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범 작가가 그린 실존 인물 초상화 픽셀아트. 여기에 주재범 작가 본인의 초상화 픽셀아트도 있다. 궁금한 분은 찾아보시길. 출처=주재범
주재범 작가가 그린 실존 인물 초상화 픽셀아트. 여기에 주재범 작가 본인의 초상화 픽셀아트도 있다. 궁금한 분은 찾아보시길. 출처=주재범

지난달 28일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만난 주재범 작가는 멋쩍게 웃으며 "아직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건 아니지만, 제 작품을 도용한 NFT 작품을 패러디한 작품을 기획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주재범 작가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픽셀아티스트다.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픽셀아트(pixel art)는 디지털 이미지를 구성하는 단위인 사각형의 픽셀(pixel)을 배열해 그림을 그리는 디지털 아트의 한 장르다. 사각형의 픽셀을 점으로 표현해 '도트 아트'라고도 부른다.

특히 그가 2010년부터 그린 픽셀아트 모나리자, 고흐 등 명화 시리즈는 특히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최근 그는 자신의 픽셀아트 작품이 아무런 동의 없이 대체불가능토큰(NFT)로 발행돼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게 판매된 총금액만 3억원에 달했다.

자신의 작품이 도용돼 판매 중이라면, 일반적으로 판매 중지나 손해배상 청구 등 민·형사상 법적 대응을 할 테지만 주재범 작가는 달랐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을 새로운 작품 소재로 삼겠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그도 처음부터 자신이 예술가, 작가이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아니었다.

오픈시(OpenSea)라는 다소 생소한 해외 서비스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이가 도용한 작품을 판매하는 것을 막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저작권 전문 변호사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오픈시는 세계 최대 NFT 장터다. NFT는 작품(모든 상품)의 진품(오리지널) 여부를 확인해주는 인증서 역할을 하는 코인의 일종이다.

왼쪽이 주재범 작가의 모나리자. 오른쪽은 오픈시에 판매 중인 모나리자. 출처=주재범, 오픈시
왼쪽이 주재범 작가의 모나리자. 오른쪽은 오픈시에 판매 중인 모나리자. 출처=주재범, 오픈시

NFT는 해당 작품이 진품임을 인증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처음부터 저작권이 도용된 작품이 NFT로 발행되면 디지털 세상 속에서는 그 작품이 진품인 것처럼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 NFT를 둘러싼 저작권 침해 논란이 발생하는 이유기도 하다.

주재범 작가는 "사실 내가 그린 픽셀아트 명화 시리즈는 해외에서 패러디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수익 목적이 아니라면 그냥 이해하고 넘어갔다"며 "법적 대응을 할까 생각도 했지만, 내 방식대로 처리하려고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건이 픽셀아트 작가로써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며 "사실 NFT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이번에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재밌고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언제 해결될지도 모르는 해외에서 일어난 작품 도용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시간과 돈, 노력을 투입하기보다 오히려 이를 패러디한 작품을 만들어 대응하겠다는 발상이다.

'자신의 작품을 도용한 작품을 다시 패러디한 작품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겠다니, -나같은 일반인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지만- 예술가다운 대응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NFT는 디지털 세상에서 존재하는 작품의 원본을 인증해주는 감정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제 작품을 도용한 작품을 패러디해 그것조차도 제 작품으로 만들면 좋지 않을까요. 그걸 NFT로 만들어서 원본으로 삼는 거죠."

주재범 작가는 이번 사건으로 어렴풋이 알고만 있었던 NFT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실 부끄럽지만, 제 작품이 도용돼 판매 중이라는 것을 알고 NFT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며 "이와 별개로 NFT라는 기술을 통해 다양한 예술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어요. 제가 본격적으로 NFT 작품 활동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요."

주재범 작가가 하는 픽셀아트는 컴퓨터로 가로-세로 좌표에 맞춰 도트를 찍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단순함 가운데서 작품마다 독특한 캐릭터를 부여하는 건 여간 여려운 일이 아니다. 단순함 속에 작가의 모든 상상력을 끌어내야 하는 게 바로 '픽셀아트'다.

51억원에 판매된 크립토펑크 9997. 출처=christies
51억원에 판매된 크립토펑크 9997. 출처=christies

현재 NFT로 판매되고 있는 작품은 대부분 무작위로 속성을 조합하는 '제너레이티브' 방식을 활용한다. 크립토펑크(cryptopunk)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참고로 크립토펑크 9997은 지난달 28일 약 51억원에 판매됐다.

픽셀아트와 제러레이티브를 결합하면, NFT 작품으로는 최상의 환경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픽셀아트는 컴퓨터과 상상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작품을 만들 수 있어요. NFT는 이 작품을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팔 수 있는 거대한 시장인 거죠. 호랑이에 날개를 단 셈이죠."

끝으로 아직 NFT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주재범 작가는 "NFT가 아트든, 예술이든, 장난이든 이런 걸 신경 쓰기보다 그 자체로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며 "기존과 다른 재밌는 무엇인가를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제보, 보도자료는 contact@coindeskkorea.com
저작권자 © 코인데스크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