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파이(DeFi, Decentralized finance) 서비스 열풍이 불며 몇 달 전부터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에도 디파이 토큰들이 심심찮게 상장되고 있다. 디파이의 가장 큰 단점이 암호화폐에 익숙치 않은 사람은 사용하기가 어렵다는 점인데, 중앙화 거래소에서 일반 코인이나 토큰을 사듯, 디파이 토큰을 구매할 수 있다면 상당히 편리하게 디파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 한켠에는 디파이 토큰을 이색적인 방식으로 활용해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국내 한 거래소에 상장된 디파이 토큰을 보다가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했다.

이 업체는 초기 채굴을 독점하는 방식으로 적은 비용을 가지고 상당한 토큰을 얻었다. 디파이 특유의 자동마켓메이커(Autonomous Market Makers, AMM) 모델을 활용해 해당 토큰의 가격 급등을 인위적으로 올린 정황도 포착됐다. 초기에 채굴한 토큰들은 시장에 매도해 상당한 차익을 남겼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혐오하는 ‘가두리 양식’ 방식의 코인가격 올리기가 연상되는 흐름이다. 신선함은 있다. 여태까지는 없었던 신선한 ‘디파이식 가두리’라고나 할까.

이 프로젝트는 2021년 1월14일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빗에 상장된 아쿠아리움(AQUA)이다. AQUA토큰은 이 거래소에 1원에 상장된 후, 한때 개당 625만원까지 올랐다. 6억% 이상 오른 셈이다. 

아쿠아리움 프로젝트 이미지. 출처=아쿠아리움 미디엄
아쿠아리움 프로젝트 이미지. 출처=아쿠아리움 미디엄

아쿠아리움은 ERC-20 기반의 디파이 프로젝트다. 2020년 12월22일 토큰 발행을 시작으로 총 10억 개의 토큰을 공급하며, 일반적인 디파이 프로젝트들처럼 AMM모델에 따라 유동성 공급에 대한 보상을 제공한다. 

AMM이란 디파이에서 서로 다른 종류의 토큰을 교환하기 위해 사용되는 유동성 공급 방식이다. 해당 네트워크에서 요구하는 자산들을 유동성 풀에 예치하면, 예치량에 따라 그에 맞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아쿠아리움은 지난 12월22일 3개의 유동성 풀을 생성했다. 

 

D-22, 첫 채굴이 시작되다

AQUA 토큰이 채굴되는 과정은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온체인 데이터를 보면 아쿠아리움의 첫 트랜잭션은 2020년 12월22일 발생했다. 

이날 아쿠아리움 ETH-USDC 풀에 0xbdc5e79dc1688c8f9d43b1f905a61535158b3f95(주소A)가, ETH-DAI 풀에는 0x6ce002fb03b45c672d21b31ffbb8f6c8b00ce970(주소B)가 각각 9000달러 상당의 유동성을 공급했다. 

12월28일 주소A는 클레임한 보상 중 극소량(110 AQUA-10 USDC)을 탈중앙화 거래소인 유니스왑의 AQUA - USDC LP 풀에 입금한다. 이때 AQUA 토큰의 가격은 0.01달러였다.

이후 주소A는 특정 지갑 주소들과 함께 상장일인 1월14일까지 1007USDC로 AQUA 토큰을 집중 매수했고, AQUA 토큰 가치는 84달러까지 상승했다. 초기 채굴을 했던 이들은 오른 가격만큼 이득을 챙긴 셈이다. 

실제로 상장일인 14일에 A지갑은 유니스왑에서 이를 판매해 2만달러 정도의 차익을 얻었고, B지갑은 코인빗에 있는 11개 지갑으로 약 355만개의 AQUA 토큰을 송금했다. 이 주소들과 재단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다만 의아한 점은, 이들이 22일 아쿠아리움 풀 생성 직후에 채굴을 목적으로 풀에 자금을 넣었으며, 약 1주일 간 다른 일반 유저의 접근은 없었다는 점이다. 사전 채굴에 대해서는 거래소나 재단 측 어느 곳에서도 사전공지를 하지 않았다.

다른 투자자들이 몰라서 채굴을 못한 것인데 어쩌라는 말이냐는 항변이 나올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디파이 플랫폼 성격상 적어도 이런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야 했다.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코인빗 거래소에 상장되던 지난 14일 온체인데이터를 보면, 상장 공지 2시간 반 전에 1개의 주소에서, 15분 전에는 3개의 주소에서 유니스왑을 통해 AQUA 토큰을 매수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상한 점은 그동안의 토큰 매수와 토큰 가격 상승에 대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던 재단이 이 4개의 주소 중 3개를 동결(Freeze)했다는 점이다. 동결이란 토큰 개발사가 자신의 토큰을 특정 지갑에서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없도록 강제하는 조치를 말한다. 은행으로 치면 계좌 거래정지와 비슷하다. 

