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넘는 김치 프리미엄은 '상투' 신호?
2017~2021년 '비트코인 김프' 전수조사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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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기자
김동환 기자 2021년 2월2일 07:58

직장인 이주승(33) 씨는 올해 초에 처음으로 비트코인 투자를 시작했다. 비트코인이 2017년 말 기록했던 전고점을 돌파하며 다시 돌아왔다던 신문 기사가 그를 자극했다.

주식 투자 경험이 있던 이 씨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해 어렵지 않게 비트코인을 구매했다. 생각보다 쉽다 느꼈지만 문제가 있었다. 외국의 비트코인 기사를 읽던 그는 자신이 글로벌 가격보다 4.5% 비싸게 비트코인을 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연이은 상승장의 영향으로 국내 비트코인 가격에 '김치 프리미엄'이 껴 있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글로벌 비트코인 가격이 20% 이상 떨어지자 그의 프리미엄도 눈 녹듯 사라졌다. 20% 하락도 우울한데 25%를 손해 보게 된 황당한 상황이었다. 이 씨는 "뭔가 사기당한 기분인데 암호화폐를 소개해준 지인들은 김치 프리미엄도 몰랐냐며 웃더라"고 토로했다. 

김치 프리미엄이란 한국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원화로 비트코인을 살 때와 해외 거래소에서 달러화, 혹은 달러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으로 비트코인을 살 때의 가격 차이를 말한다. 둘을 비교했을 때 국내 가격이 비싸면 '김치 프리미엄', 국내 가격이 낮으면 '김치 디스카운트(역프리미엄)'가 된다. 최근 비트코인 변동성이 심해지면서 이씨처럼 김치 프리미엄을 몰라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역대 사례들을 보면 사실 이 씨는 지금 암호화폐 투자를 시작하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에 처음 암호화폐 열풍이 불었던 2017년 말에는 지금보다 상황이 더욱 심각했기 때문이다.

2017~2018년 비트코인 가격. 출처=코인데스크
2017~2018년 비트코인 가격. 출처=코인데스크

특히 2017년 12월 18일부터 2018년 1월 22일까지는 기본 10% 이상의 김치 프리미엄이 꾸준히 유지됐다. 국내 투자자들이 한 달 내내 해외 투자자들에 비해 10% 이상 높은 가격을 감수하고 비트코인을 매수했다는 얘기다. 그와중에 달성된 비트코인 김치 프리미엄 역대 최고치는 2018년 1월에 기록된 54.48%다. 물론 이 프리미엄 역시 이후 폭락 과정에서 눈 녹듯 사라졌다. 

이 김치 프리미엄 사건은 해외 투자자들이 경이로운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김치 프리미엄'이 고유명사가 된 이유다. 실제로 해외 암호화폐 프로젝트 가운데는 이때 생긴 이미지 때문에 암호화폐 공개(ICO)를 할 때 한국을 꼭 공략해야 할 시장으로 꼽는 곳들도 적지 않았다. 

 

닫힌 시장+폭발적인 매수세 = 김치 프리미엄 

다른 국가에서는 이렇게 심한 비트코인 프리미엄이 발생한 적은 없다. 그런데 왜 한국에는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캐나다 캘거리 대학교 연구진은 2019년 4월, 이 현상에 대해 연구한 보고서에서 김치 프리미엄의 발생 원인으로 한국 시장의 독특한 시장 구조와 높은 거래 비용을 지목했다. 

통상 어떤 상품의 프리미엄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순간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격차가 발생할 때 만들어진다. 사려는 사람이 많거나 팔려는 사람이 적으면 양(+)의 프리미엄이, 사려는 사람이 적거나 팔려는 사람이 많으면 음(-)의 프리미엄이 생기는 식이다.

