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석상에서 비트코인을 혹평하는 사람들은 한 둘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비트코인 회의론 만으로는 주목을 받기가 쉽지 않다. 이런 와중에 또 한명의 비트코인 회의론자가 등장했다. 차현진 한국은행 인사경영국 소속 연구조정역(국장)이다. 그는 최근 삼프로TV와 KBS에서 "비트코인은 화폐가 될 수 없다"며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내며 암호화폐 업계에서도 시선을 끌었다. 

차 국장은 서울대 무역학과(국제경제학과)와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 경영대학원(와튼 스쿨)에서 경영학(재무이론)을 전공했으며 지난 1985년 한국은행에 입사했다. 한국은행에서 35년 넘게 일한 경력이 그를 비트코인 회의론자로 만들었을까.

차현진 국장은 지난 7일 코인데스크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삼프로TV에는 개인적 친분이 있어 출연한 것인데 이렇게 파급 효과가 클 줄은 몰랐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방송이 나가고 암호화폐 업계에서 항의가 많이 들어왔지만 개의치 않는다"며 "(비트코인의 화폐성에 의문을 던지기 위해) 비트코인 영문 백서를 다 읽어보는 등 내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해갔다"고 말했다.

몇 년이 지나도 비트코인은 화폐가 될 수 없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그는 "집에서도 딸에게 '비트코인 투자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조언하는데, 딸은 나한테 '구세대적 생각'이라 하며 한 귀로 흘리더라"고 말했다. 다음은 차현진 국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출처=함지현/코인데스크 코리아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출처=함지현/코인데스크 코리아

- 그동안 쓴 칼럼 등을 보면 2017년부터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데,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 2014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 국정감사 때 어느 의원이 '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암호화폐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은행의 준비 상태는 어떤지'라는 질문을 던졌다. 관련 국장들이 서로 손사래를 치다가 결국 발권국장이 원론적으로 대답했다.

그걸 보고 '발권국장이 답변하는 순간, 한국은행은 암호화폐를 진짜 화폐로 간주한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문제의식을 갖고 비트코인을 조금씩 관찰하던 와중에 2017년 금융결제국장이 되어 관련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 한국은행 발권국은 다음과 같은 업무를 담당한다. 

  • 화폐의 발행 및 유통 관리
  • 화폐 및 발권, 출납제도의 조사연구
  • 화폐 및 어음의 교환
  • 화폐의 정사, 감사 및 폐기
  • 보호예수 및 보관물에 관한 사항

지난해 법인이나 금융기관이 비트코인에 투자했으며, 페이팔은 비트코인 결제 서비스를 선보였다. 그럼에도 2017년의 ‘비트코인은 화폐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이유는.

= 법인이나 금융기관은 주식, 채권, 부동산, 외환 등 어떤 것에도 투자할 수 있다. 비트코인이 화폐로 인정받는 것과는 무관하다. 페이팔의 비트코인 결제 서비스는 전당포가 시계나 만년필 받고 현금 서비스(대부업)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화폐성과는 상관이 없다.

비트코인은 어음을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배서를 한 것과 유사하다. 밀가루 장수가 빵가게에 밀가루를 팔고 종이어음을 받고, 이를 다른 가게에서 쓴다고 해서 어음이 돈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비트코인의 화폐성 논의는 화폐를 지급결제 수단으로만 봐서 생겨난 오해다. 지급결제 수단은 화폐의 속성 중 하나일 뿐, 그 자체가 아니다. (국정화폐론 등에 따르면) 화폐는 국가가 발행하는 돈으로 정의된다.

 

- 1971년 금본위제 폐지 이후로 법정화폐도 실물 가치가 없지 않나. 그런 점에서 비트코인과 차이가 있는지.

= 모든 법정화폐도 내재가치가 없다. 그러나 쓰임새에 있어 전혀 회의적이지 않다. 국가가 세금을 법정화폐로 거두기에 확실한 용도가 있어서다. 반면, 비트코인은 그만큼 단단한 수요기반 또는 사용처가 없다. 단지 세계적으로 널리 쓰일 것이라는 전망이나 기대밖에 없다. 그래서 회의적이라는 말이다.

 

최근 들어 블록체인 업계는 오히려 비트코인을 화폐로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화폐성 논의를 꺼낸 까닭은.

= 2017년 국회 공청회가 열렸을 때 블록체인 업계는 ‘비트코인이 화폐다’고 주장하면서 내가 기술을 몰라서 무식한 소리를 한다고 그렇게 공격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또한, 비트코인을 둘러싼 화폐성 논의는 비트코인을 만든 사토시 나카모토가 자초하고, 원하는 것이었다. 그가 2008년 말 발표한 논문은 '우리는 연쇄적 전자서명을 화폐로 본다(We define an electronic coin as a chain of digital signatures)'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이는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과도 유사하다.

이제 와서 "화폐로서의 논의는 의미없다"는 말은 치고 빠지는 게릴라 수법이거나, '아니면 말고'하는 식의 태도다.

 

- 비트코인이 화폐로서 의미가 없다면, Cryptocurrency 를 우리나라 단어로 어떻게 옮겨야 하나.

= 암호자산이 가장 적합한 번역으로 생각한다. 외국에서도 최근 'Cryptoassets'이라고 하더라. 암호는 속성이고, 자산은 정체성에 해당한다. 개인적으로 '디지털 아트'라는 표현이 더 맞을 듯하다. 금융위기 이후 월 가에 대한 저항 정신으로 탄생했으니까. 플래시 몹처럼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예술 작품으로 볼 수 있다.

