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출처=김동환/코인데스크 코리아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출처=김동환/코인데스크 코리아

알고리듬 기반 스테이블 코인 프로젝트 테라에 치명타를 입힌 거래를 일으켜 ‘공격자’로 지목받고 있는 지갑이 사실은 권도형 대표의 테라폼랩스가 관리하는 지갑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수십조원 규모의 투자자 피해가 발생한 테라 붕괴 사태가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내부 소행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는 뜻이다. 테라 사태를 수사 중인 검찰도 이러한 정황을 확인하고 수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블록체인 보안기업 웁살라시큐리티와 코인데스크 코리아는 지난 5월7일 테라 폭락 사태 이후 한 달여 동안 온체인 데이터 포렌식 기법을 통해 테라 프로젝트 붕괴 원인을 조사해왔다. 웁살라시큐리티와 코인데스크코리아는 세계 여러 분석업체가 공히 공격자 지갑으로 지목하고 있는 지갑(0x8d47f08ebc5554504742f547eb721a43d4947d0a)의 거래 내역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편의상 이 지갑을 ‘지갑 A’라고 칭한다.)

공격자 지갑 A와 연관 지갑의 자금 흐름. 출처=웁살라시큐리티 CIRC
공격자 지갑 A와 연관 지갑의 자금 흐름. 출처=웁살라시큐리티 CIRC

공격자 지갑 A의 정체

이더리움 블록체인에서 생성된 지갑 A는 협정세계시(UTC) 기준 5월7일 오후 4시32분경 만들어졌다. 미국 달러화에 가치가 연동되도록 설계된 UST가 가치 연동에 실패한 첫 디페깅이 일어난 것과 같은 날이다. 테라폼랩스는 이날 오후 9시44분경 그동안 테라 블록체인의 유동성을 유지해주던 디파이 서비스 커브(Curve)에서 UST 약 1억5000만개(약 1억5000만달러)를 빼냈다. 권도형 대표는 이를 두고 “커브에서 1억5000만달러 상당의 UST를 뺀 것은 더욱 안정적인 UST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오후 9시57분경 지갑 A는 약 8500만 UST를 커브에 넣고 또 다른 스테이블 코인 USDC로 교환했다. 테라폼랩스가 일시적으로 커브에서 UST의 유동성을 제거한 지 불과 13분 만에 지갑 A가 대규모 UST 거래를 일으킨 것이다. 지갑 A는 UST를 교환해 얻은 USDC를 북미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Coinbase)로 보냈다. 이 거래를 전후해 대량의 UST가 세계 여러 거래소로 입금되며 디페깅이 가속화됐고, 결국 뱅크런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세계 여러 블록체인 분석 기업들이 지갑 A를 공격자 지갑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 지갑이 테라를 무너뜨리려는 월스트리트 금융기업의 지갑이라는 음모론이 일기도 했다.

웁살라시큐리티와 코인데스크 코리아는 지갑 A의 주인을 파악하기 위해 지갑 A의 자금 출처를 추적했다. 그 결과 또 다른  지갑(terra1yl8l5dzz4jhnzzh6jxq6pdezd2z4qgmgrdt82k)이 지갑 A에 대량의 UST를 제공한 사실을 확인했다.(편의상 이 지갑을 지갑 A(T)라고 칭한다.) 지갑 A(T)는 테라 블록체인에서 생성된 지갑으로 웜홀(Wormhole)을 통해 UST를 이더리움 기반 UST로 바꿔 지갑 A로 전달했다. 웜홀은 이더리움, 테라, 솔라나, 폴리곤 등 서로 다른 블록체인에서 발행된 가상자산을 교환해주는 디파이 서비스다.

지갑 A(T)의 모든 거래 내역을 살펴보니 특이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지갑 A(T)가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로 UST를 꾸준히 보내고 있었다. 테라 블록체인은 하나의 지갑 주소에 여러 사용자의 UST를 모아서 전송한다. 그래서 거래소는 사용자마다 아이디와 같은 기능을 하는 숫자를 부여한다. 이를 테라에서는 ‘메모(Memo)’ 기능이라고 부른다.

지갑 A(T)가 바이낸스에 보낸 UST의 메모를 일일이 확인한 결과, 지갑 A(T)는 사용자 메모 ‘104721486’으로 올해 1월5일부터 5월25일까지 1억2359만7800여개의 UST(약 1억2359만7800달러)를 보냈다. 지갑 A(T)가 바이낸스로 보낸 UST 거래내역 중 가장 큰 규모는 5월7일 오후 9시40분에 이체한 1억825만1326개였다. 테라폼랩스가 커브에서 일시적으로 유동성을 제거(오후 9시44분경)한 것과 비슷한 시간이다.

바이낸스 사용자 메모 '104721486'으로 UST가 입금된 내역. 출처=웁살라시큐리티
바이낸스 사용자 메모 '104721486'으로 UST가 입금된 내역. 출처=웁살라시큐리티

지갑 A(T) 외에 바이낸스 사용자 메모 ‘104721486’와 거래를 한 지갑을 전수조사한 결과 ‘terra1gr0xesnseevzt3h4nxr64sh5gk4dwrwgszx3nw(terra1gr)’과 ‘terra13s4gwzxv6dycfctvddfuy6r3zm7d6zklynzzj5(terra13s)’를 비롯한 여러 지갑이 등장했다. terra1gr은 테라폼랩스가 루나 파운데이션 가드(LFG)의 지갑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지갑이다. terra13s는 권도형 대표가 테라 붕괴 이후 새로 만든 테라2.0의 검증인(밸리데이터) LUNC DAO의 지갑이다. 이 지갑들은 서로 수천만개에서 1억개에 이르는 LUNA를 주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온체인 포렌식을 통해 발견한 위와 같은 사실을 종합하면, 바이낸스 사용자 메모 ‘104721486’ 지갑, LFG 지갑, LUNC DAO 지갑, 지갑 A(T), 지갑 A(T)로부터 UST를 공급받은 지갑 A가 모두 동일한 소유자의 지갑이거나 하나의 집단이 관리하는 지갑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테라폼랩스 또는 LFG가 스스로 테라를 붕괴시키는 자금거래를 한 셈이다.