해당 상품의 거래가 활발할수록 프리미엄은 잘 발생하지 않는다. 비트코인의 경우에는 전 세계 어디서나 기본적인 가치가 동일하고, 거래소라는 환경 특성상 어느 한 나라에 프리미엄이 형성되더라도 이를 노린 차익거래가 뒤따라 일어나면서 곧 사라지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한국은 프리미엄이 생긴다 해도 그를 이용한 차익거래를 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다. 워낙 원화의 지배력이 공고하고, 외국환 관리를 엄격하게 하는 나라 중 하나기 때문이다. 김치 프리미엄 차익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해외 거래소에서 달러 등 다른 나라의 법정통화를 주고 비트코인을 싸게 사와야 하는데 국내에 있는 투자자들은 기본적으로 다량의 달러를 보유하는 것부터가 어렵다. 이렇게 폐쇄적이고 거래비용이 높은 환경에서는 차익거래가 활발하게 일어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김치 프리미엄이 발생하면 잘 해소되지 않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2017년 말에서 2018년 초에 국내 투자자들의 매수 수요가 폭발했다. 코인데스크코리아가 만난 전직 국내 거래소 관계자 A씨는 "당시 거래소들이 해외 거래소에서 모자라는 비트코인을 사다가 공수할 정도로 국내 물량이 달렸다"면서 "국내에서 보유한 원화를 엔화로 바꾼 후, 일본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바꾼 엔화로 비트코인을 사고, 그걸 한국 거래소로 전송해서 김치 프리미엄을 취하는 '비트코인 보따리 장수'들도 많이 유행했었는데 프리미엄이 유지될 정도로 사려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치 프리미엄이 50%를 넘겼던 이유다. 

요즘 암호화폐 시장은 2018년에 비해 기술적으로 상당히 진보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김치 프리미엄이 해소되기 어려운 환경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테더(USDT) 등 거래 속도가 빠른 스테이블 코인들이 세계적으로 대중화됐지만 한국 거래소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금융 인프라가 완비되어 있어 원화 사용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과거보다 더 열악해졌다. 중국 등 인접 국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김치 프리미엄 해소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지난 2019년 말 국세청이 빗썸 거래소에 비거주자 대상 원천징수 명목으로 800억원이 넘는 세금을 매기면서 국내 거래소에 남아있던 외국인 계정들은 대부분 정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지혜 헥슬란트 리서치센터장은 "여전히 국내 암호화폐 시장은 외딴 섬 같은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7~2021년 '비트코인 김프' 전수조사

코인데스크코리아는 차트 데이터 제공 사이트인 트레이딩뷰를 이용해 지난 2017년 하반기부터 2021년 초까지 국내 거래소 업비트와 미국 거래소 비트파이낸스 사이에 발생한 김치 프리미엄 발생 건수를 전수조사했다. 일 기준으로 5%가 넘는 대형 김치 프리미엄들만 추렸더니 흥미로운 공통점이 하나 발견됐다.

최근 3년간 비트코인 가격과 김치프리미엄 추이. 붉은 색 원은 일 기준 5% 이상의 김치프리미엄이 발생한 구간이다. 출처=트레이딩뷰
최근 3년간 비트코인 가격과 김치프리미엄 추이. 붉은 색 원은 일 기준 5% 이상의 김치프리미엄이 발생한 구간이다. 출처=트레이딩뷰

이 조건에 맞는 시기는 모두 여섯 군데인데, 글로벌 비트코인 가격이 단기간에 50% 이상 폭락하면서 국내 가격이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바람에 높은 수준의 김치 프리미엄이 형성됐던 2020년 3월 12일에서 15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격이 단기 고점이었다.

즉, 5% 이상의 김치 프리미엄이란 대부분 비트코인 가격이 사실상 정점에 다다랐을 때, 상승장에서 자신만 소외되는 것을 참지 못하고 매수 버튼을 누르는 국내 투자자들의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심리가 지표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2021년 1월 비트코인이 역대 최고가인 4만1950달러를 기록할 때도 어김없이 5% 이상의 높은 김치 프리미엄이 나타났다. 가장 높은 수치는 2021년 1월 9일 기록된 7.89%다. 비트코인은 이날 이후 잠시 횡보세를 보이다가 12일 3만400달러대까지 하락했다.

역프리미엄에도 투자자들의 심리가 읽힌다. 김치 프리미엄이 역프리미엄을 나타내는 상황은 비트코인 가격은 상승하는데 직전 변동성이 너무 심한 수준이라, 투자자들이 상승이 지속될 거라고 믿지 못할 때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표적인 구간은 2020년 3월 폭락 후, 개당 3700달러대까지 떨어졌던 비트코인이 6000달러대를 회복하고 9000달러로 상승하는 3월 22일부터 6월 5일까지의 구간이다.

이 3개월 중 상당 기간동안 국내 비트코인 가격은 역 프리미엄 상태였으며, 4월 4일에는 -3%의 역 프리미엄이 기록됐다. 비트코인이 최고점을 찍고 3만달러와 4만달러 사이를 폭넓게 오르내리고 있는 최근에도 일 기준 -3.62% 정도의 역 프리미엄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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