와 패스트캠퍼스에 집중할 계획이라 새로운 일을 시작할 것 같진 않고, 지금 운영하는 회사를 ‘결과보다 과정에 더 치열하게’ 만드는 일에 힘을 쏟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조직 문화는 여전히 달성하는 중입니다. 이뤄낸게 아니라 지향점에 가깝습니다. 지난 5∼6년 동안 꾸준히 시도하면서 이제 좀 자리를 잡았지만 앞으로 이 문화를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려울 것 같아요. 결과보다 과정에 치열하고,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구성원 한명 한명에게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충분히 어려운 숙제라고 생각해, 이것 말고는 앞으로 새로운 지향점이 있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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