동결은 탈중앙화 취지에 어긋나 보이지만 해킹이나 피싱과 같은 피해에 대비하기 위하여 프로젝트 개발사에게 권장되기도 하는 기능이다. 다만 개인 재산 침해 위험성이 높으므로 콘트랙트의 주요 권한을 보유한 관리자 주소만 실행할 수 있도록 설정하는 게 일반적이다.

아쿠아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사용 시점이 공교롭다. 디파이 프로젝트가 상장 공지를 올리기 직전에 매수 주소를 동결했고, 소량의 토큰을 매수한 주소는 이 조치에서 배제했기 때문이다. 개발사가 토큰을 매수한 4개의 주소 중 1개는 동결하지 않고 3개는 동결하는 선택적 조치를 했다는 것도 재미있는 지점이다. 말이 디파이지 중앙화지향 금융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행보다. 

물론 몇 가지 추가로 확인해야 할 지점이 있다. 우선 아쿠아 프로젝트의 콘트랙트에서 특정주소에 대한 동결 기능이 있는지(예를 들면 블랙리스트), 메인 콘트랙트가 아닌 다른 주소에 특정 기능을 수동으로 호출할 수 있는 관리자 권한을 부여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콘트랙트 코드를 확인해야 하지만 아쿠아 콘트랙트는 공개되어 있지 않아서 위의 기능들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많은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토큰 상장 전 이더스캔 같은 공개용 익스플로러에 코드 공개를 의무화한다. 이는 콘트랙트 내 백도어와 같은 악의적 코드로부터 거래소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코인빗은 코드 조차 공개되어 있지 않은 토큰을 무분별하게 상장한 셈이다. 

 

상장 D-0, 개미투자자에게 넘겨진 물량 

AQUA 토큰은 이런 배경 속에서 14일에 상장됐다. 상장을 1시간 앞두고 거래소에 공지가 올라오자 상장 시세 차익을 얻기 위한 일명 '보따리상'이 AQUA 토큰을 유일하게 거래할 수 있는 유니스왑에 몰려가서 토큰을 매수하기 시작했다.

이때 AQUA 토큰 가격이 빠르게 상승했는데, 이 시점에 유니스왑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채굴 보상을 받았던 지갑들에서 특이한 움직임이 나타난다.

주소A는 공지가 뜨고 상장이 될 때까지 1시간 동안 0.05AQUA를 꾸준히 매도했고 총 1.135AQUA를 1만7617USDC로, 0.15AQUA를 1413달러 가치의 이더(ETH)로 환전했다.

이 외에도 유동성 공급에 선참여한 한 주소(0x739aeaD92f88557db83e2ba388586f8398Fcf6e3)는 공지가 나오기 직전에 채굴대가로 받은 유동성 토큰을 다른 주소(0x955d8e8f7028b8880547babd0e2cb5d51daaf28e)에게 전달했다. 이 주소는 주소A 와 마찬가지로 한 시간 동안 AQUA토큰을 USDC로 교환해 4533달러 가치의 차익을 얻었다.

유니스왑에서 비정상적으로 높은 가격으로 형성된 AQUA 토큰은 코인빗 상장 직후 상장가 1원에서 최고가 625만원까지 상승했다. 코인빗은 상장 3일 후인 17일에 투자자 보호를 위해 입출금 중단을 공지했다. 거래소 내 시세가 높아 채굴 물량이 입금될 경우 큰 폭의 시세하락이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거래소는 설명했다.

코인빗 입출금이 막힌 뒤에도 유니스왑에서 선채굴자들의 매도는 계속됐다. 주소A는 한국시간 20일 새벽 147만7777AQUA 토큰을 매도해 430.4USDC를 챙겼다. 그 외 선채굴자들도 334만토큰이 넘는 수량을 풀에서 매도했다.

풀에 AQUA 토큰 공급량이 급격하게 늘어나자 실질 가격은 0.0003달러까지 하락했다. 거래소에서 약 50만원의 시세를 기록 중인 AQUA 토큰으로 유니스왑에서 1USDC를 구매하려면 2984AQUA가 필요해지는 거다. 

가상자산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투명성이다. 거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어느 정도 돈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쿠아리움은 토큰 발행 한달만에 별다른 커뮤니티 활동도 없이 거래소 상장까지 했으며 디파이 콘셉트 하나로 채굴에 대한 정보 공개도 동결에 대한 해명도 하지 않았다. 이런 수법은 아쿠아리움에서 처음 발견된 것이지만, 앞으로도 비슷한 방식의 코인 가격 올리기가 계속될 수 있다. 투자자들의 경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지혜 헥슬란트 리서치센터장. 출처=헥슬란트
최지혜 헥슬란트 리서치센터장. 출처=헥슬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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