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에 있는 '빗썸 고객센터'. 출처=김병철/코인데스크코리아
서울 강남구에 있는 '빗썸 고객센터'. 출처=김병철/코인데스크코리아

보안업체에 다니던 20대 개발자 ㄱ씨는 2016년 무렵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 투자했다. 블록체인에 대한 이해가 높은 그는 부모님의 돈까지 빌려 상당한 양의 암호화폐(가상자산)를 샀다. 2018년 초 폭락을 겪으며 손실도 봤지만, 그해 말 대부분을 현금화한 그의 은행 계좌에 남은 건 약 20억원. 회사를 퇴사한 그는 그 돈으로 당시 경기도의 유망한 땅을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세금은 한푼도 내지 않았다. 암호화폐는 과세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 10월부터는 달라진다. 보유하던 암호화폐 가격이 올라 양도차익이 생기면 20%의 세금을 물린다. 대법원이 “비트코인은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무형 재산”이라고 판결한 게 2018년이니 3년 뒤에야 과세가 시작되는 것이다.

정부가 파악한 국내 연간 암호화폐 거래 규모는 약 500조원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암호화폐 소득 파악이 가능해져서 과세도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정금융정보법) 개정으로 암호화폐 거래소가 거래내역을 과세당국에 보고하게 된 덕이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암호화폐를 규정하는 특금법은 내년 3월부터 시행된다. 그동안 법적으로 비트코인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빗썸, 업비트 같은 암호화폐 거래소의 지위도 모호했다. 온라인 쇼핑몰 같은 통신판매업자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금융기관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 법은 암호화폐를 ‘가상자산’으로, 거래소는 ‘가상자산 사업자’로 정의한다. 문턱이 상당히 높은 신고 요건도 달았다. 내년부터 사업자는 금융당국에 신고를 마친 후에만 사업을 할 수 있다. 규정이 없던 지금까지는 누구나 온라인 쇼핑몰 만들듯 암호화폐 거래소 사업을 할 수 있었다.

거래소를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몇천만~몇억원에 아주 기초적인 기능만 탑재한 암호화폐 거래소를 구축해주는 개발사를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사업을 시작하는 대부분은 4차 산업혁명과 블록체인을 앞세운 사기꾼이었지만, 투자자는 이를 구분하기 어려웠다. 가짜 코인, 시세 조종, 내부자 거래는 물론 ‘먹튀’ 같은 사건·사고가 이어지면서 피해자를 양산했다.

특금법 개정은 ‘무법지대’였던 암호화폐 산업을 양성화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다. 금융당국 신고를 통해 부실업체가 걸러지면서 투자자 피해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고객 자산을 다룬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이뤄졌어야 할 조치다.

다른 나라는 이미 시행하고 있다. 미국 뉴욕 금융감독청은 2015년 암호화폐 거래, 수탁 사업을 허가하는 ‘비트라이선스’를 도입했다. 2017년 거래소 등록제를 도입한 일본은 한발 더 나갔다. 아예 암호화폐를 금융상품에 포함하고 촘촘하게 규제한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러면서 “특금법이 가상자산 제도화를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국제기준에 따라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부과하는 것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정부가 생각하는 ‘제도화’란 설립 인허가, 자본금 규제, 영업행위 규제, 투자자 보호 등인데, 특금법엔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암호화폐의 법적 정의가 확정됐고, 가상자산 사업자는 반드시 금융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과세까지 하는데, 제도화는 아니라는 주장은 황당하다. 속사정은 이렇다. 시장이 ‘정부가 암호화폐를 인정했다’고 해석해 또다시 투기 과열이 일어날까 우려하는 것이다. 최근 비트코인이 1800만원까지 오른 것도 신경이 쓰일 것이다.

하지만 진짜 투자자 피해가 걱정된다면, 정부가 진짜 ‘제도화’라고 생각하는 설립 인허가, 자본금 규제, 영업행위 규제, 투자자 보호 제도를 만들면 된다. 제도화는 아니라는 말장난을 하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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