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이동규칙. 출처=Markus Spiske/Pexels
트래블룰. 출처=Markus Spiske/Pexels

지난달 5일 엔에이치(NH)농협은행은 암호화폐(가상자산, 코인) 거래소 빗썸과 코인원에 트래블룰(자금이동규칙) 시스템 구축 전까지, 거래소 간 코인 이전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트래블룰 없이는 코인의 자금세탁 방지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트래블룰이 뭐길래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트래블룰은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기존 금융권에서 구축된 제도다. 세계 각국 은행은 해외 송금을 할 때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가 요구하는 형식에 맞춰 송금자 정보 등을 기록한다. 이 과정에서 불법자금의 자금세탁 등이 의심되면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그동안 코인은 트래블룰 적용 대상이 아니었지만, 2019년 6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코인 규제 권고안을 발표하면서 추가됐다. 이에 따라 주요국은 코인 거래소 등록제와 함께, 이용자가 코인을 전송할 때 송·수신인의 이름, 지갑 주소 등을 거래소가 보관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한국에선 지난 3월25일 시행한 개정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정금융정보법)에 따라 코인에도 트래블룰 의무가 부여됐다. 거래소에서 외부로 코인을 100만원 이상 출금하는 경우 거래소는 관련 정보를 기록하고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다해야 한다.

다만 금융당국은 트래블룰 시스템 구축 시간을 고려해 검사·감독을 내년 3월24일까지 유예하기로 했다. 이에 발맞춰 국내 거래소들은 트래블룰을 내년 3월까지 도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코인으로 인한 자금세탁 문제 발생 시 책임을 져야 하는 은행 입장은 조금 달랐다. 특히 농협은행은 지난 8월 트래블룰 없이는 신고 필수서류인 실명계정 확인서를 거래소에 발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논란 끝에 지난 8일 빗썸과 코인원은 금융당국 신고 수리 후 60일 안에 트래블룰을 구축한다는 조건부로 실명계정 확인서를 받았다. 금융당국의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심사에 최대 3개월이 걸리니 거래소 입장에서는 트래블룰 구축까지 약 4~5개월의 시간을 번 셈이다.

그러나 거래소가 당장 급한 신고서 제출에 집중하다 보니 아직 트래블룰 구축에 별다른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기술적으로 복잡하진 않지만, 은행의 스위프트처럼 전세계 코인 거래소가 함께 쓸 수 있는 통일된 기준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게 업계의 고민이다.

국내 주요 거래소 4곳(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은 지난 6월 트래블룰 공동 대응을 위한 합작 법인 설립에 나섰다. 하지만 지난 7월 업비트는 “일부 사업자 간 연대를 통한 공동 행위로 비칠 우려가 있다”며 불참 의사를 밝혔다.

대신 두나무의 계열사인 람다256이 개발한 트래블룰 시스템 베리파이바스프(VerifyVASP)를 활용하기로 했다. 업비트 관계자는 “트래블룰 시스템 구축은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수리가 마무리되는 대로 본격적으로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빗썸, 코인원, 코빗은 당초 계획대로 트래블룰 구축을 위한 합작법인 코드(CODE)를 설립했다. 하지만 코드 관계자는 “현재는 각 거래소가 준비해온 트래블룰 시스템을 서로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향후 어떤 식으로 트래블룰 시스템을 구축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 외 거래소도 트래블룰 구축보다는 신고 수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한 중소 거래소 관계자는 “내년부터는 영업하는 거래소는 반드시 트래블룰을 지켜야 하므로 결국 금융당국이 필요한 양식 등을 가이드라인 형태로 행정 지도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일단 사업자 신고 수리에 집중하고, 정부 방침이 나오면 거기에 맞춰 대응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 기사는 한겨레신문 블록체인 특별면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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