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약 100여곳으로 추정되는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중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4곳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향후 생존한 거래소로 투자자가 몰리는 ‘쏠림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현재 암호화폐 거래소와 관련된 정부의 공식 통계는 없다. 업계 추정으로는 국내에서 영업 중인 거래소는 100여곳에 달한다. 지난 25일 시행된 ‘개정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에 따라 암호화폐 거래소는 6개월 안에(9월24일까지) 금융당국에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를 마쳐야 한다. 무신고 거래소는 형사처벌 대상으로 사실상 퇴출된다.

신고를 위해 갖춰야 할 주요 요건은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실명계정)과 ‘정보보호관리체계’(ISMS)이다. 둘 중 상대적으로 얻기 쉬운 정보보호관리체계는 기업 내 정보보호를 위한 인증이다. 인증기관인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 한빗코, 캐셔레스트, 텐앤텐, 지닥, 플라이빗, 에이프로빗, 후오비코리아, 코인엔코인, 프로비트 등 거래소 14곳이 인증을 받았다.

실명계정은 암호화폐 거래소가 실명이 확인된 고객의 원화 입출금을 받는 은행계좌다. 현재 업비트(케이뱅크), 빗썸(NH농협은행), 코인원(NH농협은행), 코빗(신한은행)만 이용 중이다. 반면 실명계정이 없는 대다수 거래소는 일명 ‘벌집계좌’(법인의 은행계좌)를 통해 원화 입출금을 받아 사업을 하고 있다.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국내 4대 암호화폐 거래소 로고. 출처=각 거래소.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국내 4대 암호화폐 거래소 로고. 출처=각 거래소.

실명계정과 정보보호관리체계 두가지 요건을 모두 가진 거래소는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4곳뿐이다. 나머지 거래소들은 실명계정을 발급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은행과 접촉 중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줄곧 암호화폐에 부정적인 기조를 보여왔고, 은행 자체 판단으로도 자금세탁 등 위험이 크다는 시각이 많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 내부에는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은행이 말하는 리스크는 실명계정을 발급한 거래소를 통해 암호화폐 자금세탁이 발생할 가능성이다. 특금법은 마약·테러 자금 등 불법자금의 세탁을 방지하기 위한 법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이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권고를 만족하는 수준의 암호화폐 자금 세탁방지 조처를 하기에는 위험 요소가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거래소에 실명계정을 발급하는 은행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고팍스, 지닥, 후오비코리아 등이 실명계정 발급을 위해 BNK부산은행과 논의 중이다. 이들 중 한 거래소 관계자는 “부산은행뿐만 아니라 여러 시중은행과 논의를 진행 중”이라며 “복수의 거래소가 은행권을 만나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실제 실명계정 발급이 이뤄질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업계에선 “추가 발급은 많아야 3~4곳에 불과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실명계정 발급을 준비 중인 거래소 관계자는 “2년 전부터 실명계정을 받기 위해 은행과 논의를 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며 “추가로 실명계정을 받는 거래소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실명계정을 받지 못하는 대다수 거래소는 폐업할 것으로 보인다. 특금법에 따라 벌집계좌는 9월부터 사용할 수 없어, 거래소로 들어오는 원화 입금이 막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국내 거래시장엔 소수 플레이어만 남게 될 수도 있다. 이는 신고제보다 진입장벽이 더 높은 인허가제를 채택한 일본과 비교해도 차이가 난다. 일본에선 지금까지 총 16개 거래소가 금융청(FSA)의 허가를 받아 운영 중이다.

출처=fotografierende/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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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거래소 운영을 중단하지 않지만, 내부적으로 폐업을 준비하는 거래소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거래소 관계자는 “가상자산사업자 신고수리 유예기간까지 실명계정을 받지 못할 경우, 곧장 거래소를 폐업할 준비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벌써 문을 닫는 거래소도 나왔다. 지난 23일 중국계 암호화폐 거래소 오케이이엑스(OKEx) 코리아는 4월7일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공지했다. 이 거래소 관계자는 “실명계정 발급이 사실상 쉽지 않다 보니 원화마켓 운영이 어려워져 국내에서 사업을 정리한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이른바 ‘먹튀’하는 거래소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명계정을 받기 어렵다고 판단한 일부 거래소들이 고객의 예치금을 돌려주지 않고 폐업할 수도 있다. 최근 한 거래소는 투자자의 출금 요청을 처리해주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거래소의 사무실과 고객센터를 찾아가면 불이 꺼져 있어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거래소 이용자는 사업자의 신고 상황, 사업 지속 여부 등을 최대한 확인하고 가상자산 거래를 하길 바란다”며 암호화폐 거래소의 폐업을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업계에선 실명계정을 발급하는 은행의 기준이 제각각이라는 불만도 나온다. 한 거래소 대표는 “은행이나 금융당국이 실명계정 발급 기준을 명확히 정해주면, 그 기준을 충족할 수 있다. 하지만 발급 기준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하다”고 했다. 금융당국이 실명계정 발급 기준을 정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실명계정 발급 여부는 당국이 아닌 은행의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이 암호화폐 거래소에 실명계정을 발급해준다는 건 거래소의 자금세탁 위험성을 대신 보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은행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각각의 자율적인 내부 기준에 따라 거래소에 실명계정을 발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9월 이후에 생존하는 거래소로 국내 암호화폐 거래가 집중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기업 체이널리시스의 백용기 한국 지사장은 “거래소가 실명계정을 받지 못하면, 고객과 자금이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으로 몰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작년 말부터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면서 국내 거래량도 덩달아 급성장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취합한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거래소 4곳의 1월1일부터 2월 말까지 일 거래량은 약 8조원, 이용자는 159만여명이다. 내년부터 암호화폐 수익에도 세금이 부과되면서, 세금 계산이 불편한 국외 거래소 이용자가 대거 국내 거래소로 옮겨올 수도 있다.

*이 기사는 한겨레신문 지면에도 게재됐습니다. 코인데스크코리아는 매달 한 차례 한겨레신문의 블록체인 특집 지면 'Shift+B'에 블록체인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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