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AML/KYC 규모를 줄여야 한다
마이클 케이시 주간 연재 칼럼 ‘돈을 다시 생각하다’ 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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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J Casey
Michael J Casey 2020년 10월26일 14:47
출처=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페이스북
출처=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페이스북

케냐 나이로비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트코인 선구자이자 AZA 그룹(AZA Group) CEO인 엘리자베스 로시엘로는 지난 2015년 열렸던 한 블록체인 행사에서 미국 정부가 소말리아를 ‘고위험 국가’로 지정한 후 해당국으로의 해외 송금을 금지한 조치가 소말리아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묻는 청중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후로 정부가 은행들을 상대로 자금세탁방지(AML)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고객신원확인(KYC)을 요구했지만, 이런 요구가 대부분 역효과만 낳는 경우들을 많이 봐왔다.

서구 정부들은 이런 조치를 통해 자신들이 알샤밥 같은 동아프리카 지역 테러 조직들의 자금줄을 끊어 놓았다고 생각했지만, 테러 조직들은 여전히 자금을 조달하고 있고, 오히려 현지 주민들이 당장 먹을거리를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테러 조직들이 활발하게 조직원들을 모집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버렸다.

이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지난 25일이 은행비밀법(BSA)이 제정된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은행비밀법은 은행의 고객 신원확인과 거래 감시를 의무화한 미국의 획기적인 법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9.11테러나 2008년 금융위기 같은 사건 때문에 은행비밀법의 규제 강도는 더욱 세지고 적용 범위도 확대됐다. 또 이 법으로 인해서 비은행 결제서비스 제공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규정들도 생겨났으며, 미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국(FinCEN, 핀센)처럼 강력한 권한을 지닌 기관들이 탄생하게 됐다. 전 세계 거의 모든 금융기관을 감시할 수 있는 국제 감시시스템의 모범사례를 만든 토대도 결국, 이 은행비밀법이었다.

출처=언스플래시
출처=언스플래시

안타깝게도 금융 감시가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는 오늘날 거의 없다. 전 NSA(미국 국가안보국)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가 사람들의 온라인 활동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 덕분에 NSA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많이 제고됐다. 하지만 BSA에 대해선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금융 소외

사람들은 프라이버시와 나쁜 이들로부터 우리 사회를 보호하는 것 사이에 하나를 얻으면 나머지 하나는 잃을 수밖에 없는 트레이드오프(trade-off) 관계가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럼에도 이 시스템이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은 너무나 크다.

먼저 이런 시스템은 금융 소외를 부추긴다. 2017년 세계은행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금융서비스에서 소외된 성인들의 수가 17억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신원 시스템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주로 저개발국에 사는 사람들은 은행계좌를 개설할 수가 없다.

또 ‘위험회피(derisking, 디리스킹)’란 트렌드를 만들어 낸다. 디리스킹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생겨난 트렌드로, 당시 새로 만들어진 규정으로 인해 은행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증가하면서, 리스크로 인해 수익성이 너무 떨어지는 국가들과는 아예 거래를 피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2012년,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자금세탁을 도운 혐의로 19억달러(2조1441억원) 벌금형에 처한 HSBC 사례를 교훈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발전된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을 포함해 많은 소규모 경제국들 내 은행들이 미국 환거래 은행들과의 중요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점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이 비용은 고스란히 고객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처럼 자금세탁방지와 고객신원확인 모델은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고, 글로벌 경제에서 불평등을 야기한다.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올 한해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보낸 자금의 총 규모가 19.7%나 줄어 4450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 비용 감소의 여파는 더 뼈아프게 다가올 것이라고 세계은행은 밝혔다.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 송금되는 자금은 오래전부터 빈곤을 감소시키는 주요 요소로 인식돼 왔다. 즉 자금세탁방지와 고객신원확인 규정이 번영을 가로막는 직접적인 장애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규제 당국은 금융 범죄가 시급하고 매우 큰 문제라며 반박한다. 일례로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매년 범죄자들이 세탁하는 자금 규모가 8천억~2조달러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하지만 지난달 유출된 핀센 내부 문건에 따르면, 거대 은행들은 거래 내역이 의심스럽다며 수조달러 규모의 거래를 당국에 보고했지만, 해당 고객들과의 거래를 중단하지는 않았다.

자금세탁방지와 고객신원확인 관련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은 거대 은행들과 웨스턴 유니온(Western Union) 같은 유명 해외 송금결제 기업들이 디지털 스타트업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높은 진입장벽을 즐기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스타트업 입장에서 규제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사업 초기에 투입하는 비용이 사실상 회사의 존립을 위험하게 하는 수준이다.