 

- 비트코인 발행량(총 2100만개)이 정해져 있어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가치가 있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은(silver)도 매장량이 제한되어 있는데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트코인의 가치는 인플레이션과 무관하게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주관적 평가에 의해 유지될 것으로 본다.

 

- 글로벌 금융기관이 사들이는 이유는 단순히 수익률이 높은 투자상품이기 때문인가

= 그렇다고 본다. 엄격히 말하면, 글로벌 금융기관이 자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사들이는 게 아니다. 금융기관이 운용하는 펀드에서 사들이는 것으로, 실제 투자자는 개인이라고 봐야 한다.

 

- 10년 후 비트코인은 어떻게 될까

= 외환위기 직후 한국의 선물 시장과 비슷한 수순을 밟을 것 같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선물 시장이 개장되고 나서 'OO이 얼마 벌었더라' 이런 소문만 팽배했다. 마치 선물만 사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란 낙관론이 가득했다. 이로 인해 한때 한국 선물 거래량이 시카고 선물거래소에 이어 세계 2위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은 선물 시장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때만큼 대중이 매력을 느끼지는 않고 있다. 비트코인이 지금과 같은 투자 상품으로 살아는 있겠지만, 이에 대한 관심은 지금보단 현저히 떨어질 것 같다.

※코스피200선물 시장은 1996년 5월3일 개장했다. 개장 초기 일평균 거래량 3000~4000 계약에서 2011년 2월 일평균 거래량 37만5826계약(거래대금은 46조6664억원)으로 성장해, 당시 거래량으로 세계 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2011년 말 금융당국이 파생상품 규제를 도입하면서 위축되기 시작했다. e-나라지표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코스피200 선물 일평균 거래량은 20만3048계약으로 집계된다.

 

이날 차현진 국장과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에 대한 얘기도 나눴다.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 실험을 본격화하면서 CBDC는 각국 중앙은행이 외면할 수 없는 연구 과제가 됐다. 한국은행도 최근 CBDC 모의실험에 착수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CBDC가 실제로 쓰일지 여부에 관심을 갖고 있다.

차 국장은 CBDC에 대한 답변은 한국은행 공식 입장이 아닌 개인 의견임을 명확히 하며 "세계적으로 CBDC가 안착한다면 비트코인은 사라지고 블록체인만 남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출처=함지현/코인데스크코리아
출처=함지현/코인데스크코리아

- 한국은행도 블록체인을 활용한 CBDC 실험에 나섰다. 한은이 블록체인의 기술력은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나.

= ‘인정’이라는 말이 어색하다. 한국은행은 기술력을 인정할 위치에 있지 않다. CBDC 실험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중앙은행 업무 혁신의 일환으로 이해해야 한다.

 

- (기자가) 2019년 한국은행을 취재할 당시 CBDC는 전혀 논의된 바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다 2020년 한국은행의 태세가 바뀌었다. 일각에선 비트코인이 확산되자 그 주도권을 중앙기관이 가져오기 위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한국은행에 소속된 입장으로서, 한은이 갑자기 CBDC에 주목하게 된 계기를 무엇이라고 보나.

= 말할 것도 없이 코로나19 감염증 위기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은행권, 주화로도 전파된다는 연구가 있었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비대면 지급결제가 크게 늘었다. 이런 사회 현상에 대비해야 하는 자연스러운 이유가 있었다.

 

- CBDC가 통용되면 기존 화폐는 의미가 없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정확히 말하면 기존 화폐의 존재 양식이 달라지는 것이다. 일단 한국조폐공사가 어쩔 수 없이 존폐 위기에 가까운 영업상의 타격을 입게 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CBDC가 가까운 시기에 널리 통용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 한국은행이 CBDC 발행에 앞서 풀어야 할 과제는?

= 익명성이다. (CBDC는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기에) 국민들의 익명성 요구가 분명히 커질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행을 비롯한 모든 중앙은행들이 익명성 제한 정도를 심사숙고하고 있다.

 

- 세계적으로 CBDC 생태계가 안착한다면, 비트코인이 사라지고 블록체인만 남을 가능성도 있을까.

= 그렇게 생각한다. 라이트 형제가 처음 만든 복엽기(제품)는 사라지고, 현재는 단엽기(항공기술)만 남았다. 브라운관 TV와 필름 카메라는 사라지고, 지금은 LED TV와 디지털 카메라가 명맥을 이은 것도 그 예로 들 수 있다.

 

출처=함지현/코인데스크코리아
출처=함지현/코인데스크코리아
함지현 "공포에 사서 환희에 팔아라"라는 명언을 알면서도 늘 반대로 하는 개미 투자자이자 단타의 짜릿함에 취해 장투의 묵직함을 잊곤 하는 코린이입니다. 저와 같은 사람들이 현명한 투자를 할 수 있게끔 시장 이슈를 보다 빠르고 알차게 전달하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투자의 대부분은 BTC(비트코인)와 ETH(이더리움)입니다. 현재 이더리움 확장성 개선 프로젝트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SOL(솔라나), ROSE(오아시스 네트워크), AVAX(아발란체), RUNE(토르체인) 등에 고등학생 한 달 용돈 수준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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