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Ussama Azam/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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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리 스트로벨은 비트코인 포인트 스타트업 롤리(Lolli)에서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총괄한다.

2019년, 한 바나나에 대한 이야기가 언론을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었다.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아트 바젤(Art Basel) 전시회에 등장한 이 바나나에 붙여진 이름은 ‘코미디언(Comedian).’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으로, 강력 접착테이프를 이용해 바나나를 벽에 붙여 놓은 것이었다.

당시 제시된 판매 가격은 12만달러. 작품에 대한 비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등장했던 비판은 바나나를 예술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평론가들은 이 작품에 대해 ‘본질적 가치’가 없다고 평가했다. 그들은 작품에 사용된 바나나가 마트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수백만개의 다른 바나나와 전혀 다를 것 없다고 지적하면서, 예술 관계자들이 이 바나나를 예술이라고 칭하는 것 외에는, 해당 바나나를 예술 작품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 바나나가 12만달러에 판매되는 것은 물론, 유명 예술 축제에 등장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누군가 이 바나나를 벽에서 떼어먹었고, 이들의 주장이 입증되는 듯했다.

‘코미디언’이라는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이 작품은 가치평가의 모순에 초점을 맞춘다. 인상파 시대의 걸작과 소변기 작품이 비슷한 가격에 팔리는 예술업계는 이와 같은 모순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야 중 하나다.

최근 대체불가능토큰(NFT)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자산의 본질적인 가치에 대한 논의에 다시 불이 붙었다. 지난주에는 예술작가 비플(Beeple)의 ‘매일: 첫 5000일(EVERYDAYS: THE FIRST 5000 DAYS)’이라는 NFT 작품이 6900만달러에 낙찰되면서 관심이 더욱 집중됐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판매된 NFT 중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됐으며, 비플은 제프 쿤스, 데이비드 호크니와 함께 현존하는 예술가 중 가장 높이 평가되는 예술가로 등극했다.

이번 거래는 분야는 서로 다르지만, 거래 대상의 표면적인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이 책정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비슷한 예술과 암호화폐의 융합을 대변한다.

예술의 역사에서 다양한 학파가 끊임없이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존의 유행과 거리가 멀어 진지한 평가를 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겨졌던 새로운 아이디어와 작품들이 기존의 작품들보다 금전·사회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술의 세계에서는 새로운 사고방식과 관점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반면, 변화에 대한 금융업계의 평가는 보다 인색하다.

NFT에 대한 비판은 근본적으로, 비트코인 등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암호화폐의 실질적인 가치를 둘러싼 비판과 비슷하다. 최근 비트코인의 인기가 급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에는 ‘본질적 가치’가 없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가치평가는 근본적으로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본질적 가치’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 모순에 가깝다.

본질적 가치라는 게 있기는 할까? 사실 법정화폐에도 본질적인 가치는 없다. 법정화폐는 정부가 원하면 얼마든지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종이조각에 불과하다.

미국 달러와 같은 법정화폐가 갖는 주요 문제점을 생각하면 ‘코미디언’이 떠오른다. 바나나는 실질적으로 공급량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바나나 한개의 가치가 12만달러에 육박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돈도 통화정책 변화에 따라 공급량이 달라진다. 달러 환율은 공급량에 따라 상승하거나 하락하고, 이에 따라 달러의 가치가 강화되거나 파괴될 수 있다. 예술은 개념의 실험과 극적인 역설 등을 포용하기 때문에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경제적 관점에서는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

특정 자산의 가치는 그 자산의 희소성과 직결된다는 논리도 비트코인에 유리하며, 오히려 달러와 같은 법정화폐에 불리하다. 비트코인의 총 공급량은 처음부터 2100만개로 정해져 있다. 즉, 높은 수준의 가치평가를 받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핵심요소라고 하는 ‘희소성’이라는 특징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비플이 만든 NFT가 희소성을 갖는 이유는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변경 불가능한 디지털 서명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져 거래내역이 마치 바위에 새겨 놓은 것처럼 기록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수천만달러에 거래된 NFT와 똑같은 그림을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지 않냐고 반박한다.

하지만 모든 원작의 희소가치를 결정짓는 주요 요소 중 하나는, 해당 작품만이 이 세상의 유일한 원작이라는 인식이다. ‘모나리자’는 루브르 박물관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지만, 우리가 부여하는 가치는 전혀 다른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가 구글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NFT 열풍은 법정화폐의 근본적인 문제점에 대한 인식이 커지고 있는 디지털 사회의 문화적 가치를 반영하기도 한다. 앤디 워홀이 현대 소비자 문화를 표현하기 위해 캠벨수프 그림을 그린 것과 비슷하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당연시하며 받아드렸던 기존의 제도들을 되돌아보면서, 금전적 가치가 부여된 종이조각과, 예술작품이라고 전시된 바나나가 어떤 공통점을 지니는지 평가하게 될 것이다.

이는 그동안 사회적 순응과 공감대가 우리의 가치평가 방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깨닫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한 차원에서 본다면, 돈과 바나나 모두 그 자체로 ‘코미디’가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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