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첫날 수익이 났을 때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두통이 와서 잠을 한숨도 못 잤어요.”

직장인 이현민(33·가명)씨는 두 달 전 집 근처 신협·새마을금고에 종일 전화를 돌리며 적금 금리를 따지던 자신의 모습이 “너무 허무했다”고 털어놨다. 암호화폐(메탈·헌트)에 투자한 첫날, 160만원이 256만원이 되는 ‘마법’을 맛봤기 때문이다. “(은행) 금리 생각하면 돈을 잃어도 코인·주식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그는 이제 은행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다시 불며, 최근 ‘코인판’에 뛰어드는 2030 세대의 움직임이 도드라지고 있다. 이들의 투자 열풍 배경에는 코로나19 사태로 고용 불안과 소득 감소에 시달리며 위기감이 커진 가운데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영원히 지금 위치에서서 벗어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암호화폐 투자를 하는 이들은 지금의 투자 열풍이 ‘투기’나 ‘한탕주의’가 밀어 올린 현상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대박 꿈이라도 꾸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21일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이 공개한 4대 암호화폐 거래소(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 투자자 현황을 보면, 올해 1분기 신규 가입자(암호화폐 계좌에 실명계좌를 연동한 이용자) 249만5289명 중 20대와 30대 비중은 각각 32.7%(81만6039명), 30.8%(76만8775명)로 신규 투자자 10명 6명 이상이 20·30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주식 시장에서 큰손인 40대와 50대의 비중은 19.1%(47만5649명), 8.8%(21만9665명)에 그쳤다

이날 <한겨레>가 접촉한 2030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자산 불평등이 해소될 조짐이 안보이자 ‘대박’을 꿈꿀 수 있는 코인에 집중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지역에 있는 공기업에 다니는 김아무개(31)씨는 “몇달 전 점심 먹으면서 본 집값이 5억이었는데 오늘 다시 보니 7억이 됐길래 내가 시공간을 초월한 줄 알았다. 돈 있는 사람들이 부동산이라는 큰물에서 논다면 나 같은 사람은 푼돈으로 코인이나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회사원 정아무개(31)씨 또한 “저금리 시대에 모아둔 돈을 그냥 두긴 아깝고 부동산에 투자하려니 부족하니 대박을 노릴 수 있는 코인에 손을 댔다”고 거들었다. 부동산에 투자할 여력은 안 되고 주식 투자로는 큰 이익을 얻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자, 대안으로 암호화폐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이들은 암호화폐 등락의 불투명성을 알고서도 투자에 나섰다고 털어놓았다. 금융회사에 다니는 전아무개(33)씨는 “코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투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실체를 이해하기 어렵다 보니 투자 행위가 마치 카지노 홀짝에서 내 손모가지를 거는 것과 같다”고 했다. 암호화폐 투자로 원금 이상의 수익을 본 회사원 박아무개(33)씨조차 “사실 코인을 믿지 않는다. 돈 넣고 돈 먹기를 하는 게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4시간 거래되는 암호화폐의 시장 특성 탓에 일상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씨는 “24시간 동안 가격이 오르내리다 보니 기분도 좋았다가 우울하다가 널뛰기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고 털어놓았다. 회사원 이아무개(32)씨 또한 “등락이 커서 예민해지고 일상생활에 집중하기 힘들어 큰돈을 투자하는 행위는 자제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암호화폐 투자자들의 ‘수익 인증 후기’가 떠돌면서 투자 열풍은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회사원 이아무개(29)씨는 “지인 남자친구의 친구가 (투자로 돈을) 몇억원씩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가 얼마를 벌었다는 식으로 수익을 인증하는 대화를 보내줘서 받아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에는 “노동 소득만으로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사회가 과열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트위터 @Gol*********)는 ‘자성론’이나 박탈감을 호소하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불안은 투자자들의 ‘영혼’을 잠식한다. 회사원 이아무개(32)씨는 “근로소득으로 집 한 채 구하기도 힘든 요즘 같은 시대에 내 돈으로 투자하겠다는데 한탕주의를 말하는 게 꼰대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아무개(31)씨는 “지금이라도 코인에 투자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집 하나 없이 영원히 성실한 빈자로 살 것 같아서 그게 더 두렵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암호화폐 투자 열풍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계층사다리가 붕괴된 사회’를 꼽았다. 황준원 강원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회 계층사다리에서 이동하지 못한 좌절감과 일확천금을 해보겠다는 심리가 (암호화폐 투자에) 작용한 것 같다”며 “집값은 오르지만 월급은 그만큼 오르지 않다 보니 탈출구를 찾은 게 비트코인과 주식인데, 한 발짝 더 나가면 도박 중독과 비슷한 심리가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보, 보도자료는 contact@coindeskkorea.com
저작권자 © 코인데스크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