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뜬금없이 '탈정치' 선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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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근
송인근 2020년 10월20일 06:00
출처=코인베이스 제공
출처=코인베이스 제공

2020년 미국은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처음부터 일정이 정해져 있던 11월 선거 때문만이 아니다. 1917년의 팬데믹(스페인 독감), 1929년의 경제 대공황, 1968년의 인종차별에 대한 시위가 2020년에 한꺼번에 재현됐다. 여기에 전례를 찾을 수 없는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까지 겹치면서 미국 서부는 역대 최악의 산불을, 남동부는 예년보다 훨씬 잦은 강력한 허리케인에 신음하고 있다.

정치를 단순히 정부나 의회를 구성하거나 국가를 운영하는 일로 국한하지 않고 ‘가치나 자원의 권위적인 배분’으로 바라본다면, 다양한 위기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자원의 배분에 모두가 예민해진 올해야말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치와 거리를 두기 어렵다. “맨날 쌈박질만 해대는 정치판 지긋지긋하다”며, 투표할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그렇다.

가족이나 친구가 코로나19에 걸렸는데 의료보험이 제대로 없어서 치료도 받지 못한다면 당연히 좌절할 수밖에 없다. 종업원으로 일하던 식당이 문을 닫아 실직 상태가 됐는데, 한동안 지급되던 일주일에 600달러 실업 급여가 7월 말을 끝으로 나오지 않는다. 마스크도 안 쓰고 오는 손님들이 두려워 식당이 문을 열어도 다시 일하러 나가기 두려운 마당에, “일주일에 600달러는 사람들의 노동 의욕을 꺾을 수 있다. 돈에 맛 들이기 전에 지급액을 줄여야 한다.”라는 정치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분노하지 않기 어렵다.

여기에 피부색만으로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을 받는 데 이골이 난 사람들이 거리에 나서는 행위도, 학교를 다시 열어 학생들이 교실에서 수업을 듣게 하자는 주장도, 반대로 바이러스를 통제하기 전까지 개학은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모두 정치적 행위다.

코인베이스 CEO 브라이언 암스트롱. 출처=코인데스크
코인베이스 CEO 브라이언 암스트롱. 출처=코인데스크

그런데 이렇게 한없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2020년에 ‘탈정치’를 회사의 사명으로 새삼 강조한 CEO가 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이용자를 보유한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브라이언 암스트롱이다. 올여름 특히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M)’ 시위에 회사 차원에서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는 문제를 두고 직원들과 다른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진 암스트롱 CEO는 지난달 28일 장문의 블로그 글을 썼다.

“코인베이스는 암호화폐를 통해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더 많은 경제적 자유를 가져다주는 데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였고, 탈정치를 사명으로 강조한 방침이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은 퇴사해도 좋다며 퇴직금도 제안했다.

곧바로 이 발표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개인 자격으로도, 또 자신이 대표로 있는 회사 차원에서도 상당히 노골적인 정치적인 행보를 이어온 트위터와 스퀘어의 CEO 잭 도시가 직격탄을 날렸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하는 것 자체가 이미 정치적인 행위인데 탈정치를 부르짖는 건 어불성설이란 것이다.

도시는 “비트코인과 암호화폐는 그 자체로 배타적이고 중앙의 집중된 권력에 기대는 금융 시스템의 대안을 제시하며 포용적 금융을 향해 나아가는 정치적 행위인데, 그런 암호화폐를 거래하는 플랫폼을 운영하면서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사회적인 이슈에 눈을 감겠다고 선언하는 건 너무나 무책임한 행위”라고 일갈했다. 암스트롱의 발표 이후 규제준수 총괄(CCO), 글로벌 마케팅 부문 책임자를 비롯해 코인베이스 전체 직원의 5%에 해당하는 최소 60명이 사표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컨센서스 행사에 참가한 잭 도시. 출처=코인데스크 아카이브
2018년 컨센서스 행사에 참가한 잭 도시. 출처=코인데스크 아카이브

정치를 피해갈 수 없는 계절에 뜬금없이 ‘탈정치’를 주장하고 나선 코인베이스의 발표는 다분히 정치적으로 보인다. 탈중앙화를 빼고 암호화폐를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2020년엔 우리에게 펼쳐진 상황에 대처하는 것 자체가 특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하는 것도 당연히 그렇다.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나 댓글에서 ‘정치’는 대개 부정적인 것, 기피해야 하는 대상으로 그려진다. 잘 해봤자 필요악 정도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정치적 무관심을 공정한 것으로 그리며, 나아가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일은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고착화하는 데 결과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어서 문제다.

정치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정치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또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선거를 앞둔 미국의 2020년은 이 뻔한 명제를 다시 한번 증명하며 마무리될 것이다. 코인베이스의 사명대로 “전 세계인들에게 더 많은 경제적 자유를 안겨주는 데 이바지하려면” 장사도, 마케팅도, 경영도, 고객 관리도 잘해야 하지만, 정치도 건너뛸 수 없다.

정부, 규제 당국과 쉼 없는 줄다리기를 해야 하고, 경제적 자유를 안겨주려는 고객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을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도 수없이 생겨날 거다. 모두가 ‘네’라고 할 때 홀로 ‘아니오’를 외친 암스트롱의 용기가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암스트롱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으려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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