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정훈 전 빗썸홀딩스·빗썸코리아 이사회 의장을 BXA 코인(일명 '빗썸 코인')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다만 검찰은 그동안 제기된 고소 중 김병건 BK그룹 회장을 기망해 1억달러(약 1120억원)을 가로챈 혐의만 인정했다.

검찰은 BXA 투자자들의 고소에 대해선 무혐의 처리했다. BXA 투자자들은 "'사기를 친 가해자'는 있지만 '사기를 당한 피해자'는 없는 결론"이라고 주장한다. BXA 코인을 둘러싸고,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2018년부터 코인데스크 코리아가 취재한 내용을 종합해 사건을 재구성했다.

출처=박근모/코인데스크코리아
출처=박근모/코인데스크코리아

2018년 4월: BXA 사건의 시작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라면 BXA의 시작은 김병건 BK그룹 회장이 빗썸코리아 최대 주주가 되겠다며 등장한 2018년 10월이다. 하지만 BXA 고소인들은 그보다 빠른 2018년 4월을 BXA 사건의 시작일로 지목한다.

2018년 4월에는 빗썸의 싱가포르 법인을 통해 '빗썸코인(BTHB)'에 대한 소문이 사실로 공개된 때다. BXA 투자자들의 고소장에 따르면, 2018년 2월 이정훈 전 의장은 싱가포르에 비버스터(B.BUSTER)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빗썸의 거래소코인인 '빗썸코인'을 개발했다.

당시 빗썸은 "빗썸코인은 빗썸의 싱가포르 법인이 인수한 현지 블록체인 개발사 비버스터가 진행하는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문제는 다단계 업체를 중심으로 빗썸코인이 날개돋힌 듯 판매되자, 여기저기서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서다. 그러자 빗썸은 '비버스터의 입장 전문'이라는 후속 공지를 통해 "투자자보호를 위해 재검토의 시간을 갖는다"며 빗썸코인 판매를 중단했다.

이때 빗썸코인을 산 일부는 환불을 선택했고, 나머지는 추후에 다시 등장할 또 다른 빗썸코인을 받기로 약정했다. 이게 바로 BXA다.

 

2018년 10월: 김병건 BK그룹 회장의 빗썸 인수 발표

2018년 10월12일 BK메디컬그룹의 김병건 회장이 빗썸을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김병건 회장은 같은 해 8월 싱가포르에 암호화폐공개(ICO) 컨설팅 회사 'ICO플랫폼'을 설립하는 등 암호화폐에 관심이 많았다.

김병건 회장은 'BTHMB(구 BK글로벌컨소시엄)'라는 신설 법인으로 빗썸코리아의 지주사인 빗썸홀딩스(구 비티씨홀딩컴퍼니) 지분 50%+1주를 4억달러(약 44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빗썸홀딩스는 빗썸코리아의 지분 74%를 가진 지주회사다. 즉 김병건 회장은 지주사의 대주주가 되는 방식으로 빗썸코리아를 우회 인수하는 형식이다.

빗썸코리아는 2019년 1월 초 BXA코인 최초 상장을 예고했다. 출처=빗썸 웹사이트
빗썸코리아는 2019년 1월 초 BXA코인 최초 상장을 예고했다. 출처=빗썸 웹사이트

2018년 12월: BXA의 등장

BXA는 2018년 12월27일 김병건 회장의 기자간담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처음 대중에 공개됐다. 이 자리에서 김 회장은 "빗썸 인수를 위한 계약금과 중도금 약 1억달러(약 1100억원)는 냈으며, 남은 잔금 3억달러(약 3300억원)는 2019년 2월에 완납하겠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빗썸을 비롯한 세계 12개 국가의 암호화폐 거래소를 하나로 묶겠다는 구상도 소개했다. 바로 블록체인 익스체인지 얼라이언스(Blockchain Exchange Alliance, BXA연합)다. BXA에서 사용하는 기축 통화로 BXA코인을 쓴다는 게 김 회장의 구상이었다.

2019년 1월3일 김 회장과 발을 맞춰 빗썸코리아는 BXA연합에 가입했다며 'BXA 최초 상장기념 사전 이벤트'를 진행했다. BXA의 빗썸 상장은 예정된 수순대로 진행되는 듯 보였다.

빗썸에서 BXA 상장 사전 이벤트가 열리자 국내 코인 시장에서 BXA를 사겠다는 사람과 팔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당시 국내 1위 거래소인 빗썸을 비롯해 전세계 12개 국가의 거래소에서 BXA를 기축 통화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발표와 빗썸 상장 예고 이벤트가 겹쳐지면서 논란도 커졌다.

김 회장은 "BXA 공식 판매권을 (보유한 건) 오렌지블록이 유일하다"며 오렌지블록이 아닌 경로로 판매하는 곳은 스캠(사기)"이라고 경고를 하기도 했다. 특히 국내 투자자에게는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수십명에 달하는 국내 투자자가 BXA를 개당 110원~500원에 구입했다.

BXA에 투자한 고소인들은 "빗썸은 BXA를 최초로 상장하겠다고 공지하는 등 누가 보아도 BXA가 빗썸의 거래소코인에 해당하는 것처럼 홍보와 판매를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국내 코인 커뮤니티에서 BXA 판매 상황. 출처=코인데스크코리아
당시 국내 코인 커뮤니티에서 BXA 판매 상황. 출처=코인데스크코리아

2019년 9월: 김병건 회장 인수 잔금 실패

고소인들은 BXA 발행이 빗썸코리아의 지분 매각을 미끼로 거액을 편취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외부에서는 빗썸코리아의 지주사인 빗썸홀딩스의 지분을 팔아 대주주가 손바뀜하는 것처럼 포장돼 있지만, 실질적으로 빗썸의 대주주가 바뀌는 일은 없다는 이야기다.

