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암 샤프는 작품을 온라인에서 공개해왔지만, 그의 작품(왼쪽)을 훔쳐서 이를 NFT로 발행(오른쪽)하는 절도 행위가 발생하고 있다. 출처=리암 샤프 트위터
리암 샤프는 작품을 온라인에서 공개해왔지만, 그의 작품(왼쪽)을 훔쳐서 이를 NFT로 발행(오른쪽)하는 절도 행위가 발생하고 있다. 출처=리암 샤프 트위터

“슬프네요. 제 데비앙아트 갤러리를 몽땅 폐쇄하려 합니다. 사람들이 자꾸 내 작품을 훔쳐 NFT로 만들고 있거든요.”

리암 샤프는 12월18일, 트위터으로 ‘디지털 폐업’을 선언했다. 그는 영국 유명 작가이자 그래픽 노블 아티스트다. 작품을 공유하는 온라인 갤러리를 14년째 운영해 왔지만 더는 버틸 수 없었다. NFT 절도범 때문이다.

‘대체불가능토큰’인 NFT는 올 한 해 디지털 경제를 뒤흔든 열쇳말이다. NFT는 디지털 아티스트에게 신천지를 예고했다.

누구나 복제해도 손 쓸 방도가 없었던 디지털 작품에 위조가 불가능한 인증서를 붙여서 판매하게 해 준다니, 귀가 번쩍 뜨이지 않겠는가.

성공 신화도 이어졌다. NFT를 붙인 고양이 게임 캐릭터가 우리돈 20억원 넘게 팔렸다는 얘기는 열풍을 풀무질했다. <뉴욕타임스>는 칼럼에 NFT를 붙여 6억3천만원에 팔았고, 트위터 창업자는 자신이 올린 첫 트윗을 팔아 32억원을 벌었다.

아디다스는 올해 12월, 처음 발행한 NFT로 2300만 달러, 우리돈 270억원이 넘는 수익을 거둬들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도 올해 12월, 자체 NFT를 발행하며 가상 재화 경제에 뛰어들었다. 인스타그램도 게시물을 NFT로 발행, 이용자끼리 거래하는 기능을 준비중이다.

NFT는 또한 메타버스 속 아이템, 아바타, 한정판 상품 등에 두루 붙어 유통된다. 메타버스 속 알짜배기 땅이나 요트 등은 실물 땅과 요트보다 더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이 재화의 주인을 인증해주는 것도 NFT다.

하지만 그늘도 짙다. 리암 샤프 사례에서 보듯, NFT 작품 거래는 디지털 저작권 관리의 난맥상을 다시금 드러냈다. 미술의 대중화를 가져왔다고 하지만, 실제 거래된 NFT 미술작품은 상위 1% 뿐이다.

승자독식은 더욱 굳건해졌다. NFT로 소유권을 증명하려면 대규모 블록체인 시스템을 돌려야 한다. 환경 측면에선 퇴행이다. 법은 이 새로운 시스템에 대응할 준비조차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다 제쳐두자. 누구나 쉽게 복제할 수 있는 디지털 작품을 굳이 비싼 셈을 치르고 구매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다. 그런데 그 값을 치를 만큼 작품 가치를 인정해서인가, 혹은 남에게 더 비싸게 팔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까?

NFT는 위조 불가능한 증명 수단이지만 작품의 가치 자체를 대체하진 않는다. 닭장에 최첨단 보안 장치를 달았다고 해서 닭장이 전원주택이 되는 건 아니다. ‘고양이 그림 한 장에 10억원’이란 극적인 성공신화 뒤엔 창작자 허락 없이 빼돌린 작품을 사고파는 장물아비들의 남루한 현실이 똬리틀고 있다.

인터넷은 무한 복제가 가능한 플랫폼이지만, 모든 복제가 합법인 건 아니다. ‘기술 복제 시대’에 진품에 ‘아우라’를 부여하는 수단이 NFT라면, 그 가치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일에 머리를 맞댈 때다. 인증이란 권위로 포장한 장물이 활개치는 사막에서 ‘NFT 이코노미’는 신기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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