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테라
출처=테라

테라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넘었다. 테라 사태의 여파로 제도권에서는 가상자산의 증권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국내 주요 거래소들은 테라 사태와 같은 일이 재발할 경우 경보를 알리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공통적인 상장폐지 기준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이 충분하다고 볼 수는 없다.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24시간 쉬지 않고 코인을 매매·전송하는 가상자산 시장 전체를 커버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사기성 코인이 국내 거래소 대신 제도권 밖에 있는 역외 거래소에 상장할 수도 있고, 경보 시스템에 걸리지 않기 위해 다수의 부계정들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거래내역을 복잡하게 만드는 등의 교묘한 술수를 쓸 수도 있다.

이번 테라 사태만 하더라도 그렇다. 사건이 벌어진 주무대는 역외 중앙화 거래소인 바이낸스와 디파이(DeFi, 탈중앙화금융) 거래소인 커브였다.

테라폼랩스가 다수의 부계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우리 눈에 보인 테라 사태는 UST(테라USD)라는 스테이블 코인의 실패와 그에 따른 LUNC(루나클래식)의 붕괴였지만, 이는 결과였을 뿐 그 과정에서 눈에 띄지 않는 다수의 계정과 추적이 어려운 디파이 거래소 및 역외 중앙화 거래소에서 문제를 키워가고 있던 것이다. 지금 세워진 방지책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응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러한 과정을 포착하고 문제의 원천을 예방하기엔 역부족이다.

블록체인의 투명성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미리 발견할 수 있지 않냐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테라 사태 당시 투명성을 바탕으로 한 모니터링과 견제는 실현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투명성이라는 특징에도 불구하고 모니터링과 견제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적절한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은 다수의 블록 익스플로러(블록체인 트랜잭션 내역을 볼 수 있는 사이트)와 거래 통계 데이터 및 분석 도구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소규모 가상자산 프로젝트는 운영사가 제공하는 블록 익스플로러가 전부다. 통계나 분석 도구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자연스럽게 집단지성에 의한 감시는 느슨해진다. 의심스러운 거래들은 그 틈을 파고들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은 가상자산별 블록체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지금도 데이터베이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몇 군데 있지만, 대부분이 해외 서비스이거나 대형 가상자산에 대한 정보만 제공하고 있다. 구체적인 정보 공개는 유료 서비스인 경우도 있다. 정부의 공공데이터처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가상자산 데이터베이스가 제공될 필요가 있다.

거래소 역시 상장되는 코인에 대해 운영사 내부자들의 블록체인 주소를 명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지금은 보안상의 이유로 운영사의 지갑을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불투명성이 악용되어 운영사가 코인을 자의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운영사의 정보를 투명하게 밝히면, 운영사 공시에만 의존하지 않는 집단지성 차원의 감시와 견제를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블록체인에는 다양한 인프라가 있다. 초기에는 채굴을 위한 전력이나 노드 구축을 위한 서버와 같은 물리적 인프라가 중요했지만, 산업이 발전할수록 정보 인프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기반시설을 구축하는 데는 비용과 노력이 많이 든다. 그러나 성공적으로 만들어진다면 이 정보 기반을 토대로 추가적인 가치창출이 꾸준히 일어날 것이다. 테라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는 어쩌면 단순한 투자자 보호가 아니라 블록체인의 투명성을 새로운 산업 영역으로 발전시키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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