즉, 자금세탁방지와 고객신원확인 규정이라고 하는 이 허점투성이 법은 기존 기업들의 이익만을 보호하고 있다. 교묘한 거대 범죄조직들이 자금을 이리저리 옮기는 건 거의 막지 못한 채, 양심적인 영세 스타트업들의 시장 참여는 막고 있다. 동시에 역사가 오래된 금융 공룡들은 시장 경쟁에서 보호받는다.

 

비트코인 사용

이런 모델을 한번 바꿔보자는 생각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비트코인이었다. 신뢰 문제를 해결하고, 현금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 디지털화폐를 만듦으로써 모르는 이들 사이에서 개인간(P2P) 온라인 결제가 가능해졌다. 이제는 신원을 증명할 필요도, 중개자도 필요가 없어졌다.

비트코인의 이런 시스템은 금융 중개업체들에 감시자 역할을 맡겨놓고, 그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사법 당국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이에 규제기관들은 비트코인을 이용해 범죄 자금을 운용하는 범죄자들에 맞서, (사람들이 암호화폐의 입출금을 위해 사용하는 법정화폐 기반 금융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면서 수탁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앙화된 거래소들을 타깃으로 삼기 시작했다.

또 금융업계 전체를 감시 시스템 하에 확실히 붙잡아둘 수 있는 규정들을 만들었다. 다자간 기구인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새롭게 내놓은 자금이동규칙(travel rule, 트래블룰)은 이런 접근법을 전 세계적으로 확대 적용한 사례다.

한편 미국 정부는 암호화폐 소프트웨어 제공업체들을 대상으로도 은행비밀법을 적용할 것임을 시사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로 지난주 핀센은 코인 거래추적을 어렵게 만드는 믹싱 서비스를 제공하는 헬릭스(Helix)에 6천만달러라는 엄청난 규모의 벌금을 부과했다. 지금은 폐쇄된 다크넷 시장인 알파베이(AlphaBay)가 헬릭스의 개인정보 보호 기능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우리는 글로벌 시스템이 미국 정부에 얼마나 과도한 권력을 가졌는지 잘 알 수 있다. 달러가 준비통화로서 지위가 있다는 건 전 세계 은행들이 반드시 미국 은행들과 환거래 관계를 유지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게 미국 은행들은 세계 금융의 게이트키퍼가 됐고, 사실상 미국 정부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선봉대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암호화 기술이 개인 이용자들과 각국 정부에 미국의 게이트키핑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이번 주 미국의 제재를 피하고자 디지털 루블을 발행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속 가능한 시스템?

기존 시스템은 이미 고장이 났다. 너무 거대하고 광범위해졌다. 엄청난 벌금이 부과되는 상황에서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고객에게 일괄 규정 준수를 요구하는 은행들은 ‘리스크 없는 대가는 없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자금세탁방지 지침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송금 과정에서 최대 1000달러(미국은 3000달러)까지는 신원정보를 요구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출처=셔터스톡
출처=셔터스톡

이제는 시스템의 규모를 줄일 때다. 늘릴 때가 아니다. 암호화폐 규제 전문가 주안 야노스는 이번 주 ‘돈을 다시 생각하다’ 팟캐스트에 출연해 “시스템 최적화와 최상의 결과를 도출하려면 우선 하위 시스템들을 최적화해야 한다는 시스템 설계상의 원칙이 있다. 즉, 약간의 자금세탁은 어느 정도 용인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소말리아에 있는 범죄자가 시스템의 틈을 파고들 수 있다는 리스크 정도는 안고 살아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규제 당국에서 모두에게 개인 신원정보 제공을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고도, 시스템 전반에 걸쳐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도록 좀 더 열린 자세로 암호화 기술을 받아들인다면 좋을 것이다. 지난해 MIT-IBM 왓슨 인공지능 연구소에서 익명성을 띤 비트코인 거래 흐름으로 인해 생긴 시스템 리스크를 밝히는 방법을 연구했는데, 이 연구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현재의 접근법을 계속해서 유지할 경우, 사람들이 치러야 할 비용에 대해 정책 입안자들이 제대로 계산하고 대응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이번 주 팟캐스트의 또 다른 출연자 씨랩스(C-Labs)의 법률 고문 브린리 라이르는 “현재 시스템이 진정 세계 번영을 증진하는 시스템이냐?”며 반문했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자금세탁이란 매우 심각한 문제이며, 탈세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50달러나 100달러 정도의 돈을 송금받아 살아가는 사람들과 오늘날 송금 시장을 봤을 때, 정말 이들이 시스템의 단속 대상이 돼야 하는 것일까? 이게 우리가 가진 자원을 활용하는 최선의 방법인가?”

