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브러더 대 암호화폐
[칼럼] 헬로, 블록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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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
김병철 2021년 8월9일 17:00
출처=Peggy und Marco Lachmann-Anke/Pixabay
출처=Peggy und Marco Lachmann-Anke/Pixabay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드라마 <남부의 여왕>은 멕시코 출신인 테레사 멘도사가 미국 남부에서 마약 카르텔의 보스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테레사는 신분을 숨길 수 있는 다크웹에서 마약을 거래하면서 암호화폐(가상자산)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가 키보드를 몇차례 누르자 몇초 만에 300만달러(34억원)어치 코인이 공급책에게 전송된다. 이어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현금보다) 더 안전하고 빠르고 낫지.”

이 장면은 다크웹의 마약 거래 사이트 ‘실크로드'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2013년 폐쇄할 때까지 실크로드에선 헤로인 등을 비트코인으로 살 수 있었다. 운영자 로스 울브릭트는 미국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은 암호화폐를 받고 성착취물을 팔았다. 많은 이들이 “암호화폐는 범죄자가 사용하는 나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나 암호화폐의 잘못은 아니다. 범죄자의 잘못이지. 비슷한 예로 도서 판매, 인터넷 쇼핑 등 문화 산업 증진을 위해 만들어진 문화상품권이 있다. 사기 쉽고, 주인이 몇번만 바뀌면 추적이 어려워 피싱 범죄, 마약 거래에 문화상품권이 쓰인다. 그렇다고 문화상품권을 금지하자는 주장을 아직 듣지 못했다.

출처=컬처랜드
출처=컬처랜드

역사적으로 불법 재산을 은닉(자금세탁)하는 데 가장 용이한 수단은 현금이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에는 ‘화폐가 사라질까?'라는 전시물이 있다. 한은의 설명은 이렇다.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고, 쓰는 사람의 개인정보가 드러나지 않는 등 편리한 점들이 많아서 앞으로도 계속 사용될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까? 금융이 디지털화될수록 자금세탁은 어려워졌다. 1989년 창설한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던 미국의 주도로 탄생했다. 마약자금이 금융기관을 통해 전송되는 걸 막기 위해 국제 기준을 정했다.

돈을 보낼 때 금융기관이 송수신자의 신원을 기록하고 의심되는 부분이 있으면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이렇게 자금 흐름을 모니터링하는 걸 ‘트래블 룰’(자금 이동 규칙)이라고 한다. 2019년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는 앞으로 트래블 룰을 암호화폐에도 확대 적용하라고 권고했다. 최근 농협은행이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빗썸, 코인원에 ‘코인 입출금 기능'을 막으라고 요구한 이유다.

2019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총회가 열렸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이용한 자금세탁을 막기 위한 국제 기준(여행규칙 등)을 만들었고, 이에 따라 회원국인 한국도 2020년 관련 법률을 개정했다. 출처=FATF 트위터
2019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총회가 열렸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이용한 자금세탁을 막기 위한 국제 기준(여행규칙 등)을 만들었고, 이에 따라 회원국인 한국도 2020년 관련 법률을 개정했다. 출처=FATF 트위터

미국이 걱정하는 건 나쁜 놈들이 암호화폐를 활용해 자신들이 구축한 금융 감시 시스템을 우회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쁜 놈들은 마약 조직을 넘어 미국의 적을 포함한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는 테러자금 조달 방지 기준을 추가했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 고위험 국가 명단에는 미국이 경제제재를 하는 이란, 북한 등이 올라가 있다.

암호화폐에 대한 트래블 룰이 구축되려면 몇년은 더 걸릴 것이다. 하지만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 아니 미국의 방향성은 명료하다. 과연 암호화폐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감시 시스템 내에서 안착할까. 신분을 감추려는 이들이 우회로를 만들어내는 게 가능할까?

비트코인 등을 암호화폐라고 하는 이유는 암호화 기술을 활용해 익명성을 유지하고, 권력의 감시를 회피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어서다. 이를 악용하려는 범죄자들이 있겠으나, 빅브러더가 모든 것을 감시할 수 있는 세상이 행복할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줄리언 어산지가 설립한 위키리크스는 미군의 이라크 민간인 사살 영상 등을 줄줄이 폭로했다가 신용카드와 페이팔을 통한 기부가 막혔고, 암호화폐를 대안으로 선택했다.

중국은 인민은행이 발행한 디지털화폐(CBDC) 도입을 앞두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정부가 실시간으로 모든 이의 지갑 속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빅브러더가 현실화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안심할까, 불안할까. 2014년 카카오톡 감청 논란 이후 텔레그램으로 ‘디지털 망명'이 일어났던 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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