이들은 그 근거로 김병건 회장이 빗썸홀딩스 인수와 BXA코인 발행을 위해 설립한 법인 'BTHMB'를 들었다.

실제 2019년 12월 기준, 싱가포르에 설립된 BTHMB의 등기부등본을 싱가포르 기업청(ACRA)에서 확인해 보면, BTHMB의 최대주주는 SG브레인테크놀로지라는 법인이다. SG브레인테크놀로지의 주요 주주는 이정훈 전 의장(49.99%)과 김병건 회장(49.99%), 그리고 빗썸 관계자가 나머지 0.01%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김병건 회장이 빗썸 인수를 한다고 하더라도, 지주 법인만 달라질 뿐 실질적인 주인은 바뀌지 않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수천억원에 달한 인수금만 그들 주머니로 들어가는 구조라는 게 고소인들의 주장이다.

김병건 회장은 인수 잔금 마감날인 9월30일 남은 약 5400억원을 모으는 데 실패했고, 코너스톤네트웍스, 비덴트 등이 대신 잔금을 치르고 빗썸홀딩스 지분을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이 역시 물거품으로 끝났다.

​2019년 12월 31일 기준 빗썸 지배구조. 이정훈 의장이 우호지분 포함 약 65%의 지분으로 빗썸의 지주사인 빗썸홀딩스를 지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코인데스크코리아
​2019년 12월 31일 기준 빗썸 지배구조. 이정훈 의장이 우호지분 포함 약 65%의 지분으로 빗썸의 지주사인 빗썸홀딩스를 지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코인데스크코리아

2019년 10월: 김병건 회장의 이정훈 전 의장 고소

김병건 회장은 끝내 남은 잔금을 마련하지 못하고 빗썸 인수에 실패했다. 김 회장은 이 전 의장이 BXA를 빗썸에 상장해 인수자금 확보를 돕겠다는 약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계약금을 반환하라는 취지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김 회장은 "BXA 개발과 발행, 상장 등 업무는 모두 이 전 의장 측에서 진행했다"며 빗썸 인수 무산 이후 투자금 1억달러를 이 전 의장으로부터 돌려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김병건 회장은 이 전 의장과 함께 BXA를 판매해 빗썸을 인수하려 했지만, 되려 1억달러(약 1000억원)만 날린 셈이다.

BXA를 구입한 투자자들의 본격적인 법정 싸움도 이어졌다.

 

2019년 12월: BXA 투자자의 이정훈 전 의장과 김병건 회장 고소

2019년 12월13일 78억원 어치 BXA코인 구매자 68명은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사기, 재산국외도피, 외국인투자촉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이정훈 전 의장, 김병건 회장 외 관계자 8명을 고소했다.

BXA 고소인은 "피고소인들은 BTHMB에 모인 BXA 판매대금을 홍콩으로 유출해 현금화한 뒤 일부는 빗썸 인수대금에 충당하고, 나머지는 이정훈 전 의장에게 지급됐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 BXA 고소인들은 BXA 판매대금을 가져간 인물로 동시에 이정훈 전 의장을 지목한 것이다.

 

2021년 4월: 이정훈 전 의장 BXA 사기 혐의로 검찰 송치

올해 4월23일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이정훈 전 의장을 특경법상 사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다만 고소인이 주장한 재산국외도피, 외국인투자촉진법 위반 혐의는 무혐의로 결정했다. 김병건 회장에 대해서는 불송치 결정이 내려졌다.

당시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은 "해당 (BXA 사기) 사건과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다.

 

2021년 7월: 1000억원 사기 혐의로 이 전 의장 기소 결정

약 2년에 걸친 긴 고소전 끝에 올해 7월6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이 전 의장을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청은 "김병건 회장에게 빗썸 인수와 공동경영을 제안하면서, '인수대금 중 일부만 지급하면 나머지 대금은 코인(BXA)을 발행·판매해 지급하고, BXA는 빗썸에 상장해 주겠다'고 속여 약 1억달러를 편취했다"며 이정훈 전 의장의 기소 배경을 설명했다.

결국 검찰은 김병건 회장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셈이다.

지금은 사라진 BXA 홈페이지. 출처=BXA 홈페이지
지금은 사라진 BXA 홈페이지. 출처=BXA 홈페이지

현재: 아직 끝나지 않은 BXA 사기 사건

검찰은 이정훈 전 의장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BXA 투자자들이 이 전 의장을 사기 혐의로 고소한 부분에 대해서는 이 전 의장이 직접 BXA를 판매하지 않아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이들이 김병건 회장을 고소한 사건에 대해서는 '김병건 회장도 이 전 의장에게 사기당한 것'으로 판단해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다만 검찰은 BXA 투자자들의 투자금 전액이 김병건 회장을 거쳐 이정훈 전 의장에게 빗썸 지분 매매대금 일부로 사용된 점은 인정해 그 부분은 부가적으로 명시한다고 밝혔다.

결국 검찰은 BXA 투자자들을 실질적인 피해자로 볼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이를 책임질 법적인 가해자는 적시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BXA 투자자들은 "'사기를 친 가해자'는 있지만 '사기를 당한 피해자'는 없는 결론"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BXA 투자자들은 BXA를 판매한 이들에 대한 추가적인 법적 대응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 한동안 BXA와 빗썸을 둘러싼 진통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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