 

글로벌 통화 전쟁

지난주 비트코인 가격은 1만3000달러를 넘어서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그런데 이번엔 주가 상승 이후 비트코인에도 함께 돈이 몰리는 ‘리스크 온(risk-on)’ 장세가 아닌 실체가 있는 뉴스 덕분에 가격이 올랐다. 바로 페이팔(PayPal)이 앱에서 비트코인을 사고팔 수 있도록 매매 서비스를 출시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럼에도 디지털화폐의 큰 그림은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는 법정화폐의 운명과 결부돼 있다. 이 칼럼에서 이미 다룬 적 있지만, 많은 부분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통화 전쟁의 결과에 달렸다.

그 때문에 나는 가급적 상관관계가 없거나 덜한 방법으로 두 국가 통화의 움직임을 각각 분석해 보기로 했다. 이 말은 중국 위안화가 미국 달러에 영향을 받아 가격이 매겨진다던가, 반대로 달러 가격이 위안화의 영향을 받는 순환적인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대신 여러 종류의 통화를 묶어 이 화폐 바스켓 대비 각 통화 가치(무역가중환율)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했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중앙은행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코인데스크에서 데이터 시각화를 담당하고 있는 하오 슈아이가 제공한 달러 차트다.

출처=하오 슈아이/코인데스크
출처=하오 슈아이/코인데스크

위 자료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의 무역가중 달러 지수(trade-weighted dollar index)다. 이 차트를 통해 우리는 놀라울 건 없지만 의미 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지난 3월 중순, 공포에 빠진 전 세계 투자자들은 일제히 안전자산인 달러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 결과 다른 통화 대비 달러 환율은 짧은 기간 사이 급격히 치솟았다. 하지만 그 시점에 연준은 전례 없는 수준의 통화 확대정책을 시행했고, 달러 환율은 다시 하락했다.

주목할 만한 건 아직도 세계 경제가 코로나19 대유행의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달러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가 낮아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걸까? 아니면 대규모로 돈을 찍어내는 연준의 정책은 앞으로도 유지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세계 경제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것일까? 아직 이 문제의 결론을 내기엔 시기상조다.

다음은 위안화 차트다.

출처=하오 슈아이/코인데스크
출처=하오 슈아이/코인데스크

이 차트는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산하 중국외환거래시스템(CFETS)이 제공한 무역가중 위안화 지수다. 올해 3월에 위안화 지수가 급등한 것을 두고,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는 전 세계가 달러를 원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공포에 빠진 투자자들은 당시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중국의 통화이자 유동성이 낮은 위안화를 대량으로 보유하길 바라지 않았다. 투자자들이 원한 건 오직 달러뿐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다. 인민은행의 개입적인 통화관리 기조 덕분에 지난 수십년간 중국은 공식적으론 고정환율제를 천명하지 않았지만, 실제론 시장에 개입해 달러 대비 환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이른바 ‘더티 페그(dirty peg) 제도’에 따라서 움직였다. 따라서 달러 가치가 급등했을 때 위안화 가격도 급격하게 오른 것이다.

그렇다면 달러 가치는 지속적으로 하락하는데, 왜 위안화 지수는 여름 중순 이후 오르고 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인민은행에서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해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를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난 5월 말, 달러 당 7.17위안이었던 환율은 현재 달러 당 6.66위안까지 떨어졌다.

중국의 이런 정책은 과연 자본의 유출을 막기 위함일까? 아마도 국내 대출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금리를 내릴 필요성이 있었고, 이를 상쇄하기 위한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은 중국이 통화 약세가 유리한 수출기업들보다 국내 거시경제를 우선 안정화하는 쪽을 선택했단 뜻이다.

아니면 중국은 미국이 가진 글로벌 리더로서의 신뢰가 줄어드는 상황을 이용해, 자국 통화의 힘과 매력을 어필하고 국제사회 내 지위를 격상시키기 위해 애쓰는 것일까? 아니면 앞서 말한 이유 모두가 다 해당할까?

주목할 것은 중국이 디지털 위안 발행을 앞둔 상황에서, 이렇게 위안화 가치가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디지털 위안 발행 계획은 여전히 실험 단계에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 문제도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돈을 다시 생각하다(Money Reimagined)’는 돈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의하거나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바꿔놓고 있는 기술, 경제, 사회 부문 사건들과 트렌드들을 매주 함께 분석해 보는 칼럼이다.

· This story originally appeared on CoinDesk, the global leader in blockchain news and publisher of the Bitcoin Price Index. view BPI.
· Translated by NewsPepperm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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