왜 이런 거래를 했을까

테라 블록체인은 LUNA와 UST의 유동성을 알고리듬으로 조절하는 방식으로 1UST의 가격을 1달러에 유지한다. 예를 들어 1UST 가격이 1.1달러가 될 경우, LUNA 보유자는 1달러 상당의 LUNA로 1 UST를 매수한다. 테라 알고리듬은 1UST를 매수한 LUNA를 소각하고, 1 UST를 새롭게 발행한다. UST 공급량이 늘면서, 1 UST 가격은 1달러로 하락한다. 이 과정에서 LUNA 보유자는 1.1달러짜리 UST를 1달러어치 LUNA로 구입하면서 0.1달러의 차익을 얻는다.

반대로 1 UST가 0.9달러가 되면, UST 보유자는 1 UST로 1달러 상당의 LUNA를 매수한다. 알고리듬은 1달러 상당의 LUNA를 매수한 UST를 소각하고, LUNA를 새롭게 발행한다. UST 공급량이 줄면서, 1 UST는 1달러가 된다. 마찬가지로 UST 보유자는 0.9달러 상당의 UST로 1달러 가치의 LUNA를 얻으며, 0.1달러의 차익을 얻는다.

결국 UST의 페깅(가치 유지)과 디페깅(가치 불일치)의 변동성에 따라 차익을 얻는 이들이 생긴다.

지갑 A, 그리고 지갑 A(T)와 연결된 여러 지갑들도 이러한 차익을 얻으려고 위와 같은 거래를 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5월7일 테라폼랩스가 커브에서 1억5000만달러 상당의 UST를 제거하자 유동성이 줄어들면서 UST가 1달러 이상으로 일시적으로 디페깅됐다. 하지만 지갑 A가 단시간에 8500만개의 UST를 커브에 넣자, UST는 1달러로 복귀했다. 이 과정에서 지갑 A는 변동성에 따른 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거시경제와 지정학적인 요인으로 폭락하는 상황에서 지갑 A와 연결된 지갑이 동시다발적으로 LUNA와 UST의 유동성을 흔들자 알고리듬은 더이상 기능을 하지 못했다. 알고리듬은 1달러 아래로 내려앉은 UST의 공급량을 줄이기 위해 LUNA를 발행해 UST 소각에 나섰지만, LUNA가 예상보다 더 하락하자 발행량을 더 늘려 UST를 소각하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LUNA와 UST는 이런 과정에서 -99.99%라는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었다.

공격자 지갑 A와 연결된 지갑에서 거래소로 입금된 규모. 출처=웁살라시큐리티 CIRC
공격자 지갑 A와 연결된 지갑에서 거래소로 입금된 규모. 출처=웁살라시큐리티 CIRC

거래소로 흘러간 자금은 어떻게 됐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지갑 A(T)에서 바이낸스 사용자 메모 ‘104721486’으로 1억2359만7800여개의 UST가 흘러 들어갔다. 지갑 A와 소유주가 동일한 것으로 보이는 여러 지갑들의 거래 내역을 추적한 결과 또 다른 바이낸스 사용자 메모 ‘100055002’로도 26억6557만9215 UST가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UST뿐만 아니라 대량의 USDT와 USDC도 바이낸스로 이동했다. 이렇게 두 개의 바이낸스 지갑으로 입금된 총액은 74억5985만7681달러(한화 약 9조5020억원)에 이른다. 지갑 A는 코인베이스로도 8500만개의 USDC를 보냈다.

이 거래소 지갑들에 현재 얼마만큼의 자금이 남아있는지, 다시 어디로 전송이 됐는지는 바이낸스와 코인베이스가 공개하기 전까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검찰 수사로 확인해야 할 과제

테라폼랩스 또는 LFG가 이러한 거래를 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권도형 대표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파악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테라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도 지갑 A와 연관된 지갑들의 수상한 자금 흐름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는 코인데스크코리아에 “온체인 포렌식 기법을 통해 문제가 있는 지갑과 코인의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 전 현직 특별수사 전문가들은 “사기 혐의 외에 권 대표 조사 결과에 따라 배임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형우 웁살라시큐리티 대표는 “테라 사태에 대해 여러모로 온체인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갑 A뿐 아니라 이와 연결된 지갑은 테라폼랩스와 관련 회사가 관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테라폼랩스가 시세조종에 관여한 것으로 보이는 만큼 바이낸스 등 관련한 거래소를 규제당국이 조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인데스크 코리아>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에게 지갑 A를 비롯한 여러 지갑들의 거래 내역에 대해 다양한 경로로 질의했지만, 답변받지 못했다.

웁살라시큐리티 '지갑 A'  추적 보고서 원문

 

#해당 기사를 인용할 경우 <코인데스크 코리아>를 명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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